학교는 접촉의 공간, '등교=접촉' 의미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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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얼마 전 병원을 다녀왔다. 요즘은 병원에 가는 것도 괜한 걱정이 든다. 병원에서 볼 일을 다 보고 소독제로 손을 한 번 씻었다. 나가려는데 문이 미닫이다. 순간 꺼림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문을 꼭 손으로 열어야 하나?

문을 열고 나와 괜히 찝찝해서 화장실로 향해 손을 한 번 더 씻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문을 열고 씻었다. 그런데 비누로 깨끗이 씻고 나니 수도꼭지를 내려야한다. 이걸 꼭 손으로 해야하나? 결국 손목을 이용해서 내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고 나니 이번에는 버튼을 눌러야 했다.

손이 있는 동물답게 우리는 손으로 해오던 일들이 참 많았다.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하거나 버튼을 누르거나 연필이나 볼펜을 쥐고 떨어진 물건을 집는 등 여러 행위를 손으로 해왔다.

손금의 원리도 평소 사람이 손을 쓰는 법을 분석해서 직업을 예측하고, 직업에 따른 수명이나 재산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하니 우리 손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손은 밖으로 나와 있는 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예방법으로 손가락 운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에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우리에게는 최고의 스타일러스 펜이 있다. 바로 손가락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 터치 시대에 손가락은 화면을 만져 모든 것을 해낸다.

그런데 이 손이 감염의 도구가 된다고 한다.

정확히는 손을 통해 얼굴을 만지면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지만 직관적으로는 손이 감염을 시킨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곳곳에 손 씻기 방법이 붙어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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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가까운 미래에는 이렇게 손이 직접 닿는 것들은 전부 일종의 센서형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다. 문은 대부분 자동문으로 바뀔 것이고, 공용화장실의 수도꼭지도 센서형이 더욱 상용화될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 같은 것들도 직접 누르지 않는 방식의 무언가로 대체될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이런 것들이 학교에도 도입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수도꼭지를 센서형으로 바꾸고, 불도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켜질 수 있게 설치한다. 혹은 이른바 인공지능 비서를 이용해 말로써 작동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들을 다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문을 교실에 설치하는 것은 어떠한가? 평소 학생들은 문을 닫고 다니지 않는 친구들에 대한 불만이 많다.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놓을 땐 냉기가 빠지는 것을 싫어하고, 겨울에는 문이 열려 냉기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 결과 1년 내내 교실 문에는 문을 닫아주길 호소하는 종이가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차라리 교실마다 자동문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 제안은 대부분의 교사들이 반대할 것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학생들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평소 학교에서 학생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자동문은 사고를 낳을 가능성이 너무 크다. 센서형 수도꼭지도 괜히 고장만 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결국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돌아와 생각하니, 학교는 애초에 접촉의 공간이다. 기기 하나 두 개를 비접촉형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학교는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고 사람과 물건이 접촉하는 곳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그렇다. 

세상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센서를 활용하거나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교실은 여전히 버튼을 누르고 사람이나 물건을 접촉하는 교육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접촉하고 대면하고 함께하는 것이 학생들의 지적, 정서적 발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원격수업이 시작되고 학생들과 Zoom을 통해 얼굴들을 보고 있다. 어느덧 사용법도 제법 능숙해져서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각각 접속하여 컴퓨터로는 자료 파일을 띄워주고 핸드폰으로는 칠판을 찍으며 판서를 한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애들이 있어보이면 핸드폰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들이대며 놀래키기도 한다.

이렇게 교실의 상황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연출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 직접 대면과 접촉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원격수업이 잘 되면 잘 될수록 허무하기도 하다. 어서 등교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론 겁도 난다. 이들이 등교했을 때 접촉을 못하게 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래부터 학교는 접촉의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된다. 교육부도 아마 이러한 걱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등교는 하되, 학교 내에서 거리두기를 실시한다”와 같은 모순적 지침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는 생활의 공간이고 공동체의 공간이다. 교실에 시험대형으로 앉아 떨어져 수업을 받을 수는 있어도 학교는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등교는 곧 접촉이라는 것은 모두의 공통의 인식이었으면 한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