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문서 받아 가공해 전달하는 중간관리자 역할
오히려 발전 방해함을 인정하고 위상, 역할 재구성해야

[에듀인뉴스] 온라인 개학이 어느새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도 되지 않는 짧은 준비 기간에, 와이파이도 없고 이렇다 할 장비도 없는 학교에서 경험도 없는 교사들이 각자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동원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온라인 수업을 스스로 익혀가며 했음에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전면적 온라인 개학을 완수해냈다.

방역 못지 않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일이다. 당장 일본만 해도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며,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현 시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코로나 시국이 마무리 된 다음,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교육을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 시키느냐, 아니면 한 바탕 고생만 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 교육청, 교장, 교감 등 이른바 관리자 그룹의 현재 모습을 보면 이 시국만 끝나면 원점 회귀해, 모처럼 우리가 선두에 나선 이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가능성이 크다.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 온라인 개학 실험을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고 있는 낡은 교육행정에 기대어 연명하는 집단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낡은 행정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3월 말, 교육부 고위 관료가 “교사들이 재택 근무를 하고 있어, 공문 전파가 늦어져 업무 진행이 어렵다”는 식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 발언이 실수라며 사과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공문 전파’다.

즉 교육부는 긴급한 시기, 창의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한 시기에도 공문을 작성하여 단계별로 확산시키고 다시 단계별로 수합하는 방식의 의사소통 방법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ytn 사이언스 캡처) 

이런 공문 전파, 수합 방식의 의사소통은 놀랍게도 거의 7~800년 전 역참제도(파발)와 봉수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는 이게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왕이 전국에 흩어진 수천 명의 실무자들에게 수천 건의 공문서를 작성하여 수천 필의 파발마를 달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그렇게 하면 공문의 접수 여부, 그리고 지시사항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왕이 문서를 여덟부만 작성해 8도 관찰사들에게 보낸다면, 말 8필만 필요하다.

관찰사는 그 문서를 받아서 부사, 목사(편의상 계속 8명이라고 하자)들에게 보내고, 부사, 목사는 다시 8부씩 더 작성해 군수에게 보내면, 군수가 이걸 받아 담당자 8명에게 분배함으로써 전파가 완료된다. 

이런 식으로 전파하면 왕의 지시가 관찰사-부사,목사-군수,현감-실무자 네 단계를 거치면서 84, 무려 4096명의 실무자들에게 빈틈없이 전달되는 것이다. 도성에서 5000필의 파발마가 마치 전쟁난것처럼 몰려나갈 필요 없이, 각 단위마다 8필씩의 파발마만 동원하면 된다. 

전파된 문서의 시행 결과는 보고라는 방식으로 수합된다. 실무자가 군수, 현감에게 보고하면, 군수, 현감이 이를 수합하여 부사, 목사에게 보고하고, 부사, 목사가 관찰사에게, 그리고 관찰사가 왕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8필의 파발마가 왕궁에 도착하면 전파한 문서의 시행결과가 확인되는 것이다. 이렇게 4096명 실무자의 보고가 빈틈없이 왕에게 도달한다.

단순하지만 긴급한 지시나 보고에는 봉화를 사용했는데, 전파 원리는 역시 동일하다. 다만 보낼 수 있는 신호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을 뿐이다.  

당시로선 이 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전달체계를 찾기 어려웠다. 몽골제국이 세계제국을 이룰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단지 군사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시, 보고 전달체계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칸이 10000명을 지휘하는 투멘(만호장)들에게 지시하면, 만호장은 천호장, 천호장은 백호장, 백호장은 십호장에게 전달하고 보고는 그 반대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편성되었다. 그래서 몽골군은 10만 대군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며 다양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명령 및 보고 전파 방식은 중간 마디 역할을 하는 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 마디 중 일부만 기능을 하지 못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체 전파망의 1/3이 마비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몽골군은 천호장들을 매우 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행정이 바로 이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서를 파발마를 태워 전달하지 않고, 전자 전송될 뿐이다. 최고 책임자가 중간 관리자에게 공문으로 지시하면, 중간 관리자가 이걸 바탕으로 이첩공문을 만들어 다음 단계 관리자에게 전파하는 방식이다.

말이 달려가는 것 보다 전자 문서가 날아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긴 하지만, 애초에 전자문서는 처음부터 최고 책임자가 실무자에게 바로 뿌릴 수 있고, 실무자로부터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설계만 잘 하면, 중간 수합단계 거치지 않고, 실무자가 실무 결과만 입력하면 즉시 통계처리까지 된 보고서가 최고 책임자에게 전달될 수도 있다. 이걸 구태여 여러 단계의 중간 관리자를 경유해 가며, 이첩공문을 작성해가며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이 경우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단계별 중간관리자를 생략하고 실무자들과 책임자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엉킨 네트워크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기존 문서 전달 및 보고체계를 고집했고, 이는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상황,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무력함을 넘어 심각한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이미 교사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했는데, 번번히 뒷북치는 공문이 날아오거나, 앞뒤가 안 맞는 공문이 날아오고, 다시 수정공문이 날아오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교육부 관리들조차 이를 깨달았다. 그리하여 4월 6일로 예정된 등교 개학의 강행 여부를 긴급히 조사하기 위해 4월 3일 저녁, 교사들의 휴대전화에 문자로 구글 설문을 날렸다.

그런데 공문도 없이 느닷없이 날아온 구글 설문지 링크를 본 교사들 중 상당수가 이걸 스미싱 툴이라고 생각해 바로 삭제해 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 만에 7만명 이상의 의견이 접수되어 바로 통계처리되고 보고서까지 자동으로 작성되었다. 이걸 공문 전파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4월 6일이 될 때까지 교사들에게 전달이나 되었을까?  

21세기 네트워크 사회다. 실무자인 교사들에게 많은 판단의 자율권을 주고, 그들의 네트워크에서 다양한 의견교환을 통해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하며, 최고 책임자가 이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바로바로 피드백을 제공하고 필요한 지원을 결정한다면, 우리나라 교육은 빛의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문서를 받아 이걸 가공해 전달하는 마디 역할을 하던 중간관리자들 역시, 이러한 시스템이 오히려 발전을 방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성찰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온라인 개학은 교사들에게 많은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었다. 교사들이 이 도전에 응하여 분투하고 있을 때, 교육행정가들이 옛 방식을 부지런히 고수하고 있다면 이는 직무 유기일 수 밖에 없다. 

지금이 몇 세기인데 아직도 파발인가?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