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과서 성 단원 수정해 확대·심화해야
디지털성폭력 난무..성교육 전문성 강화를

[에듀인뉴스] 박근혜 정부 때 교육부가 급조한 국가성교육표준안(표준안)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보다 훨씬 더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안은 보건교사가 가르치는 멀쩡한 보건교과서의 성 단원을 흩어서 다른 교과의 교사들이 자기 교과수업에 나누어 교육을 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교과서 근대사 영역을 다른 교과 교사들이 나누어 수업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표준안 작업에는 ‘오직예수진리한국교회총연합’,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등 극보수와 종교색 짙은 54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이 문제가 불거졌던 2015년 당시 많은 전문가들과 여성단체, (사)보건교육포럼, 여성가족부까지 나서 공식적인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표준안의 시행을 담은 '2020학교보건교육분야 정책 추진 기본계획'을 교육부가 시달하고 교육청이 자체계획을 첨부해 단위학교에 배포하고 있다.
 
표준안은 성차별적 고정관념 강화, 가해자 중심 성폭력 서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행동지침 강조 등이 널리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바 있다. 

또 학교보건법 제2조와 9조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보건교과서의 학교 성교육 구조를 무너뜨리고, 교육부의 공문서에 해당하는 지침 등에 의해 시행되고 있어 법질서 문란행위로 볼 수도 있다. 

내용도 문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보건교과서의 내용보다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여성단체 등은 주장하고 있다. 

표준안은 종교편향적이고 보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모든 교과에서 모든 교사가 융합·통합형으로 성을 가르치게 하고, 학교에 존재하지도 않은 성교육 담당교사라는 가칭을 부여하여 업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정체불명의 교육체계로서 학생의 성학습권을 현저히 침해하는 행위다. 

(사진=kbs 캡처)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학교 성교육은 갈수록 전문성을 요구받고 있다. 

표준안은 이러한 현실을 도저히 반영하지도 못하고 있을뿐더러 오히려 여성 인권침해 요소가 많고 반인권적이며, 자위행위, 성인지감수성 등 인권적인 성교육을 외면하고 있다. 

성차별적 고정관념 강화, LGBT완전 배제, 스쿨미투, 디지털 성폭력 등 최신 논의 사안은 아예 반영되지도 않았다. 

2020년 성교육표준안 추진과제에서는 ‘양성평등’ 관점을 유지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평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성적존재이고 성적자기결정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이 성적존재가 아니라면 성교육은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표준안은 “성폭력 피해학생이 있을 경우 성교육 시 수업주제에 따라 피해 학생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하여 수업기피를 허용”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경악스런 지침이다.

상당수 보건교사들은 이 표준안 지침을 외면하고 국가보건교육과정에 의해 집필된 보건교과서의 성단원을 이용하여 체계적인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개학을 하면 이를 두고 현장의 갈등이 깊어질 우려가 있다. 

성교육표준안이 성교육의 기본지식과 목표를 제대로 준수했는지 여부도 의심스럽다. 

성교육에는 생물학적 지식 이외에도 윤리적, 정서적, 정체성 등이 가치관이 포함되어야 하고 국제적 통념이나 민주적 가치, 국제협약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인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성교육의 내용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성교육자에 대한 기준은 대체로 엄정해야 한다. 범교과학습체계로 구성된 표준안이 자격미달이거나 기본지식이 부족한 다른 교과 교사들이 담당하도록 명시된 점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따져 볼 일이다.

일찍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2015년 5월 1일 보도자료 및 황우여 교육부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성교육 표준안 정책 실행을 즉각 중단하고 수정해야 한다. 모순적인 교육 내용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을 조장하며, 청소년들에게 경멸적이고 편협한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며 이는 정보권, 건강권,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현재까지 교육부는 처음부터 종교편향적으로 제작된 표준안의 문제점과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사들에게 사용할 것을 지침으로 하달하고 있다. 

표준안을 기획한 교육부 부서와 과장, 장학사들이 교육부와 주변기관에 여전히 포진하고 있고, 보수적 보건교사단체의 전현직 임원 등이 표준안의 자문그룹을 맡으면서, 이 단체가 저작했던 교과서의 출판사에서 표준안 관련 정책과제자료집 등을 출판해 배포한 전례가 있고, 이 단체에서 추천한 보수적 전문가 등 자문그룹이 현재도 각 교육청 표준안 교사연수 강사를 맡고 있는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표준안을 전면개편하거나 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교육부는 이에 대한 반성이 없다. 창피한 줄도 모른다. 

교육부는 오히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보건교과서의 성단원을 수정해 더욱 확대·심화하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졸업이수 필수학점처럼 설정하는 등 체계적 보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유은혜 장관은 이 문제를 전체 교육과정 개편의 어처구니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어처구니 없는 교육부가 되지 말기를.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