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등교 개학이 실시되면 거리두기, 식사 시 대화 금지 등 지켜야할 수칙들이 많다. 이런 상황은 학생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지만 꼭 필요한 수칙이다. 학생들은 자유제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대안학교인 꿈의학교 중2 학생들이 '에세이쓰기' 수업을 통해 ‘자유제한’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에듀인뉴스] ‘자유 제한’. 처음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넓은 범위, 너무나도 많은 자유제한들을 글로 풀기가 복잡하게 다가왔고, 어려웠다. 그래서 엄마와 얘기를 하다가 내 생각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자유 제한’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종차별’ 문제였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서는 필요에 의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한이 있고, ‘차별’이라고들 부르는 공정하지 않은 제한이 있다. 나는 먼저 공정하지 않은, 차별적인 자유와 자유 제한에 대해 생각했다.

오바마 대통령 만화나, <사라, 버스를 타다>라는 책 등 어릴 때 잠깐씩 봤던 책들이 아니고는 사실 인종차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거나 접한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종차별이 거의 없고, 딱히 인종차별을 접할 기회도 많이 없어서 나는 내가 인종차별에 대해 잘 아는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나에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 THE HELP 더 헬프의 한 장면,

인종차별에 관한 영화를 찾아보다가 <THE HELP 더 헬프>를 보게 됐다. 흑인 여성 가정부의 삶을 다룬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의 가정부들은 정말이지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충격 받은 것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더럽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럽게 취급하고 종처럼 부리고 무시하는 모습에 정말 화가 났다. 백인이 흑인과 어울리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그 눈초리 때문에 흑인들을 더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들도 안타까웠다. 

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삶에서 많은 자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제한되었을까? 영화에서는 가정부의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이유가 가정부의 편리함과 가정부를 존중하는 마음이었을까?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흑인 여성인 가정부와 같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면 병이 옮는다는 생각에 화장실까지 만드는 것이다. 

버스에서도 도로에 어떠한 사건이 생기면 흑인들만 버스에서 내려야 했고,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 받고 손가락질 받아야했다. 우리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인권의 자유보다도 더 나아가 스스로의 개성적인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흑인들은 개성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존중받지 못하고 피부색과 ‘더럽다’는 이유만으로 생활에서, 삶에서 많은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었다.

“내가 쓴 휴지의 양까지 검사해요. 내가 집에서 휴지를 가져오는 줄도 모르고..”

“걔, 찜찜해서 그래. 흑인과 화장실을 같이 쓰기가…”

“집 밖에 화장실을 만들어줘. 롤리한테 가정부 화장실을 만들면 집값이 확 뛸 거라고 말해. 같이 쓰면 위험해. 유색인은 이상한 병이 있다고. 그래서 내가 가정 위생법 발의안을 쓴 거야. 모든 백인 가정은 유색인 가정부용 화장실을 따로 둬야 한다는 법안.”

“‘검둥이 남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에 백인 여자 간호사가 근무해선 안 된다.’, ‘백인 학교와 유색인 학교 간에 책을 맞바꿔선 안 된다. 같은 피부색끼리만 쭉 사용해야 한다.’, ‘유색인 이발사는 백인 여자 머릴 손질해선 안된다.’, ‘백인에 대한 유색인의 동등권을 주장하는 글을 인쇄, 출판, 배포하는 자는 체포, 투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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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그 안에 있어? 그 안에서 뭐해? 내 변기에 앉지 마! 넌 해고야, 미니 잭슨! 그래, 꺼져!”

백인의 변기를 썼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 자유 제한일까?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멜라닌’의 색소의 종류와 양이 다르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흑인과 접촉하고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면 검증되지도 않은 이상한 병이 있다고 여기는 것. 바보 같은 차별일 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의 한 장면.

넷플릭스에서 만든 미드, ‘빨간 머리 앤’을 본적이 있다. 모두 알고 있는 빨간 머리 앤 원작과는 내용이 많이 달랐고 그 안에 그 시대에 있던 문제(페미니즘, 동성애, 인종차별 등)들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생소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와 사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드라마였다. 

길버트가 흑인 친구 세바스찬과 함께 에이번리의 자기 집으로 와서 함께 생활 하는데, 거기에서도 인종차별이 묻어나왔다. 아픈 세바스찬을 데리고 에이번리의 의원들을 찾았지만, 의원들은 세바스찬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세바스찬을 진료하기를 꺼려했다. 

물론 의원이 환자를 거부하는 것도 의원의 자유이지만, 진료를 자유롭게 받을 수 없는 것도 자유의 제한이라고 생각한다. 또 흥미로운 건, 백인들이 흑인들을 더러워하며 무시하듯 백인이 흑인들이 사는 곳에 가면 무시 받고 손가락질 당한다는 거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 왜 사람들은 서로 자신만의 그 잘난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해서 차별하는 걸까? 인종차별의 사례들이나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했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고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세바스찬의 엄마가 길버트와 세바스찬이 살고 있는 집에 와서 세바스찬의 아이를 봐 줄 때, 세바스찬을 편견이나 차별 없이 대하는 길버트와 길버트에게 편하게 대하는 세바스찬을 꾸중하고 계속해서 길버트를 주인 대하듯 깍듯이 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는 백인들에게 큰 상처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아빠가 장난감을 주셨었죠. 주인집 애들이 갖고 놀던 그런 거요. 엄마는 그걸 보고 불같이 화내셨죠. 좋은 거 가지면 어때서요?”

“내가 아는 백인들은 흑인이 뭘 가지는 꼴을 못 봤지. 근데 네 아빠는 분수를 모르고 설쳤어. 욕심을 부렸지. 집과 땅, 사업. 그러다 결국 죽었어.”

“교수형 당하셨어요? 맞아 죽었군요..”

“그 여자가 아무리 친절한 이웃이라고 해도 백인 여성과 단둘이 있으면 안 돼.”

“무슨 짓을 했길래. 너한테 굽신대는 백인 하녀가 둘이나 돼? 널 부리지 않잖아.”

“저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제정신이니? 자식도 있으면서 어리석게 굴지 마라. 그런 행동에 너무 익숙해지면 나중에 미움 사! 주제 파악하는 법도 못 배웠냐?”

그녀와 세바스찬의 대화를 보면서 그녀의 삶에서 묻어난 인종차별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흑인들은 대부분 백인들의 밑에서 일했다. 그리고 세바스찬의 엄마처럼 생활 속에서도 백인은 주인이고 흑인들은 백인들에게 맞춰야 하고, 백인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며, 흑인은 자신의 소유를 가지면 그것은 욕심이 된다는 인식들이 박혀있었다. 

흑인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처럼 습관적인 자유 제한을 스스로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사회적인 제한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습관적으로 제한한 것인데, 사실 그러한 인식과 습관, 사고들은 모두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직접적인 자유 제한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자유 제한인 것이다.

그렇다면 간접적인 자유 제한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도덕도 간접적인 자유 제한이다.

예를 들어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합시다”는 예절이고, 자유를 제한하며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배우면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자유 제한은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또 다르게 바라본다면 공동적인 자유 제한(교칙, 헌법 등), 개인적인 자유 제한(결심, 목표 등)도 있다. 개인적인 자유 제한보다 공동적인 자유 제한이 더 지키기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자유 제한은 스스로 혼자서 목표나 결심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기 때문에 결단이 무너지기 쉽다. 하지만 공동적인 자유 제한은 소수 혹은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결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실천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그렇기에 공동적인 자유 제한이 개인적인 자유 제한보다는 더 사람들에게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차별적인 자유 제한은 인종차별 말고도 많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성차별’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고자 한다. 성차별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은 남자가 든다’, ‘집안일은 여자가 한다’ 등등의 너무나 익숙한 말들 같은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성차별을 하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던져대지만, 당하는 사람은 기분이 매우 불쾌하다. 

나도 한 번은 초등학교 영어 캠프에서 조 발표를 위해 ppt 만드는 담당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한 남자 선배가 나한테 와서는 “여자가 무슨 컴퓨터야. 잘하지도 못하면서. 너는 그냥 발표나 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억울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물론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고 이 정도는 가볍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어리고 컴퓨터 작업을 좋아하고 즐겼던 나는 큰 충격이었다. 

당시엔 어려서 단지 화가 나기만 했지만 지금, 이 에세이를 쓰며 생각해보면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내 역할을 할 자유를 제한 당한 것이다.

저번에 화상통화를 통해 나눴던 ‘자유 제한’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유와 제한은 반대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는 자유 제한을 통틀어 여러 방면으로 바라보기만 했지, 자유와 제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자유와 제한은 반대된다. 

하지만 그 반대되는 자유와 제한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지금의 사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자유만 세상에 존재하거나 제한만 세상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유만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분쟁이 일어날테고, 제한만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국가는 자유 제한이 이루어진, 인민 공화국이다. 한 사람의 뜻대로 나라가 움직이는, 즉 인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는 체제인 것이다. 그래서 제한만 존재하는 것의 적절한 예시가 인민 공화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민 공화국의 어떠한 삶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체제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장점이나 단점을 생각해보자면 장점은 한 사람이 주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제제와 통제가 잘 이루어져서 질서가 맞는 점이 있고, 단점은 개인의 자유(종교의 자유 등)가 제한되고, 주관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서를 이루어 주는 자유 제한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질서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마다의 생각과 사고가 다르기 때문이고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는 제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뜻을 펼치는 것처럼 자유와 제한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유 제한인 교칙 중 ‘색조 화장에 대한 자유 규정’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다. 

자유를 중심으로 ‘색조 화장’을 바라본다면 화장은 각자의 개성과 멋을 살리는 도구다. 하지만 교칙에서 ‘색조 화장’ 을 제한하는 이유는 학생이 화장을 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학업에 힘써야 하는 학생이 화장에 신경을 쓰면서 외모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학업에 열중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독한 화장품들을 사용하면 피부가 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에 관한 자유 제한은 적절한 이유를 가지고 생활의 균형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교칙인 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화장에 대해 “옅은 화장이나 기본적인 화장은 괜찮은 것 같으나, 너무 진한 화장은 보기에 그렇게 좋지 않다. 그리고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쁠 나이인데 화장으로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도 안타깝다. 클렌징이 정말 중요한데, 아직 어려서 그런 걸 잘 모르고 남아있는 화장품들이 피부를 정말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셨다. 

이처럼 적절한 자유 제한은 합당한 이유와 조율로 이루어진 제한이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자유 제한이라는 커다란 범위에서 여기저기로 시선을 돌리면서 생각을 해보려니까 흥미롭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처음에 학년장 선생님께서 얘기하셨던 ‘큰 물에서 놀길 원한다’는 말씀이 그 때는 그저 막막하고 처음에는 “조금 쉬운 주제 주시지..” 그런 생각도 들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 자유 제한에 대해 약간의 스스로의 부담을 가지고 생각하고 써내려가다 보니까 나의 사고에 놀라고 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 

이게 맞나 싶고 말이 되나 싶을 만큼 이런 저런 얘기를 쓰다 보니 분량은 중요하지가 않았다. 

다음 에세이도 기대가 된다. 이렇게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된 영화나 책을 읽으며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숙제는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흥미롭고 재밌었던 것 같다. 부디 내가 전하고자 하는, 고민했던 ‘자유 제한’에 대한 생각들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우채윤 꿈의학교 중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