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열체크로 잡을 수 없는 무증상 감염자..."학교 방역은 현실 아니라 소망"
개학은 고3 학생 학생부 기재 위한 선택?..."생기부 기재를 제외하면 된다"

[에듀인뉴스] 나는 1980년, 그 해를 살았다. 그게 역사가 된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나는 2020년을 살고 있다. 올해가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는 예감이 강렬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등학교 3학년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사진=박용성 교사)
박용성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대한민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대한민국 교사’다. 지금은 여수에서 고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로 발령을 받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1·2)’, ‘스토리텔링, 스토리두잉으로 피어나다’ 등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는 티스쿨원격교육연수원에 영상강의로 올라가 있다. ‘시에서 꺼낸 토론수업주제 30’과 ‘대한민국 국어수업 시리즈’(가제)로 ‘대한민국 문법’, ‘대한민국 문학’, ‘대한민국 독서’ 등 또 다른 책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탑재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사진=박용성 교사)

[에듀인뉴스] 점심시간을 앞두고 수업을 서둘러 끝내고 아이들 체온 측정을 했다. 이상이 없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나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교내식당으로 이동하여 자기 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까지가 4교시 교과담당교사의 책무다. 초등 1학년이 아니라, 고교 3학년 교실의 풍경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 아이의 체온이 37.5℃를 넘은 것이다. 다시 검사를 했는데도 달라지지 않자, 담임교사를 불렀다. 담임의 검사결과도 비슷하자 부랴부랴 보건교사가 달려왔고,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발표수업을 한 뒤라 아이가 긴장해서였을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학교에서 코로나 방역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소망이다.

우선 교실만 해도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수업을 듣고 있다. 교실이 좁으면 복도로 보내 수업을 들으라지만, 그건 한 번도 교단에 서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바로 옆 반 교사의 목소리가 겹쳐 도무지 수업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수업시간이나 점심시간은 어찌어찌 교사의 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낫다. 하지만 쉬는 시간은 통제불능이다.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마지막이 ‘심각’ 단계라고 하는데, 날마다 학교는 ‘심각 이후’ 단계다. 아이들은 같은 책걸상을 이용해 이동수업을 하고, 같은 수도꼭지에서 양치를 하며, 정수기의 같은 버튼을 눌러 물을 마시고, 자판기의 같은 버튼을 눌러 음료수를 꺼내 마신다.

냉정하게 보면 지방자치단체가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해야 하는 곳이 학교인지 모른다.

하지만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은 아직은 학교에 코로나 감염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학교에 감염자가 생기면, 학교는 그대로 끝이다. 감염자에 의한 전염 차단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게, 솔직한 학교 상황이다.

하루 세 차례 발열검사를 하는 것은 유증상자를 걸러내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만의 하나, 무증상 감염자가 있다면 학교는 어찌 될까?

작년까지만 해도 여수는 관광객이 1500만명이 넘는 곳이었다. 여수에는 이름난 해수욕장이 몇 군데 있다. 또 ‘여수밤바다’ 정경은 사람의 가슴을 헤집어 놓을 만큼 아름답다.

머지않아 그 해수욕장들이 문을 열 것이고,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러면 밀집과 밀접이 이루어질 것이고, 어떤 공간은 밀폐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코로나 전파가 이루어질지 모른다.

불타는 여름을 지나야 하는 학교, 난 그게 무섭다.

2020년 기준 고등학교 학생부 기재 내용.(자료=https://blog.naver.com/mptech10)
2020년 기준 고등학교 학생부 기재 내용.(자료=https://blog.naver.com/mptech10)

생활기록부 기재를 돕기 위해 개학 했다?..."생활기록부 기재를 제외하면 될 것 아닌가?"


등교를 강행하는 교육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수시를 앞둔 고3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관찰할 수 없는 것은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다’는 것이 학생부 기재의 대원칙이다. 그래서 원격수업으로는 안 되니 등교수업을 해야겠다는 것이 교육부가 내세우는 원칙이다.

이 문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이렇게 되물었다. “3학년 1학기 학생부를 수시전형의 반영대상에서 제외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3학년 1학기에는 내신성적만 반영하고, 나머지는 모두 반영금지 처리하면 될 것을, 왜 교육부만 모른 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밉보일까 봐 숨만 죽이고 있을 뿐,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수행평가만 해도 그렇다. 올해부터 교육부는 수행평가에 대한 학부모나 사교육 개입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업시간 중에만 실시’토록 규정을 강화했다. 잘한 일이다. 그러면서 수행평가 반영비율을 20% 이상에서 4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10% 이상으로 재조정했다.

이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반영비율을 학교자율에 맡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등교를 고집한 이유 하나가 또 사라지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육군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신 분이다. 전쟁을 회상할 때마다, 매복된 적의 공격을 받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손발을 벌벌 떠셨다. 그렇게 전우를 잃어버린 회한이었으리라.

대통령 말씀처럼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은 총탄이 무증상자라는 보이지 않는 총기에 장착되어 밀집과 밀접과 밀폐를 파고들고 있다. 그러한 매복은 불안을 넘어선 공포다. 불행하게도 학교현장도 그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다.

불안이 얼마나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지 아는가. 공포가 얼마나 우리를 오그라들게 하는지 아는가.

이제 멈추라. 일단 1학기는, 원격수업으로 돌리라. 걱정스러운 고3 문제는, 수시에서 ‘학생부 3학년 1학기 반영 제한’이라는 특단의 조처로 과감히 풀라. 아니 이참에 3학년 1학기 학생부 반영을 아예 금지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도 심각하게 검토하라.

수학능력시험이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는데, 3학년에 올라와서까지 이런저런 활동까지 강요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

EBS와 연계해 방송만 틀어주는 원격수업방식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우려도 알고 있다. 경황없이 시작한 1학기는 이대로 가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해 2학기부터는 원격수업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내라. 대한민국 교사들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분들이다.

“클릭만 하고 다시 잤어요” 하는 말이 안 나오려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예산을 쌍방향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필요한 기자재 확충에 예산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케이 방역’이 그랬듯이, 교육도 대한민국이 만들면 세계가 따르는 뉴노멀이 될 것이다. 이게 ‘케이 에듀’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등교 못 하는 세상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라"


교육부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날씨는 걱정하면서도 시대의 기후를 읽지 못하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총리께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비시(Before Christ)와 에이디(AD)로 나누어진 세상을 살아온 우리가, 이제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Post Corona)로 나누어진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는데, 교육부만 이전 세상의 패러다임에 붙잡혀 있는 것 같다.

“지금 등교 못 하면 올해 아예 못 한다”는 것이 교육 당국의 생각이다. 그렇다. 등교 못 하는 세상이 왔으면, 등교를 못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목숨을 걸고라도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인지, 아니 학교는 교사가 꼭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쳐야 하는 곳인지, 근본적으로 물을 때가 왔다.

학교는 교사의 가르침이 학생의 배움으로 전환되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배움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이것이 교육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학생중심수업의 바탕이 아닌가.

보라.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르친 것만 알고 있는가.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스스로도 배울 수 있는 세상이고, 실제로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알아가고 있다. 학생은 교사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가르침의 핵심은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배움의 자세를 갖도록 힘을 키워 주는 데 있다.

“접속이 늘어나면 접촉이 줄어든다”는 것이 코로나 이전 시대의 공익광고 문구였다. 하지만 이 카피는 더 이상 공익적이지 않다. 접촉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요청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300년간 지탱해 온 근대교육의 틀을 확 바꿀 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