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영화 퍼펙트센스 

[에듀인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빗장을 걸어 잠갔던 미국은 서서히 문을 열고 있다. 마디 없이 흘러가던 시간은 이제 여름을 향해 있다. 여전히 확진자 수는 늘어가고 아직 모든 것이 조심스럽지만,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듯하다.

마스크 쓰는 것을 이상하게 보던 미국 사람들도 대다수 마스크를 챙겨 쓴다. 거리에선 직접 만든 듯 보이는 천 마스크를 쓴 사람이나 손수건을 묶어 쓴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 <퍼펙트 센스>는 알 수 없는 감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후각부터 미각, 청각, 시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감각을 잃는 다는 것,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영화는 그런 위기 상황 속의 혼란스러움을 비추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잔잔히 보여준다. 영화 중간 중간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Life goes on).”

지금 이곳의 모습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식료품을 파는 곳 외엔 모든 곳이 굳게 잠겨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 저기 “we are open!!” 이라는 현수막을 걸고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열었다는 말이 이렇게 반갑고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일상의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번 달엔 이곳 ‘포틀랜드’라는 도시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포틀랜드는 미국북서부의 작은 도시이다. 미국의 다른 유명한 도시처럼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로컬 비지니스가 발전한 곳, 도시재생사업의 본보기가 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온다.

포틀랜드는 1980년대 도시정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살리면서도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고, 지금은 사람중심의 친환경도시, 지속가능한 것을 선택한 도시, 창조도시라는 수식어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지역의 특색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이 땅에서 난 것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만드는 ‘창조 정신’이다. 최근 포틀랜드는 ‘힙(hip)이란 개념이 새로 떠오르며 ’힙스터의 성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포틀랜드의 이러한 특징을 직접 경험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파머스 마켓’이다. 파머스마켓은 지역상품 소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역에서 직접 수확한 과일과 채소, 또는 지역에서 생산한 것으로 만든 가공식품 등을 파는 장터다.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열린 파머스마켓.<br>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열린 파머스마켓.(사진=이다정 교사)

포틀랜드주립대학(P.S.U) 파머스마켓은 가장 크게 열리는 장으로 몇 달 전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 그곳을 방문했다. 가자마자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을 뽐내는 과일과 야채를 멋스럽게 디스플레이 해 놓은 것에 시선을 빼앗겼다.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에 쏙 빠져 구경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는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였다.

사려는 사람들의 이런 저런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기쁜 얼굴로 답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은 흡사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키운 것에 대한 흡족한 마음을 당당한 모습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긴 설명을 듣고 그냥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저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본주의에 찌든(?)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을 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당장의 이윤보다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것에서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이트마켓.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하여 밤에 열리는 마켓으로 다양한 핸드메이드제품을 만날 수 있다.(사진=이다정 교사)

무조건 많이 버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파는 이들 뿐 아니라 사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역의 것을 소비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로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 더 비싸거나, 화려한 포장이 없어도 흔쾌히 값을 지불했고, 그들의 표정 역시 밝았다.

파머 마켓 뿐 아니라 포틀랜드의 많은 산업들은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의 독특한 존재감을 유지하는 협력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아기자기하고 감성 충만한 예술가들의 독특한 작품들, 핸드메이드 제품들은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만날 수 있다. 다소 엉뚱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눈에 띄는데, 그것이 포틀랜드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사는 땅에서 생산한 것을 누리고, 그것을 더 가치 있게 환원하기 위해 독특한 브랜드를 만들어 사람들과 연대하며 성장 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의 삶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자부심의 사전 뜻은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한국에서도 경제력, 학력을 떠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구두를 고쳐 주시면서 편히 걸으라며 긍정의 힘을 불어 넣어 주시던 아저씨, 국밥 한 그릇도 정성껏 끓여 내어 주시며 웃으시는 아주머니. 우리 사회에도 분명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곳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 더 바라게 된 것은 우리 사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니 이곳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다른 주와 달리 오레곤주는 셀프주유소가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고용기회를 늘리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비워두고, 소기업을 지원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자부심은 자신 스스로 느끼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은 드러낼 수 있도록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소상공인이 80%인 도시. 그들의 혁신적인 시도와 노력이 사그라들지 않고 꽃피울 수 있는 이유는 함께 나누고 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은 그렇게 생긴다.

사상 유래 없는 혼돈 속, 먼 곳에서 한국의 교육현장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미 온라인으로만 한 학기를 마친 미국과 달리 변화에 맞서 여러 시도를 하며 애쓰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교사로서 자부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나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들이 보다 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
이다정 경기 신능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