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 제도, 교육 정책, 교육 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사진=픽사베이)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사진=픽사베이)

[에듀인뉴스] 교실에서 에어컨을 끄자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 반은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28.5도가 되기 전에는 켜지 않는다. 그렇게 된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에어컨은 잠시 꺼둘게


‘북극곰아’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들어 가사부터 차분히 살펴보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넘치지 않는 흥겨움이 있었고, 어린이 노래인 듯 하지만 유치하지 않은 선율로 아이들의 귀와 입을 끌어들인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북극곰아 북극곰아/ 너의 보들한 하얀 털이 난 좋아/ 북극곰아 북극곰아/ 너의 동그란 까만 눈이 난 좋아/ 차가운 얼음 위에 니가 니가 살수 있게/ 뜨거운 여름에도 에어컨은 잠시 꺼둘게♬

그렇다. 노래에는 ‘에어컨은 잠시 꺼둘게’라는 부분이 있었다.

노래가 무색하게 우리 교실은 에어컨이 빠방하게 틀어져 있었고, 조금 더 틀면 추울 지경이었다.

마침 한 아이가, “우리 에어컨 꺼요!”라고 이야기 했다. 일단은 껐다. 여기서 다른 모든 아이들이 “맞아요, 우리 북극곰 불쌍하니깐 에어컨 꺼요!”를 외친다면 너무 아름답고 동화 같은 이야기겠지만, 현실의 교실은 모든 교사들이 알 듯, 그렇지 않다.

파주 깊은 산골의 이 아이들조차, 전체 사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 따위, 쉽사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꼭 잘못된 것만도 아니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건강한(‘건강한’이라는 수식어조차 필요 없지만) 개인주의 문화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할 뿐이다.

어쨌든 에어컨을 끄자는 말에 몇몇 아이들은 찜찜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더운데. 그럼 이제 에어컨 못 켜요?”

‘북극곰아’ 노래를 부르면서, 녹은 빙하에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불쌍한 북극곰 영상도 보고, 지구 온난화는 왜 일어나며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부했는데, 이런 얘기가 나오면 솔직히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나, 앞에서 얘기했듯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고, 그런 다양한 생각을 평화적으로 조율해 가는 게 민주주의다.

“선생님은 에어컨을 켜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이 쾌적하게 생활하면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해요. 환경 생각한다고, 여러분들이 막 더워 미치겠는데, 강제로 에어컨 못 켜게 할 생각 없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 ‘생태’와 ‘환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지만, ‘강요’로 이루어지는 그 어떤 숭고한 가치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

‘도그마(맹신)’에 빠진 모든 이념, 주의, 가치는 항상 실패하며, 결국 폭력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상징적으로 얘기하는 ‘폭력’이 아니라, 실제 무력이 동반된 ‘폭력’ 말이다. ‘현실 사회주의’는 결국 그래서 실패했다.

그렇다고 의미가 있는 가치에 대해 손 놓고 있는 것도 교사로서의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럼 우리가 막 그렇게 덥지도 않은데, 아무 때나 에어컨을 켜도 괜찮은 걸까요?”

질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아니라고 한다. 걸려들었다 이놈들.

“그럼 얼마나 더우면 켜는 게 좋을까?”

재빨리 다시 물었다.

“지금이 몇 도에요?”

한 아이가 물었고, 지금은 어떠냐고 되물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답한다.

시스템 에어컨에 현재 온도 알려주는 버튼이 있기에 눌렀더니, 26.5도였다. 생각보다 높다고 했다. 몇 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곽노근 교사의 교실 안에 안내된 에어컨 사용 규정에는 적정 실내 온도는 26도, 가동 온도는 28도 이상으로 되어 있다.(사진=곽노근 교사)
곽노근 교사의 교실 안에 안내된 에어컨 사용 규정에는 적정 실내 온도는 26도, 가동 온도는 28도 이상으로 되어 있다.(사진=곽노근 교사)

우리 반 한 쪽 벽에, 내가 이 교실을 사용하기 전부터 붙어 있었던, ‘에어컨 사용 규정’ 안내 게시물에는 ‘가동 온도 28도. 적정온도 26도 유지’라고 써 있다.

그걸 본 한 아이가 28도로 하자고 했고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만 끝나도 참 쉽다. 하지만 현실은 더 어렵다. 나는 추위를 잘 탄다며 계속 29도로 주장하는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온도 논쟁은, 결국 28.5도로 합의를 봤고, 그 이후로 우리 반은 28.5도가 되지 않으면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나는 에어컨에 손을 대지 않는다. 전기 담당하는 아이가 있어, 그 아이가 수시로 온도 확인을 하고 28.5도가 넘으면 켜고, 안 넘으면 안 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덥다고들 얘기하지만, 28.5도까지 가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그 결정을 한지 2주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한 번 정도밖에 켜지 않았다. 대부분 28.5도 아래여서, 켜지 않고 생활했다. 다소 더워도 선풍기로 충분히 버텼다.

아이들은 그래도 자기들이 한 결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워도, 온도확인을 한 후에 28.5도가 되지 않으면 스스로 켜지 않는다. 물론, 힘들어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어컨이 환경에 나쁘다는 것은 사실일까


내가 약간의 바람을 넣기는 했으나, 본인들의 결정에 의해 에어컨을 일정 온도 이하까지는 틀지 않기로 했으니, 꽤 의미 있는 과정과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실 조금 찜찜했다. 아이들에게 정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환경에 안 좋다는 것을 사람들은 상식처럼 알고 있어서 아무 의심을 하지 않지만, 내가 얼핏 들은 에어컨에 대한 최신 정보는 그 상식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에어컨이 환경에 안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엄청난 전력 소모로 인한 탄소 배출, 둘째는 냉매인 프레온 가스의 오존층 파괴.

그러나 근래에 내가 들은 정보는, 최근에 나온 에어컨들은 전력 소모가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프레온 가스도 현재 친환경 냉매로 대체되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사실이라면, 에어컨이 환경에 안 좋다는 건 편견에 불과하거나, 다소 과장됐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전력소모가 많지 않다면 탄소 배출도 많지 않다는 것이고, 프레온 가스가 아닌 다른 친환경 가스가 사용된다면 오존층 파괴도 되지 않으니 사실상 환경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저 과거의 상식에 기댄 불완전한 정보를 아이들에게 준 나를, 반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알아봤다. 아래에 나오는 내용은 에어컨과 환경에 관한 다소 딱딱한 것들이 주를 이루니 관심 없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된다.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의외로 모르는 정보들이 있을 것이니(내가 그랬다) 열심히 읽어 주시라.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전력 소모의 경우...1등급 인버터 에어컨은 학교에 없다


대체적으로 에어컨이 전력 소모가 많은 것은 맞다. 보통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소비한다. 룸에어컨은 선풍기 20~30대, 벽걸이 에어컨만 해도 선풍기 10대 이상을 틀 수 있는 전기를 소비한다. 이게 대체적인 상식이고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전기에너지의 막대한 소비는 곧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여(전기에너지의 대부분은 화력발전소를 돌려 생산된다) 결국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린다.

화력발전소는 알다시피 석탄을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그 이산화탄소는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온실가스로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 다른 무엇보다 전기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는 것이 에어컨이라면, 그것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악영향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최신식 에어컨들은 사정이 다르다. 최신 에어컨 종류 중 ‘인버터’ 에어컨이 있는데, 이 인버터 에어컨의 경우 전력 소모가 현저히 적다. ‘인버터’ 에어컨 중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제품의 경우는 더더욱 적다.

과연 얼마나 전력소모가 적기에 그러는 걸까?

‘딴지일보’의 2018년 8월 2일자 기사 ‘에어컨 전기요금의 진실4 : 최악의 폭염, 에어컨을 24시간 돌려봤다’에는, 글쓴이가 실제로 집에서 에어컨을 틀며 측정한 값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

에어컨 요금이 얼마나 나올까?

1등급 인버터 에어컨으로 27도 설정 후 24시간 운전을 할 경우, 2018년 7월 21일 36.5도까지 오른 기록적인 폭염에 10.3kWh의 전기를 소모했고, 당시 최고 요금제 구간(280원/kWh)을 적용해도 하루 3000원 수준 밖에 나오지 않았다.

36.5도까지 올랐을 때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보다 낮은 온도일 경우는 당연히 비용은 더 떨어진다.

거기다 24시간을 모두 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비용은 또 더 떨어진다.(물론 단순히 3000원을 24분의 1로 나누는 값으로 시간당 비용이 균등하게 환산되지는 않는다. 처음 에어컨을 틀 때 전력 소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실험 당시의 에어컨은 2015년 형이었는데, 최근 것은 에너지 효율도 더 좋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사실상 에어컨 전기에너지 소모로 인한 탄소 배출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의 인버터 에어컨은 고가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이런 고가의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의 인버터 에어컨을 쓸까?

서울의 경우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학교에 설치되기 시작한 시스템 에어컨 난방기는 학교를 ‘전기 먹는 하마’로 만들었다. 전기 비용문제로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과한 교육용 전기료 책정의 문제가 한 몫 하긴 했지만, 단순히 그 문제만일까?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의 인버터 에어컨이었으면 과연 그랬을까?

(사진=시선뉴스 캡처)
(사진=시선뉴스 캡처)

프레온 가스가 친환경 냉매로 바뀌었다는 건 사실일까


어릴 때부터 내가 들어온 에어컨의 대표적 환경파괴 주범은, 프레온 가스였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프레온 가스(CFCs=염화불화탄소)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오존층, 너무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뭔지 가물가물하실 거다(역시나 내가 그랬다). 오존층이 없으면 우리는 태양의 그 뜨거운 열에너지에 모두 타죽을 것이다. 타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는, 오존층이 그 열에너지 중 일부를 돌려보내고,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받아들여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 오존층을 프레온가스가 파괴한다. 파괴되는 만큼 태양의 열에너지는 더 많이 지구로 들어와 지구를 뜨겁게 달군다.

다행히도, 이 프레온가스는 1990년대부터 퇴출되기 시작했다. 구형 에어컨에 쓰일 수는 있겠으나(에어컨 냉매 표시에 R-22로 나와 있다면, 프레온가스를 쓰고 있는 것이다) 신형 에어컨에는 프레온가스가 쓰이지 않는다.

새로 쓰이는 냉매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수소불화탄소(HFC)다. 그렇기에 각광받았고, 널리 쓰이게 되었다. ‘친환경 냉매’라는 그릇된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그럼 이 녀석은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으니 지구온난화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대신, 온실가스로서 지구를 덥게 만든다.

프레온가스는 그 자체로 온실가스는 아니어서, 이산화탄소처럼 지구의 열을 밖으로 못 빠져나가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존층을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신 냉매인 수소불화탄소는 온실가스여서, 지구의 열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그런데 그 효과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높다. 무려 1900배 정도.

(사진=곽노근 교사)
(사진=곽노근 교사)

집 에어컨 냉매 표시에 R-410A로 나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수소불화탄소이다. 우리 집 에어컨도 이 냉매를 사용한다.

종합하자면, 학교에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 게,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 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


교실에서 에어컨 없이,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자


무책임한 말이다. 버티긴 뭘 버티는가. 35도가 넘어가는 폭염 속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바로 3, 4년 전만 해도 우리는 에어컨을 틀지 못한 채(혹은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튼 채), 30도가 넘는 교실에서 수업을 했던 끔찍한 경험을 갖고 있다.

오죽 했으면 ‘수요일 밴드’의 ‘에어컨 좀’이라는 노래가 나와 선풍적인 인기(물론 교사직군에 한해서다)를 끌었겠는가.

수업이 안 된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짜증만 늘어갈 뿐이었다.

에어컨을 자유롭게 켤 수 있게 된 건 불과 1~2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이다. 이제 좀 자유롭게 켜게 됐는데, 뭐? 에어컨 없이, 버틸 수 있으면 버텨보자고?

욕먹을 소리라는 걸 안다. 현실을 알기에 에어컨을 켜는 교실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겠다. 볼테르의 말을 약간 패러디 하자면, 이렇다.

“나는 에어컨을 되도록 안 켜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당신이 교실에서 에어컨 켠 것에 대해 욕을 한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우겠다.”

다른 이에게 함께 하자고 할 성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아이들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실에서 에어컨 없이, 그래도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 보련다. 한명쯤은 멋있게 생각할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동참해보고 싶은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없으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