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얼굴

[에듀인뉴스] 누구나 학창 시절엔 자신이 본받고 싶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 싶었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는 꿈 많은 청소년기의 특성이기도 하다. 더불어 청소년기에 한 번쯤 읽어보았을 교과서 속의 ‘큰 바위 얼굴’이란 나다니엘 호돈(Nathanier Hawthorne, 1804년~1854년)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주인공 어니스트(Ernest)는 올곧고 근면하며 자비로운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을 듣고 이를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는 것에 놀라움을 간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은 자신이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가슴에 품은 위인의 모습으로 자신도 바뀌어 가면서 이상형의 인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럼 이것이 교육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은 청소년기에 꿈꾸고 소망하는 인물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각자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인물의 이미지는 개인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자라던 청소년 시절 1960~70년대는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을 꿈꾸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전직 대통령의 수난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마치 약속의 행사를 거행하는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前) 대통령의 재직 중에 또는 퇴임 후의 불행한 모습을 보라. 한때 국민의 선택을 받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권좌에 오른 경우든 모두가 자신의 업보를 치르며 역사의 냉엄한 심판을 받았다. 

최근엔 그들의 동상조차 철거하려는 국민의 움직임이 등장하여 주시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며 살아갈까? 이는 어릴 적부터 올바른 인성교육과 존경받는 인물로 거듭나는 ’큰 바위 얼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니스트가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고 그 대상을 항상 가까이서 보고 배우면서 성장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역사 속의 지식의 대상이었지 실생활에서 그렇게 닮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현실은 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청소년 특히 고등학생이 가슴속에 간직하는 닮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은 어떤 사람일까? 필자는 본교 학생들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누구를 가장 닮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꿈을 이루는데 롤 모델이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에 대한 학생들(응답자 40명)의 반응은 역사 속의 인물로는 김구, 이순신, 마하트마 간디, 마더 테레사, 비스마르크 등이었으며 현실 속 인물로는 스포츠 스타인 김연아, 코비 브라이언트, 메시, 힙합 가수인 트레버스 스캇, 걸 그룹의 태연, 외과 의사인 이국종, 웹툰 작가인 자마, 프로게이머 페이카, 그리고는 연예인으로 유재석, 이광수를 선호했으며 그 밖에 법조인, 기업인, 선생님 등을 거론하였다.

그야말로 1인 1색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외의 사실은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가족을 상당수(8명-20%)의 학생들이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평소에 자주 접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 그만큼 친근해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소박하고 순박하고 인정이 넘친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에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연히 일어서 백성을 이끈 지도자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국가가 위기(코로나19)인 상황이 분명한데도 이를 앞장서 극복하고 이끌어 주며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에 대한 목마른 갈증과 소망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친근하고 재미있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함께 하는 대상이 우선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행복을 제공하는 사람이 멋있고 존경스러우며 따라서 닮고자 하는 자신의 ‘큰 바위 얼굴’로 기꺼이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행복의 의미가 변하고 있으며 삶의 목표가 다양해지고 개인의 존재 의미도 평범하지만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이른바 소확행의 실천을 갈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어찌 탓하고 비난할 것인가. 그렇게 사는 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현재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종으로 진화하면서 그 강력한 전파속도는 가히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간을 멀어지게 함은 물론 심리적 거리 두기로 무한히 발전하고 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라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벗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지구촌 어디든 우리가 기대하는 ‘큰 바위 얼굴’은 성장하기 어렵다. 환경의 지대한 영향 속에서 어쩌면 그런 인물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를 구하고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인물은 이상국가 내지 낙원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의 인물로 영원한 노스탈지어(Nostalgia)가 되어 교과서 페이지나 장식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큰 바위 얼굴’ 스토리를 등장시켜야 한다. 이는 청소년에게 꿈과 낭만을 심어주고 바람직한 품성을 갖춘 이타적인 인물로 성장하기를 교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다림과 인내하는 정서 속에서 자기성찰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인류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포부로 승화하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이에 필자는 청소년에게 꿈이 없고 꿈꾸기를 거부한다고 실망과 꾸중, 비난을 앞세우기보다는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꿈꾸기를 동행하는 어른이 되고 이를 학교에선 즐겁게 교육하며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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