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라는 단일종이다. 이는 ‘현명한 인간’이란 뜻의 학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명명대로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현명한가? 여기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 

일단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호모 사피엔스는 소통과 공존의 달인으로 자신들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한 종족들을 제치고 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종족이 되었다. 따라서 서로 간의 의사전달과 공생의 전략은 생존의 디딤돌로 작용한 대표적인 병법(兵法)이요, 생활의 지혜(智慧)요, 진화의 수단(手段)이요, 성장과 발전을 이룬 문명의 기술(技術)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현생 인류 앞에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무모하다. 

개발 논리로 모든 것을 파헤치고 자연을 정복하여 물리적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날로 지구촌의 자연과 생태계는 몸살을 앓고 피폐해지며 사라져 간다. 그 결과는?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과 생태계의 파괴는 그대로 ‘자연의 역습’으로 인류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홍수나 산사태, 지진, 해일, 가뭄 등의 자연재해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그보다 더 최악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를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대가로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란 자연의 원리다. 

아마도 인류는 전염병으로 멸망을 자초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2050 거주불능 지구>가 바로 그 한 사례이다. 

그럼 인류는 어떻게 진화하고 생존해 가는 것일까? 인류의 삶과 생존의 기본 단위는 바로 가족(家族)이다. 가족은 개인의 안식처로써 삶의 원동력이요, 문명 전파의 핵심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인류의 진화가 시작되었다.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며 가족과 가족이 모여 집단공동체를 형성하여 소위 문명을 창조해 왔다. 그러므로 가족의 구성이 깨지면 이는 곧 멸종의 시작이자 문명의 종말을 재촉한다. 이런 가족이 현대에 와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가족 공동체를 살리자는 의식을 회복하려 한다. 단적인 사례로 우리나라만 해도 수년 전 어느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인간 삶의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외침으로 다가왔다. 

한 지붕 아래서 가족이란 명분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으로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상실한 채 각자도생하는 비극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낳은 슬픈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마다 차이가 크다. 지구상의 한쪽 모퉁이를 차지하는 극동(極東)의 대한민국은 굳건한 가족문화의 부활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현실에 와 있다. 이는 생존의 전략으로 가족의 위상을 높여야 할 긴박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즈음에 바로 우리에게 전화위복이자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현재 지구촌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다.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 간의 봉쇄,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찍이 없었던 현상이다. 현재로선 이보다 강력한 생존전략이 없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원래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인류가 남긴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에 따른 생태계의 절규에서 연유한 것이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인간이 무차별로 남획하거나 파괴함으로써 그들과 공생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와 숙주로 삼고 그들의 서식 환경을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코로나19의 바이러스는 박쥐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 하지 않는가. 박쥐의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 그 근본 이유다.

그래서 인류가 바이러스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생태계를 복원하고 온대를 열대로 바꾸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처방이다. 

우리는 이러한 근본을 망각한 채 화학백신만을 찾고자 전 지구적으로 혈안이 되어 있다. 참으로 현명치 못한 호모 사피엔스의 행태라 하겠다. 그래서 혹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코로나 사피엔스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즘 주말에 산을 오르면 가족 단위로 함께 온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도 집에서만 지내기 답답해서일까, 부모와 함께 산에 오고 산책길에도 동행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는 한동안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집에 잘 없으니 거의 해보지 못한 일이다. 지금은 다르다. 아빠와 아이가 같이 갈 수가 있다. 이런 모습은 어찌 보면 가족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이를 잘 활용하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진정 좋아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경제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이런 현상을 통해서 정상적인 삶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른바 언택트(untact) 사회라는 미래의 모습이 비록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비정상에 기초한 거품경제가 있었다면 이번에 그것을 깨거나 줄이면서 정상적인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경제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것은 엄밀히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을 찾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비로소 우리 삶에서 정말로 “무엇이 중헌디?”를 문의하고 답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여기에 바로 가족문화의 새로운 부활이 기대된다. 

오늘날 세계는 뉴노멀(New Normal)의 새로운 기준(standard)을 요구한다. 한 마디로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 요구하며 새롭게 부상한 논의로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규제강화, 미국의 경제 역할 축소 등으로 정리된다. 

경제 위기 이후 5~10년 간의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으로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시점에 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간 세계 경제가 3% 이상 성장해온 시대를 오래된 표준, 즉 올드 노멀(Old Normal)이라 한다면 이제 세계 경제는 뉴노멀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가족의 부활은 의미가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이제 우리 인류가 살길은 생태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두는 생태중심적(eco-centered) 기업들이 생겨나고 소비자는 그런 기업만 선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왜냐면 생태적 전환만이 우리가 살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현명한 인류의 본질이다.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모르는 사람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을 일상의 패턴으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친숙한 가족문화의 부활로 이어지고 삶의 패턴에 맞게 경제구조도 함께 비대면의 경제로 전환될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 인류가 자연의 일부임을 한 번 더 자각하고 더 현명하게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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