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중국, 가까운 듯하면서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G2로 미국과 견주고 있는 중국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을 비웃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리상으로 가까워 문화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중국. <에듀인뉴스>는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를 통해 중국의 도시에 살아가면서 느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중국을 접하고 알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인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예측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알다가도 모를 중국!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에듀인뉴스] 코로나 19의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은 국가의 강력한 정책에 따라 안정적으로 통제가 되고 있다. 간혹 각 성이나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해당 지역을 단속하고 통제하여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있다.

지난 주 필자가 생활하고 있는 다롄의 한 수산물 가공 회사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청정지역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민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으며 확진자 수의 증가에 따라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현재 뉴노멀 시대 코로나 사피엔스라고도 불리는 신인류에게 코로나 이전과 이후 사회가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전 우리의 평범한 일상들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다롄에서는 전체 시민 약 600만명을 대상으로 핵산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어서 이 반복되는 일들 속에 생기는 불안함과 우울감들이 사그라들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의 여러 유적지를 가볼 때마다 동시대 우리나라의 역사와 유적지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는 중국의 문화유산을 볼 때는 항시 그때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이에 연관된 우리의 유물유적이 오버랩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중국 문화유산을 깊이 보면 볼수록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와 자랑이 새삼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광화문 앞 광장에서 바라본 우리의 자랑스런 궁궐 경복궁.(사진=김현진 교사)
광화문 앞 광장에서 바라본 우리의 자랑스런 궁궐 경복궁.(사진=김현진 교사)

베이징과 이곳 고궁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주변의 궁궐들이 생각난다.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수도를 난징에 세웠다. 그래서 난징에는 명나라 황제의 무덤과 고궁터가 있다. 그 후 수도를 다시 베이징으로 천도하였다.

후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선양에 세운 청나라도 결국 수도를 다시 베이징으로 옮기게 된다.

북부 군벌의 세력을 물리치고 통일시킨 국민당의 장제스도 중화민국의 수도를 난징으로 세웠지만 후에 국민당을 몰아낸 마오쩌둥이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한다. 오랫동안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곳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중국에는 긴 역사와 함께 4대 고도, 7대 고도들로 알려진 옛 수도 그리고 영웅들이 많다. 한 나라의 문화유산은 수도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곳에 방문하게 되면 중국의 여러 문화 등을 접할 수 있다.

책과 이야기로만 들었던 중국의 역사 관련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스스로를 그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 대입시켜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했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선양고궁의 정전이자 동로의 중심 건물인 대정전의 팔각 지붕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선양고궁의 정전이자 동로의 중심 건물인 대정전의 팔각 지붕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청나라 고궁에서 나와 휴대폰 지도를 보면서 인근의 장씨수부(张氏帅府)로 걸어간다. 관광지임에도 일반 동네 같은 느낌이다. 미용실, 과일가게, 우리나라의 김밥천국 같은 느낌의 우육면(牛肉面)집...

과일가게에서 한라봉을 몇 개 샀다. 가격과 맛이 생각보다 괜찮다. 중국은 커다란 땅에 맞춰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맛있는 과일들이 많이 생산된다.

장씨수부 앞에서 티켓을 산 후 입장을 했다. 표 3장을 구입하는데 아들이 학생인 것을 보고 반값으로 할인을 해준다. 중국의 유적지 대부분은 학생증을 제시하면 성인 입장권의 절반 가격으로 입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학생증을 발급받지 못해서 제시를 안했는데 학생인지 알아서 보고 할인해준다.

중국 동북지역은 일본과 러시아 침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중국 본토가 군벌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때 장쭤린(张作霖)과 그의 아들 장쉐량(张学良)은 동북지역 최대의 군벌로서 동북지역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후에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내전이 벌어질 때도 공산당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 동북지역이다.

북방 봉천 군벌의 수장이었던 장쭤린은 친일파로 일본과 협력하였었다. 이후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기 위하여 짱쭤린이 탄 기차를 폭파시킨다.

아버지를 죽인 일본을 적으로 두게 된 장쉐량은 중국 국민당 정부와 손을 잡게 된다.

동북지역의 최대군벌의 저택 장씨수부 내부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동북지역의 최대군벌의 저택 장씨수부 내부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선양에 있는 장씨수부는 장쭤린과 장쉐량의 관저이자 사택이다. 1914년 지어졌으며 면적은 3만 6천㎡로 내부는 동원, 중원, 서원으로 되어 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중원이 있는데 장쉐량과 아이들이 탔던 마차도 전시되어 있고 재정을 관리했던 내장방, 손님을 맞이한 승계처 등의 건물 들이 복원되어 있다.

중국에는 워낙 영웅들과 걸출한 인물들이 많기에 그들의 고택을 복원하고 관광지로 꾸며 놓은 곳들이 많다.

국공내전(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간 공산당의 주적이었던 장제스의 사저도 저장성[浙江省] 펑화현[奉化縣]에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장씨수부를 왜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장쉐량은 중국의 근대 역사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공산당을 몰아내는 내부적인 일을 먼저 해결하고 외부세력인 일본을 몰아내자는 정책을 펼쳐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공산당 군대를 토벌하던 장쉐량을 격려하기 위해 장제스가 시안을 찾아왔다. 장쉐량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동작전을 통해 먼저 일본을 몰아내자고 주장하며 장제스를 감금했는데 이 사건을 시안사변이라고 한다.

시안사변을 계기로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2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진다. 중국과 타이완이 장쉐량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공산당의 군대를 소멸시키기 직전까지 갔다가 시안사변으로 인해 기사회생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본토까지 내어주게 만든 장쉐량을 타이완의 장제스와 국민당 입장에서는 좋게만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를 국공 합작에 기여한 위대한 인물로 평가한다.

장씨수부에 전시된 장쉐량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장씨수부에 전시된 장쉐량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장제스의 국민당은 월등히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 등으로 국민의 인심을 잃었다.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쫒겨간 후에도 끊임없이 본토 수복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다시는 대륙을 밟지 못하게 된다.

살아 생전 장제스는 자신은 패배자이기 때문에 본토를 수복할 때까지 타이완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죽는 순간에도 본토를 수복할 때 난징에 매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국민당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1949년 10월 1일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다. 장쉐량은 시안사변 이후 장제스로부터 중국 각지, 타이완 등 53년을 감금 생활을 하다 2001년 하와이에서 사망하였다.

봉천 군벌의 중심지였던 장씨수부는 혼란스럽고 모순으로 가득했던 그 시기의 모습을 얼핏이나마 보여주고 있었다.

그 밖에 입장권에 포함된 선양 금융 박물관(沈阳金融博物馆)을 들어가 옛 은행의 모습과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 등을 볼 수 있다. 화폐 박물관 밖으로 나와 본 벚꽃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