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어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어려선 이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던 탓은 깊이를 재는 척도가 당시에도 거의 쓰지 않는 용어의 생소함 때문이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하지만 나이를 막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 유행하던 노래(타타타)에 “네가 나를 모르는데 /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치 앞도 모두 몰라 / 다 안다면 재미없지 /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 비오면 비에 젖어 / 사는 거지 그런 거지 / (…) / 산다는 건 좋은 거지 / 수지맞는 장사잖소”라는 노랫말이 있었다. 왜 이 노래가 드라마에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는지 뒤늦게라도 알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오늘날 가상 세계인 SNS는 내가 보고 싶고 너에게 보이고 싶은 것만 보는 곳이다. 누추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아닌 잘 가꾸어 멋지고 너그러운 ‘나 그리고 너’가 그곳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와 너’는 서로를 얼마나 알까? 

지금은 한참 지났지만 한때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던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벌새’에선 주인공인 여학생 은희가 중2의 어린 나이에 학교와 가정에서 수시로 폭력을 당하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견디며 상처를 껴안은 채 살아간다. 

떡집을 운영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의 무관심과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울대를 가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아버지의 억압에 공부를 좀 하는 오빠의 폭력, 명문대학 진학만을 강조하는 학교 선생님의 언어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 속에서 어느 날 한문 학원에서 새로 만난 영지 선생님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영화 벌새의 한 장면

수업에서 영지 선생님이 칠판에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를 쓰고 질문을 한다. 이는 바로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명심보감』의 ‘교우(交友) 편’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와 영화 속 사건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게 우리,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선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도, 자신을 따르던 후배도, 무심한 가족도 주인공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안다고 생각했기에 주인공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문제는 계속 상처는 아리고 덧났지만 겉은 멀쩡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엔 결국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는 비극이 발생했다.

현재는 얼굴을 안다고, 따뜻한 글을 쓴다고, 댓글로 위로한다고 과연 마음까지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왜냐면 어느 순간 함께 했던 시간, 쌓아 올린 정이 한 순간에 지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철전지 원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서로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것일까? 실존하는 것일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게 돌아간다. 한때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돌아서서 시기와 질투와 혐오의 악성 댓글로 젊은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다. 현재에도 지심(知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영화 속 이야기다. 마음을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말해 준 영지 선생님은 짧은 시간 동안 은희의 힘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주었다. 붕괴된 한강 다리(성수대교)와 함께 선생님은 떠났지만 은희가 세상에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영지 선생님이 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이 통할 때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는 이에 대한 사례를 다음과 같은 훈훈한 이야기를 통해서 공감할 수 있다. 

정말로 우리 세상에 진한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구두를 구매한 딸이 어머니가 구두를 신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구두를 구입한 쇼핑몰에서 구두를 잘 신고 있느냐는 메일을 받고서 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고 반품이 가능한지 묻자 쇼핑몰에서는 반품과 함께 한 다발의 꽃과 위로 카드까지 보내주었다. 

감동받은 딸은 자신의 SNS에 사연을 올렸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여기저기 전달해 쇼핑몰을 찾았다. 이 쇼핑몰의 작은 행동은 쇼핑몰의 성장을 이끈 기적으로 돌아왔다. 바로 행복 경영을 추구하는 자포스다. 

CEO인 토니 셰이(Tony Hsieh)는 고객의 마음을 헤아림으로써 “우리는 신발이 아닌 서비스를 파는 회사다”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하였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헤아리는 것은 모두를 감동시키고 기적의 변화를 일으킨다. 

동양의 고전 『대학』에선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혈구지도 絜矩之道)”로 비슷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 하는 세상이다. 언제 이 바이러스를 퇴치하여 감염병이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세계는 온통 백신 개발에 사투를 걸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학교에는 은희와 같은 어린 학생들이 상처를 껴안은 채 살아간다. 그들이 상처를 품고 살아가기에는 오늘날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 ‘위험사회’가 우리를 ‘초연결사회’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헤아리는 작은 행동 하나가 기적을 일으키듯이 역지사지 하는 마음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바로 교육의 힘이 있다.

지금 이 시기에 몸은 비록 사회적 거리 두기로 멀어져있지만 학교든 기업이든 사람의 마음 알기를 교육하는 것은 코로나19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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