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억압당하는 다수' 한 장면

[에듀인뉴스] 광주광역시 검찰은 8월 11일 시민위원회의 다수 의견에 따라 배이상헌 교사가 수업시간에 성 윤리 수업의 자료로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당하는 다수’를 상영해 학생들에게 성적 불쾌감을 준 혐의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1년이 걸렸다.

2019년 9월 경찰이 광주의 배이상헌 도덕교사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지 1년만이다. 11분짜리 분량의 이 영화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뒤집은 ‘미러링 기법’으로 성 불평등을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를 성추행으로 본 광주시교육청 등은 윗옷을 입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성에 빗대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들이 남성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장면, 성기에 대한 언급이 표출되는 것을 감안할 때 충분히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으로 판단하여 배이상헌 교사를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였다.

성평등 교육에서 역할 바꾸기의 역지사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관료들의 행동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결과였다.   

이후 지난 1년간 배이상헌 교사의 피소를 둘러싸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교권 탄압과 수업권 침해를 항의하는 행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동료교사와 교사단체들이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를 조직했고, 중앙대 김누리, 경기대 김대유 교수 등이 배이상헌을 옹호하고 교육청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럼을 기고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교사노조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교육단체들이 교육당국의 탄압에 항의했고, 일부 여성운동가들도 배이상헌 교사의 구원운동에 동참했다. 사회 각계의 관심과 성평등 교육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동시에 스쿨미투 정책의 오류와 이를 통해 피해를 입은 억울한 교사들의 사연도 꾸준히 소개되었다.    

11월 11일 오전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br>(사진=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11월 11일 오전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사진=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무엇보다 조원배, 박춘애, 최승원, 고재성 선생 등 지역의 선생님들이 중심이 되어 성평등 교육의 정당성과 배이상헌 교사의 무죄를 촉구하기 위한 ‘급여연대’가 조직된 것을 놀라운 일이었다.

256명의 교사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에 참여하여 십시일반으로 배이상헌 교사의 생활비를 보탰고, 그치지 않는 교육청 앞 1인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조직하였으며,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배이상헌 교사를 지켜내자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순수한 마음자리로 기적을 만들어냈던 배경이다.

형사적 조치는 불기소로 결정이 났지만, 직위해제를 취소하고 학교로 복직하고자 하는 민사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아마 바람직한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교육공무원의 품위유지 위반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갖고 여전히 징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광주시교육청과 장휘국 교육감, 경찰의 대처는 비판받을 점이 있다. 교육청의 수사의뢰를 받고 딱 하나 영화의 영상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경찰은 과연 수사권을 검찰에게 양도받을 능력이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경찰은 남녀 혼합반에서 노출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상영한 것이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다며 배이상헌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여 검찰에 넘겼다.

교육자료로 쓰인 문학작품이 먼저 기소의견을 담을 만큼 위법하고 외설적인지 전문가 의견도 제대로 구하지 않은 것 같다.

나아가 교육청이 의뢰한 것이니까 관청의 체면은 살려주자는 심보로 기소의견을 유지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교육청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광주시교육청의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로 민원이 제기되었고, 이를 넘겨받은 해당 학교는 성고충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판단한 결과 성추행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육청은 그 결과를 존중하고 배이상헌 교사를 다시 교실로 돌여보내야 마땅했다. 그러나 광주시교육청은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껴 교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고 배이상헌 교사를 직위해제시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처음부터 표적을 삼았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장 교육감은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하위급 관료들에게 맡기고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배이상헌 교사를 가해자로 몰려는 관료들의 조작과 위증이 여러차례 진행되었다고 급여연대 등은 주장하고 있다. 교육청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이유이다. 

배이상헌 교사의 불기소는 스쿨미투 정책의 전환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증표다.

단순히 한명 교사의 억울함이 벗겨졌다는 안도감에 그칠 일이 아니다. 교육당국은 그릇된 스쿨미투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 몇 가지의 문제를 즉각 수정해야 한다.

첫째, 스쿨미투 혐의가 사법적으로 확정되기 전에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하고 직위해제를 시키는 묻지마 징계는 중단되어야 한다.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조치는 신속히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 조치가 곧 가해자로 의심받는 교사를 직위해제하는 면피성 행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교권침해이자 인권유린이다.

인천의 사립학교에서는 구지가의 거북머리를 성기로 해석한 교사를 성추행으로 신고한 익명의 공중전화가 걸려왔다는 이유로 전수조사 등을 실시해서 해당 교사를 수업에서 제외시키고, 직위해제 했으며, 기어이 파면했다(소청위에서 해임으로 경감). 피해학생이 특정되지도 않았고 가해의 증거도 없는데, 학교는 교육부의 메뉴얼대로 시행했다고 주장하고 교육청과 소청심사위는 학교의 조치를 증거로 채택했다.      
  
둘째,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이 특정되고 피해가 명백하게 의심될 경우 독일처럼 사법당국과 법원에서 문제를 다루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폭력의 피해 확인절차를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 다루지 말고,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에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성고충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학교 밖에서 조사하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2,3년 간 성추행 혐의를 탈탈 털어 조사하는 먼지털이식 행정조치 역시 중단되어야 한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스쿨미투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셋째, 이번 배이상헌 교사의 피해뿐 아니라 그 동안 억울하게 스쿨미투 가해의 누명을 쓰고 아픔을 겪은 교사들의 피해를 재심하고 관료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에 스쿨미투 재심위원회를 설치하고 피해를 호소하는 교사들의 사건을 다시 파혜쳐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장휘국 교육감은 배이상헌 교사를 즉각 학교로 돌려보내 아이들을 만나게 해야 한다. 시민교육감으로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경기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