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칼럼] 철학 교육, 청소년에게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재학 칼럼] 철학 교육, 청소년에게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 승인 2020.08.17 12: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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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우리는 일상에서 ‘인생철학’ ‘정치철학’ ‘교육철학’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럴 때 철학은 보편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물론 철학(Philosophy)은 어원적으로는 지식이나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처럼 철학은 ‘보편적인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해서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는 말로 교육에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생각은 청소년들에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굳건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왜냐면 그들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 있는 행동을 당당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생각의 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의 역할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이는 바로 철학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먼저 서양의 철학 교육의 실태를 살펴보자.

유럽의 엘리트 양성을 담당해 온 교육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철학과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쳐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 분야에 무수히 많은 엘리트를 배출하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간판 학부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 융합 과정)에서는 철학이 세 학문의 필두로 꼽힌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과정인 리세(lycee)에서도 이과와 문과를 불문하고 철학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경우 첫날 첫 시간에는 전통적으로 철학 시험이 실시된다.

미국은 어떤가?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아스펜 연구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이 높은 글로벌 기업의 경영 간부 후보들이 특정 교육 장소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등 철학의 고전을 착실히 배우고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bruceltk/221309247438)
(출처=https://blog.naver.com/bruceltk/221309247438)

그렇다면 왜 철학을 배우는 것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다. 더불어 혁신적인 어젠더(과제)를 정하는 것도 바로 철학교육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것 이외에 또 다른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상 같은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는 주변국들의 노략질, 침략, 국토유린, 대량학살,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어왔다. 그 속에는 ‘인간이 이렇게 까지 사악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들도 다반사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설파했다.

이는 우리처럼 피해국의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해국도 가벼이 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아직도 피해국과 가해국인 한⋅일의 역사 청산이 요원한 가운데 그러한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의 청소년에게 유사한 역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생각하는 힘을 고양하는 철학교육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의 지혜로운 사상가나 철학자들은 시대적인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고발하고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말하고 또 글로 남겼다.

예컨대 이율곡의 ‘십만 양병설’이나 유성룡의 ‘징비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그밖에 비록 소설이지만 병자호란이란 통한의 역사를 이야기로 전하는 김훈의 ‘남한산성’ 등등이 그렇다.

우리는 후손으로서 선각자들과 애국지사들이 남긴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그동안 엄청난 시련과 희생을 치른 만큼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 사고에 각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말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가 있다. 원래 이 말은 프랑스의 시인, 비평가, 사상가인 폴 발레리(1871~1945)가 한 말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과 행동의 상관관계를 말할 때 이를 단골처럼 인용한다. 좀 더 분석하여 해석해 본다면,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산다’ 즉, 생각하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내 삶은 내가 가꿀 수 있다(주도적인 삶)는 것과 ‘나는 사는 대로 생각한다’ 즉, 나 스스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의해 내 생각이 이리저리 좌우된다(수동적인 삶)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결국 이 한 문장은 두 가지 삶의 자세를 하나로 연결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생각한다는 것, 즉 ‘사색의 힘’이다. 이것은 바로 철학의 힘이란 또 다른 언급이기도 하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사는 것을 행복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 생각이 많으면 삶이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삶을 뭘 그리 고민하느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쉽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색하는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다. 그 기저(基底)는 생각은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삶은 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지만 생각하지 않는 삶은 그저 흘러가는 무의미한 시간일 뿐이다.

그래서 철학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생의 모습은 ‘사색하는 삶’이다. 결국 사색하는 삶이란 시간의 여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당당한 행복을 완성해가는 삶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사색은 생각의 습관이며, 생각은 삶에 생명과 가치를 더하는 실천적 행위다.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다듬는 것이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은 곧 삶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지를 생각하기에 따라 각자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굳건한 철학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철학을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 중의 하나가 ‘골방에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색은 통찰력과 독창성, 창의성을 기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사색의 프리즘을 통해야만 미래를 밝혀줄 새로운 학설이 탄생되고, 그 폭을 넓혀 학문이 발달된다. 아울러 모든 가치는 여유와 사색 속에서 잉태된다. 지금처럼 청소년들을 공부에만 몰아놓고 생각하는 시간조차 없이 학교생활을 강요하면 그들을 인공지능(AI) 로봇처럼 만드는 것이다.

사색을 통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20년은 불행 중 다행으로 청소년들에게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격리, 봉쇄,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인해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전례 없이 주어졌다.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아닌가 한다.

결국 학교가 장기간의 휴업과 그 후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교차함으로써 학생들은 혼자서 개인 PC를 통한 원격으로 그리고 대면 강의를 통해서 사색하는 시간을 유례없이 확보하는 기회를 맞고 있다.

이제는 이런 방식의 가정과 학교에서의 사색의 시간을 넘어 국가적으로 제도화하여 청소년이 생각하는 힘을 고양하는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시야를 나라 밖으로 넓혀 보자. 지금 전 세계는 교육혁명 중이다. 그중에 단연 독보적인 핀란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는 고정적인 학년별 커리큘럼을 없애거나 교과별 수업을 하지 않는 추세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라 말하면 같은 연령의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 모여 같은 교과목을 공부하는 모습을 연상한다.

하지만 핀란드의 교육 제도는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을 숙고하게 만든다. 이때 ‘변증법’이라는 철학적 사고를 활용하면 새로운 교육제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교육 시스템이 부활했다는 관점을 도출한다.

이른바 정-반-합의 사고에 의한 교육 시스템의 새로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중요하다.

이런 중요한 물음을 조금은 진지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보조 자료를 활용하고, 청소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교사의 개입은 짤막하게 하면서 구두 토론에서 글쓰기로 과정을 넓혀 나가는 것이 교실에서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은 ‘내면의 대화’, ‘의식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다양성과 다원성에 기초한 강력한 문제해결 역량 또는 현명하게 사고하는 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철학인 것이다.

철학은 학교에서 시작된다. 우리 청소년들을 철학교육으로 무장시키는 첫 걸음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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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2020-08-18 23:04:40
고등학교때 교양으로 철학을 배웠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기른것이 아니라, 철학사를 배운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철학교과서가 사색하는 힘을 기르는 것으로 재편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