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 제도, 교육 정책, 교육 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수업 없는 행복한 날들

[에듀인뉴스] 거의 대부분의 일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러나 그 두 가지 감정이 꼭 같은 크기로 있지는 않다. 대개는 한 가지 감정이 더 우세하기 마련이다.

코로나가 닥친 교실에 대한 내 감정이 그랬다. 학기 초, 지속되는 휴업,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수업을 하지 못한다.

그에 대한 두 가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정 반대 쪽에 서 있다. 아이들을 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 아이들을 보지 않아서 안도하는 마음.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지 않아서 안도하는 마음이 더 컸다.

교직경력 10년 가까이 됐건만, 나는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 부족함 속에서도 점점 성장하는 나를 느끼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싶지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부족함을 느끼는 만큼, 아이들에 대한 부담감은 항상 크다.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준비된 다음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매일매일 반복된다.

그런데 그런 나의 부족함 때문에 아이들 만나는 걸 미루면, 그래서 아이들과 어떠한 상호작용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아무런 성장도 하지 못한다. 부족하더라도 만나서, 지지고 볶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껏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왔고, 그렇기에 조금씩이나마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는 건 어쨌든 힘겨운 일이다. 고된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다른 직업군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덜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일들이 나름의 힘듦을 갖고 있듯, 교직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나름의 힘듦을 갖고 있다. 그것에 대해 구구절절 적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이 힘든 일들 하지 않고서도 직장을 다닐 수 있다면, 적어도 당장은 꽤 행복하지 않을까.

일생에 오지 않을 그런 순간이 코로나라는 재앙과 함께 왔다.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해야 하는 그 힘겨움에서 당장 나는 벗어났다. 그 힘겨움을 벗어나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기쁨의 감정이, 부적절하다는 걸 알기에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 깊은 곳에서는 분명 있었다.

수업 없는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힘이 나고, 아이들을 보면 설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무한정한 보람을 느끼는, 그런 참된 교사가 나는 아쉽게도 아니다. 나는 부족한 교사다.

(사진=교육부)
(사진=교육부)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다

한 달 반 정도의 휴업이 있었다. 노파심에서 이야기 하지만, 그 기간 동안 교사들이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 틈틈이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연락을 취해, 현재 상황을 물어보고 이상은 없는지 파악하는 작업을 했다.

휴업일 동안 아이들이 해야 할 학습 거리들을 찾아 제시하고, 느슨하게나마 잘 하고 있는지 관리를 하기도 했다. 휴업으로 인해 변경할 수밖에 없는 교육과정을 조정하고, 그에 관한 문서 작업을 했으며, 휴업 막바지에는 온라인 수업에 대한 고민과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정상 등교할 때와 비교하면 노동 강도 면에서 현격히 적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노동 강도가 평소보다 적었다는 것 자체가 욕먹을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내가 특별히 그로 인해 태만하지는 않았으며, 할 수 있는 한에서 할 일들을 했다.

다만, 이 시기 이후 많은 분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현격히 줄은 상황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며, 내 처지를 우쭐해 하지 않고 다행스럽게 여겼을 뿐이다.

4월 17일, 온라인 개학이 시작됐다.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다. 다른 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쉬워 보이거나 별 것 아닌 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조금만 과장 보태서, 죽는 줄 알았다. 뭐가 그렇게 죽을 것 같았을까? 온라인 수업 준비하는 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고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클래스팅’이라는 플랫폼을 사용했다. 클래스팅 플랫폼은 학습관련 동영상을 링크를 끌어와 올릴 수 있고, 사진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쪽수를 넘겨가며 다양한 형식의 문제를, 즉 객관식, 단답형, 서술형으로 직접 만들어 올릴 수 있다. 설명도 색색깔 바꿔가며, 밑줄, 진하기 등의 효과를 넣어가며 할 수 있다.

마치 파워포인트처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학생들은 학습할 수 있다. 첫째 장은 동영상을 보고, 둘째 장에서 설명을 읽고, 셋째 장 이후부터 문제를 풀고 하는 식이다.

이 클래스팅으로 한 과목 한 차시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 관련 동영상 자료 찾고, 관련 설명을 예쁘게 편집해서 적어 넣고, 문제 만들고 하면, 최소 한 시간, 길면 두세 시간도 걸린다.

하루에 4차시에서 6차시 정도의 수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1시간씩만 잡아도 최소 4시간에서 6시간이라는 시간이 나오며, 2시간씩 잡으면 최고 12시간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나온다.

첫 수업을 위한 첫 작업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했기에, 정말 거짓말 않고 날 밤 세면서 준비했다. 첫 며칠을 이런 식으로 준비하니 잠을 거의 못 잤다. 이렇게 할 거면 등교 개학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사나 어디 댓글에서, 온라인 수업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설명하거나, 교사들이 편하게 수업한다는 식의 표현을 봤을 때,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물론 나는 작은 학교라서 한 학년에 나밖에 없어 모든 수업 준비를 혼자 해야 했고, 초기에 익숙지 않아 더 그랬다. 그 후 좀 익숙해지고, ‘줌’ 프로그램을 통한 화상 원격 수업을 병행하면서(화상 원격 수업이 어떤 면에서는 준비하기에 더 편하다) 한결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이 쉽지 않다 보니, 등교 수업을 더 원하게 됐다. 아이들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수업의 편의성 때문이라니, 역시 나는 한참 부족했다.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등교하는 27일 오전 8시 30분 성남 수내초등학교 학생들이 교문 앞 선생님의 인사에 뛰어서 등교하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등교하는 27일 오전 8시 30분 성남 수내초등학교 학생들이 교문 앞 선생님의 인사에 뛰어서 등교하고 있다.(사진=지성배 기자)

등교 개학이 시작되다

5월 27일, 드디어 등교 개학을 했다. 코로나가 잠잠해 지는가 싶더니, 막판 기승을 부려, 학교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언제 개학을 할지, 개학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 등교할지를 정하느라 말이다.

다른 학교들은 3분의 1만 등교할지, 3분의 2만 등교할지 정하는 것부터, 반반씩 나눠 하루씩만 등교하게 할지, 그냥 모두 이틀만 등교하게 할지 등 여러 가지를 정해야 했다.

내가 아는 많은 학교들은 3분의 1등교로, 한 반 중 절반의 아이들이 각각 하루씩만 등교하는 형태가 많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전교생 45명, 내가 가르치는 반 학생 6명인 작은학교라, 보통의 학교와 다르게, 전일 등교를 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말마따나, 교사들은 ‘방역의 최전선’에서 방역 작업을 해야 했다. 아이들이 오면 바로 한 사람 한 사람 열을 재고, 손을 씻게 해야 했다.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고, 교사 또한 마스크를 쓰며 수업을 해야 했다. 마스크 쓰며 수업 하다 숨이 턱턱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할 만하다가도 가끔씩 오는 그 답답함이 생각보다 괴로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또 한사람씩 열을 재고 손을 씻은 후, 거리두기로 줄을 세우고 밥을 먹으러 간다. 밥을 먹을 땐 대화 금지다. 물론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에도 서로 간의 대화는 금지된다.

한 사람이 다 먹었어도 혼자 올라 갈 수 없다. 혼자 올라가다가 또 어떤 접촉 행동들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다 먹은 걸 확인 후, 같이 올라간다.

역시나 나는 작은학교이기에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있지만, 위와 같은 모습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매일 같이 반복하는 방역의 일상이었다.

수시로 소독제를 교실에 뿌리고, 방역 일일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놈의 꼴도 보기 싫은 학부모 나이스 자가 검진 독촉(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자녀의 상태를 아침마다 매일 체크해야 하는데, 안하는 학부모가 꼭 있어 담임교사들이 하라고 독촉해야 했다. 안 돼 있으면 교육청에서 역으로 우리를 독촉한다)은 덤으로 해야 할 일이다.

다른 학교와 달리 작은학교에 근무해서,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 오고 평소와 같은 수업을 했다.

아이들을 보니 또 귀엽고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열심히 수업하고 준비했다. 24시간이 아이들 생각으로 꽉 찬, 엄청 참된 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열심히 했다.

코로나로 인해, 매년 해왔던 여름 물총놀이와 화채 만들어 먹기 같은 것들을 하지 못해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짧아진 방학 속에서

작은학교다 보니, 그래서 학년에 나 혼자고 우리 반 아이들은 6명 밖에 없다 보니, 내가 재량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다른 학교에서는 힘든 일들이 이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다.

예를 들어, 25명 정도의 보통 학급에서는, 체험학습을 한 번 가는 것 자체가 대단히 크고 준비가 많은 일이었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는, 동네 근처 유적지를 오전만 체험학습으로 다녀올 수도 있다. 그것도 학교 스쿨버스를 이용해서 말이다.

한 학기 적응하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조금 보이기 시작하고, 아이들을 직접 만나니, 없던 의욕이 다행히도 생겼다.

방학은 고작 2주, 오직 쉬는데 몰두하고 싶지만, 없던 의욕이 생긴 터라 2학기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 고민이 설렜다.

내가 맡은 5학년의 2학기 사회는 오직 역사로 이루어졌고, 그에 맞춰 모든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생각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한윤섭 글, 백대웅 그림, 푸른숲주니어, 2011)를 읽고, 이걸 이번 ‘온작품 읽기’의 책으로 정하면 되겠다 싶었다.

우리 학교에서 연천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있는 ‘연천통인동고인돌공원’에 가서 실제로 나도 처음 보게 될 고인돌 생각에 설렜다. 교과서에는 꽤 많은 유물들이 나오는데, 그 유물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교사 연수 이틀을 신청했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체험학습으로 계획한 이곳은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그래서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 귀중한 곳에서 그냥 왔다 갔다만 하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뿐이다.

사회 책의 역사 내용을 밑줄 그으며 공부했고, 집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필기공책을 꺼내 참고했다. 내가 보는 TV 프로그램의 8할은 ‘역사저널 그날’이었다.

다시, 또

코로나가 다시 심각하다. 8월 13일 이후만 보면 20일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 수가 1500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아직 방학인 우리 학교는, 다음 주 개학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전면 원격수업의 가능성이 많아진 현실이다.

생각해보면, 원격수업이 초기에 많이 힘들긴 했지만 익숙해지고 나서는 준비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직접 가르치는 것보단 확실히 더 편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다시, 또 2학기 편하게 수업할 수 있는, 행복한 날들을 보내게 될까. 그런 헛소리를 두 번 하기는, 조금 싫은데 말이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