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문해력과 수해력 등에서 기초학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는 가운데, 전라남도교육청은 올해 전국 처음으로 정규 교사로 편성된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를 시행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원격 수업이 초등 저학년에게 치명적인 학습 격차를 불러오고 있다는 경험적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남교육청은 기초학력 전담교사제로 인해 기초학력 상승의 효과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에듀인뉴스에서는 기초학력 전담교사들의 수업기를 공유해, 전남교육청의 기초학력 전담교사제의 실제 운영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듀인뉴스] 도현이(가명)와의 첫 만남은 교감선생님께서 온라인 수업 기간에 도현이를 지도했던 조그마한 교실에서였다. 1학년 때 글을 거의 읽지 못했던 도현이는 1학년 겨울방학부터 교감선생님과 만나 주 2회 정도 문해수업을 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옆에 있으니 긴장하면서도 더듬더듬 글을 읽으려고 애를 쓰던 도현이를 다시 만난 건 초기문해력 검사를 위해 만난 보건실에서였다. 

4월 초기문해력 검사에서 도현이는 자음과 모음의 음가를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일부분 알고 있었으며 자모를 합성해 글자를 읽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구절 읽기와 유창성 검사에서는 음운변동을 적용해서 읽는 것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발음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나 읽는 속도가 많이 느렸다. 문장 받아쓰기 검사에서는 띄어쓰기의 개념을 모르지만 소리와 표기가 같은 글자를 쓸 수 있었다.

처음에 문해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에서 추천해주는 책도 읽고 온라인 연수를 들었지만 뭐 하나 머릿속에 정리된 것이 없는 채로 도현이와의 수업을 시작했다. 

책을 읽은 경험이 거의 없는 도현이가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1주일은 그림책 2~3권을 읽어주고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쉬운 문장은 도현이가 읽어보는 활동을 하였다. 

수업 약속을 정하고 써보는 활동.
수업 약속을 정하고 써보는 활동.

도현이는 생각했던 것만큼 수업태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종종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지거나 책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졌을 때는 끝말잇기, 자음과 모음이 들어간 글자 찾아보기, 간단한 문장쓰기 활동도 같이 하였는데 도현이는 글자를 쓰고 단어를 생각해내는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이는 앞으로 해나갈 수업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도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가졌던 시간(나중에 읽기 따라잡기에서는 이런 활동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머무르기’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에 나는 도현이가 할 줄 아는 것을 찾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기 보다는 못하는 것,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아이를 바라봤기 때문에 앞에서 말했듯이 내 욕심대로의 목표를 설정했던 것 같다. 

 쓰면서 끝말잇기를 함. 도현이가 모르는 글자는 교사가 대신 써줌
 쓰면서 끝말잇기를 함. 도현이가 모르는 글자는 교사가 대신 써줌

이렇게 아이를 알아가는 시간(10회기)이 끝나가고 있을 즈음 ‘읽기 따라잡기’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연수가 늦어지는 바람에 연수보다 먼저 ‘읽기 따라잡기 패턴’을 수업에 적용하게 되었다.

연수보다 수업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된 방식으로 가르치기도 했고 가르치면서 궁금증들도 많았지만 뭐라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수준평정그림책을 활용하여 수업을 시작하였다.        
 


내 나름대로의 읽기 따라잡기 수업


5월과 6월의 읽기 따라잡기 수업은  그림책 읽기 – 낱말 분석하기- 문장쓰기의 패턴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도현이는 방학 동안에 했던 교감선생님과의 수업에서 수준평정그림책 5단계를 읽고 있었지만 도현이 수준에는 어려울 것 같아서 수준평정 그림책 4단계부터 시작하였다. 4단계 책은 처음 읽는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음절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는 습관 때문에 축자적 읽기가 심하고 읽었던 것을 반복해서 읽거나 딴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림책 한 권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낱말 분석’은 그림책을 읽으며 모르는 글자의 음가를 확인하고 합성, 분절하는 활동을 지속하면서 자모 음가를 익히는 활동도 같이 진행하였다. 자음의 첫소리 음가는 어느 정도 익혔기 때문에 자음의 끝소리를 도입했더니 이제는 첫소리와 끝소리를 혼동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5월과 6월은 자음과 모음을 칠판에 붙여놓고 매일 자모의 음가를 확인하는 활동을 반복하였다. 이제 자음과 모음의 모든 음가는 거의 다 알고 있다. 

문장쓰기
문장쓰기

‘문장쓰기’는 도현이가 문장을 구성하고 띄어쓰기와 모르는 글자는 도움을 받아서 매일 한 문장씩 작성하였다. 이 패턴이 익숙해지자 아이가 쓴 문장을 음절별로 잘라서 조합해보는 활동을 추가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문장을 만들어보고 쓰는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다. 

어쩌면 문해수업 시간에 쓴 한 문장이 하루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가 생각하고 쓰는 한 문장일 수 있다.

처음에는 ‘잘라낸 이야기 조합하기’가 너무 쉬워서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생략하려고 했던 활동이었는데 방금 쓴 문장이었는데도 음절별로 잘라 놓으니 당황해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아이들을 보니 꽤, 아니 많이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잘라낸 이야기 조합하기<br>
잘라낸 이야기 조합하기

이와 같은 패턴으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6단계, 7단계 수준에 오게 되었다. 해독은 되기 때문에 수준평정그림책 7단계까지 계속 수준을 높여가며 수업을 진행하였지만 축자적 읽기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고, 늘 길어지는 수업시간과 많은 학습요소로 인해 나도 도현이도 버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수준평정그림책의 수준을 0단계부터 다시 시작하니 아이도 자신감을 가지고, 축자적 읽기의 습관이 줄어드는 성장의 기쁨을 맞볼 수 있었다. 나는 해독을 잘 하고 있는 도현이가 성장했다고 믿었다. 

이렇게 도현이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또 수준평정그림책 7단계, 8단계에 이르자 발전했다고 생각했던 도현이는 다시 축자적 읽기를 시작하고, 글을 읽는 속도도 느려져서 수업시간이 대부분 60분이 넘어가게 되었다.

2학년 아이에게 60분을 앉혀놓고 수업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 줄 알면서도 내가 가르치고자 했던 것을 다 가르쳐야 했기에 아이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가르쳐야할 것들을 투입하는데 몰두했다. 도현이가 내가 준비한 것을 반이라도 받아들이는 날은 행복하고 그렇지 못한 날은 불행하고...
 
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도현아, 잘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고, 틀렸으면 다시 읽고, 집중해야 돼요. 그림은 읽는 도중에 보면 안돼요.”

이렇게 약속을 하면서 시각적 단서에만 집중하게 하고 다른 단서를 활용하여 읽을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힘들게 도현이와의 수업을 이어가고 있던 중에 ‘읽기 따라잡기 연수 컨설팅’ 시간이 왔다. 얼떨결에 신청했는데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것 같은 도현이를 보며 컨설팅의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나와 도현이의 긴 수업을 지켜본 컨설턴트께서 “선생님은 완전학습을 원하는 것 같아요.”, “학습 요소가 너무 많아요”라는 말을 하셨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든 해보려고 했던 것들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는데 객관적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읽기를 잘하기 위해서 도현이가 고쳐야할 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컨설팅에 오신 선생님들께서는 장점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엉뚱한 생각이라고 차단했던 도현이의 말이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단서라고 말씀해주셨다. 

도현이에게 “자연스럽게, 유창하게 읽어야해”라고 늘 말해왔으면서 도현이가 다른 단서들을 활용해 읽기를 해나가는 것을 막고 해독에만 집중하도록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뼈아픈 말이었지만 컨설팅을 마치고 난 뒤 내 마음은 가벼워짐을 느꼈다. 

이번 컨설팅은 아이의 문제에 몰입해 있던 나에게 ‘아이로부터 시작하라’는 기본 명제를 깨우쳐주었다. 내일부터는 도현이와의 만남이 더 즐거워질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컨설팅 이후 맞이하게 된 첫 수업에서 나는 “도현아, 이제 그림을 봐도 돼. 오히려 그림을 보고 추측하고 생각하는 것은 도현이가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데 그동안 못 보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사과를 했다.

나의 사과를 들으며 밝아지는 도현이의 표정을 보며, 그림을 보면서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도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도현이도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문해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이를 원망하고 잘못하고 있는 건 아는데 어떻게 수정해나가야 하는지도 몰라서 답답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이제 읽기 따라잡기 연수도 듣고 수업 일지도 쓰며 나와 도현이에게 맡는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열심히 달려오다가 벽에 부딪혔을 때 컨설팅을 통해 비우는 법을 배우고, ‘아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도 깨닫게 되었다. 

교사가 끌고 갔던 수업에 익숙했던 나에게 1학기 문해수업은 그동안의 나의 교육 방식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이런 나를 참아주고 잘 따라 와준 도현이가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을 전해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김정은 해남 화산초 교사<br>
김정은 해남 화산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