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풍경구, 고문화 거리 거쳐 찾아간 산화이관..."역시!"

[에듀인뉴스] 중국, 가까운 듯하면서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G2로 미국과 견주고 있는 중국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을 비웃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리상으로 가까워 문화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중국. <에듀인뉴스>는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를 통해 중국의 도시에 살아가면서 느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중국을 접하고 알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인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예측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알다가도 모를 중국!

이탈리아 풍경구 마르코폴로 광장.(사진=김현진 교사)
이탈리아 풍경구 마르코폴로 광장.(사진=김현진 교사)

100년 역사 지닌 건물들의 파티 '이탈리아 풍경구'

[에듀인뉴스] 이탈리아 풍경구를 향해 쉴 새 없이 걸어갔다. 앞서도 말했지만 톈진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를 비롯한 8개국의 조계지였던 영향으로 도심에 당시 건축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1902년부터 1946년까지 이탈리아의 조계 구역이었던 이탈리아 풍경구가 대표적이다.

원형의 분수대가 있는 마르코 폴로 광장(马可波罗广场)을 중심으로 멋진 레스토랑, 스타벅스 등 여러 카페가 밀집한 길이 이어진다.

또 아이스크림, 톈진 전통의 꽈배기, 기념품 가게 등 노점들이 보행자 거리 양편에 자리 잡고 있다.

풍경구에 있는 대부분 건물은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아내가 이곳에서 벙거지 모자를 사려고 한다. 모자의 가격을 물어보니 50위안이다. 조금 고민을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손님이 똑같은 모자를 가지고 물어보니 40위안이라고 한다.

옆에서 끼어들어 40위안의 가격에 모자를 샀다. 더 깎을 걸 그랬나?

이탈리아 거리는 따뜻한 날씨와 많은 사람으로 분위기가 활기차다. 거기다 고건물로 인해 운치까지 있다.

조금 더 걷다가 보니 골목 곳곳에 우육면 식당 등 로컬 특유의 다양한 생활 모습이 보인다. 어제 왔던 해방교 근처가 보이긴 하는데 지친 심신 때문에 이제는 쉬어야 할 것 같다.

택시를 잡아 타고 숙소근처로 갔다. 밤의 톈진 아이를 들러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아쉽다. 숙소 근처 월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호텔로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오니 세상 편하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만리장성 동쪽 시작점인 산하이관으로 간다. 도심의 이곳과는 또 다르다는 생각에 묘한 설레임이 몰려온다.

운치가 있는 이탈리아 풍경구 거리.(사진=김현진 교사)
운치가 있는 이탈리아 풍경구 거리.(사진=김현진 교사)

한국의 인사동, '고문화 거리'

느리고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은데 그동안은 급하게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걷는 여행을 많이 해왔다. 아들이 태어나고는 리조트 시설을 이용한 얌전한 여행을 했다면 아이가 크다 보니 또 조금은 고된 여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제 일정이 조금은 힘들어서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은 후 고문화 거리로 이동을 하였다.

중국의 대도시들은 지하철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여행지 곳곳 어디든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2호선에서 3호선으로 지하철을 환승해서 내렸다.

산하이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3호선인 톈진서역으로 가야하니까 중간에 있는 고문화 거리를 가볍게 걷고 가면 될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바이두 지도를 켠 후 고문화거리를 가는데 스타벅스, 하겐다즈, KFC 그리고 익숙한 상점들이 보인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롯데백화점 건물도 보이고 한자로 써 있는 신세계백화점도 보인다. 외국에 와서 한국의 흔적들을 보면 반갑고 자랑스럽다.

커다란 상가 블록을 몇 개 지나 보니 건물들 사이로 고문화 거리로 추정되는 곳이 보인다. 고문화거리(古文化街)는 청대의 상가건물을 재현해 놓은 상가 거리이다.

톈진 고문화 거리.(사진=김현진 교사)
톈진 고문화 거리.(사진=김현진 교사)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은 상가에서 서화나 골동품, 공예품, 문방사우 등을 팔고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곳곳에는 관광객을 위한 톈진의 명물 꽈배기과자부터 시작해 각종 먹거리를 판다.

고문화 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사동과도 비슷하긴 하지만 중국 느낌이 훨씬 많이 나는 거리 풍경을 가지고 있다. 수석, 조각, 그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전통 의복과 붓 등을 팔고 있다.

서울 북촌 인근에 가서 샀던 수제 옥도장 같은 것들도 있는데 우리나라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다. 길을 걷다보면 청 말기의 사상가 엄복의 청동상도 만날 수 있다.

엄복은 영국 유학파 지식인으로 청일전쟁 이후 제국의 침탈에 맞서 국민에게 계몽사상을 일깨우며 개혁운동을 펼친 사상가이다.

돌아 나오면서 저 멀리 톈진 아이가 보인다. 조금더 가까이 가서 인증샷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더운 날씨에 가족들이 많이 지쳐 있어 인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한국과 중국의 일반적인 물가에 비해서도 비싼 편인데 매장 안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에어컨의 시원함과 함께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느껴본다.

텐진서역에서 산화이관 가는 고속열차 티켓.(사진=김현진 교사)
텐진서역에서 산화이관 가는 고속열차 티켓.(사진=김현진 교사)

기차 출발 2시간 전에 여유있게 도착하려고 서둘러 지하철 역으로 갔다. 지하철 역사와 같이 있는 백화점에서 나이키, 아디다스, 폴로 등 스포츠 및 캐주얼 브랜드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입을 옷들과 신발을 구경하다 보니 그만 기차 시간이 한 시간 전이다.

급하게 나와 아들의 폴로셔츠를 구매한 후 지하철을 이용해 톈진서역으로 가는데 어째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워낙 크다 보니 어느 방향으로 들어갈지 구분이 안간다.

중국에서는 기차역이 워낙 커서 어느 지방에서는 역의 남광장과 북광장이 지하철역으로 한 정거장 거리인 경우도 있다. 기차시간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다 톈진서역에 도착했다.

급한 마음에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가 역사 입구를 찾아 공안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계획할 때 기차시간을 취소 변경한 부분이 있어 가격도 조금은 올라가고 좌석도 따로 예매하게 되어 가족들이 함께 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3명 모두 다른 칸에 타게 되었다.

어차피 아내와 아들이 앉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내 자리로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플랫폼에 도착한 기차는 두 개의 기차가 붙어 있었고 기차편명이 두 가지라 확인이 어려웠다.

한국에서 KTX를 탈 때 대전 즈음에서 두 지역에서 온 기차를 붙여 서울까지 오는 것을 봤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황은 당황스럽다. 앞뒤 기차로 나누어져 있어서 좌석 칸별 이동이 어렵다. 나름 우발상황 대처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벨소리와 함께 탑승하라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기차 역무원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어디로 타야 되냐고 했더니 빨리 타라고 하면서 뒷열차를 가리킨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항상 걱정스럽기 만한 아들이 기차 티켓을 다시 확인한 후 나와 아내에게 소리친다.

“아빠는 일단 뒷 열차에 올라타! 엄마와 나는 여기 탈테니까! 자리에 도착해서 전화해!”

헤어져 열차에 올라타니 바로 출발을 한다. 좌석을 확인하는데 제일 뒷칸이었다.

가족에 대한 걱정스러운 맘으로 자리를 찾아갔다. 고속열차 똥쳐의 2등석은 2좌석, 3좌석의 배열인데 하필 3좌석이 붙어 있는 곳의 가운데 자리에 앉게 되었다.

캐리어를 자리 위에 있는 짐칸에 올려놓고 앉아 휴대폰을 봤더니 아내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영화 같은 이런 일이 타국 땅에서 우리에게 생기다니 가장으로서 조금 더 신중하지 못했음에 자책하게 된다.

아들에게서, 아내에게서 연락이 온다. 잘 있다고... 이따 역에서 내려서 보자고...

같이 있을 땐 지지고 볶아도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보인다.

양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불편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산하이관 역에 도착하였다.

산화이관 입구.(사진=김현진 교사)
산화이관 입구.(사진=김현진 교사)

문명과 비문명, 화이를 가르는 기준 '산하이관'

톈진과 더불어 여정을 짤 때 산하이관의 만리장성 동쪽 시작점이라는 말이 너무나 매력적 이었다.

5년 전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봤던 감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교과서 속에서나 보았던 그 진귀한 문화재보다 무질서한 사람들 모습들을 보니 인증샷으로 몇 컷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근래 여행 프로그램 등을 보면 만리장성의 고북수진과 사마대장성을 통해 조금 더 여유 있게 관람하는 코스가 많이 생긴 듯하다. 만리장성의 또 다른 매력을 상상하면서 산하이관역에서 내렸다.

한국의 전주역이나 경주역 느낌의 산하이관역 앞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들로 가득하다. 천하제일관 인근 숙소 이름을 택시 기사에게 보여준 후 역 주변을 지나가는데 생각보다 식당과 상점 등이 많이 있었다.

택시로 도착한 천하제일관 인근의 숙소는 중국의 매력이 담겨 있으면서도 깔끔하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짐을 내려놓은 후 주변을 산책하러 나갔다.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산하이관 표지석.(사진=김현진 교사)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산하이관 표지석.(사진=김현진 교사)

어느새 어둑한 저녁이다. 천하제일관은 커다란 성곽 안에 우리 나라의 전주 한옥마을 같은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념품, 식당, 슈퍼마켓 등이 성문 입구까지 길게 자리 잡고 있으며 양꼬치 등 다양한 먹거리도 판매하고 있다.

중국식 음식 집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으려고 했으나 아들이 아까 올 때 본 KFC에 가자고 한다. 아무래도 중국음식들이 아직은 부담스러운가 보다.

시골 느낌의 이곳 KFC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황이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주문기계를 이용해 주문을 한다.

중국 어딜 가나 KFC나 스타벅스는 항상 보는 것 같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마찰을 보이면서도 중국 곳곳에는 미국의 색깔이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배를 채우고 다시 산하이관 성문 입구를 통해 돌아오는 길은 톈진의 도시스러운 느낌과는 또 다른 자연과 어우러진 시골의 느낌이 든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화이사상을 갖고 있다. 즉 한족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의 기준을 만리장성으로 삼았다.

 

천하제일관 야경.(사진=김현진 교사)
천하제일관 야경.(사진=김현진 교사)

문명과 비문명으로 대체되는 화이를 가르는 기준이 만리장성이었던 만큼 산하이관의 안쪽을 관내, 밖을 관외라 불렀다. 이 관문을 들어서야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중국을 왕래했던 조선의 외교사절 역시 요동을 경유하여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하이관을 통과해야 했다.

조선의 사신들에게 산하이관은 중국의 규모와 제도를 짐작할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었다.

특히 산하이관의 관문 중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은 웅장하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큼을 모르고, 산하이관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산하이관의 규모와 위용을 평가했다.

명나라 말기에 산하이관 오삼계가 농민 반란군 이자성을 물리치기 위해 산하이관의 성벽을 헐고 청군을 무혈 입성시킴으로서 이민족인 만주족에게 중원을 넘겨주게 되었다.

곧 명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청 제국이 열리게 되었다.

오랑캐를 막기 위해 세운 것이 만리장성인데 결국 오랑캐라고 불리는 이민족에게 스스로 만리장성의 문을 열어주어 들어오게 한 것이다.

산하이관은 랴오닝성과 허베이성을 가르는 경계이며, 행정구역상 허베이성 진황다오시에 속한다. 베이징에서 약 300㎞ 떨어져 있는데, 발해만에 연한 군사요충지다. 아울러 서역의 가욕관에서 요동 발해만에 이르는 만리장성의 동쪽 관문이자 출발점이다.

산하이관은 중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해변 휴양지의 하나이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세계의 유명한 리조트 및 호텔들이 위치하고 있다.

산하이관과 산하이관 인근은 아직까지는 번화하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문화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김현진 중국 대련학국국제학교 교사
김현진 중국 대련학국국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