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관례대로 해 오던 것이니 그렇게 합시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해왔는데 왜 못 마땅해 하지요?” “익숙한 방식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처리합시다.” “다를 그렇게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해왔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합시다.” .... 

이렇게 주고받는 말들의 이면에 담긴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옛날부터 해오던 익숙한 방식, 관행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실시하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러한 틀을 깨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는 처음부터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구성원 내부에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공동체의 인화단결을 저해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화한다는 진보주의 역사관에 따라서 본다면 이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다. 

중고등학교는 전체 학습 수에 따라 보직교사 인원이 중등교육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필자가 재직하는 고등학교는 총 26개 학급의 일반고로서 배정된 보직교사의 수인 부서별 보직교사 (일명 부장교사) 12명에 수석 교사, 행정실장, 교감, 교장으로 구성된 총 16명의 인원으로 기획회의가 구성되어 있다. 

기획회의는 학교의 학사운영을 계획하고 논의하는 협의체로 주(週) 1회 정례화 되어 있다. 여기서 학사운영의 디테일한 계획과 실행, 평가가 주 단위로 논의가 된다. 학교의 Brain인 기획회의는 유능하고 경력을 갖춘 보직교사들이 모여 그야말로 집단지성의 대표적인 협의체라 할 수 있다. 

기획회의는 학교에 따라 약간의 운영방식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개는 일률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부서를 담당하는 보직교사는 담당 부서의 교육 행사 내용을 사전에 전달하고 이를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행사 진행에 따른 부서별 협조를 구하거나 또는 사업 실행을 구체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수석교사는 수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으로 교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업무를 주로 하며 교감은 교무학사 운영에 따른 관리, 지도와 조언을, 학교장은 학사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지침과 최종 승인을 실행함으로써 승인받은 부서는 사업 실행에 돌입할 수 있다. 

다만 기획회의의 성격과 주어진 시간의 제한에 따라 밀도 있는 협의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워 별도 핵심 부서장만으로 된 소모임으로 보강이 되어 실행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기획회의가 일방적인 전달이나 지시에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고 이는 오랜 관행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건설적인 비판이나 개선책이 크게 논의가 되고 의견 수렴이 활발하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장교사의 경력에 따라 각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선하려는 의지가 결여된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비교적 젊은 부장교사는 경력있는 부장교사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과 교감, 교장의 관리자 스타일에 따라서는 의견 한 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학교 운영의 핵심부에서부터 충분하게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저 관행에 따라서 시행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는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또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옛날 방식에 의한 구태의연한 운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어느 동물원 우리에 원숭이 무리가 있다. 원숭이들이 모여 있는 나무에 바나나를 매달아놓자 원숭이들은 저마다 바나나를 차지하려고 나무에 올랐다. 그런데 원숭이가 바나나 근처에 도달했을 때 물대포를 쏘아 떨어뜨렸다. 원숭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무에 오르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몇 번 반복이 되자 더 이상 나무에 오르지 않았다.

그럴 때 우리 안의 원숭이 한 마리를 꺼내고 새로운 원숭이 한 마리를 집어넣었다. 

새로운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 바나나를 얻으려 했다. 그런데 기존의 물대포를 맞은 원숭이들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결국 새로운 원숭이도 나무에 올라 바나나 먹기를 포기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새로운 원숭이가 바나나를 포기하면 물대포 맞은 원숭이 가운 데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바꾸었다. 

다시 새로 들어온 원숭이도 바나나를 먹으려 시도하면 기존의 물대포 맞은 원숭이들이 막고 나서 더 이상 바나나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물대포를 맞은 원숭이들이 모두 나가고부터였다. 새로 들어 온 원숭이들이 나무에 오르려 하면 기존의 원숭이들이 이를 시도하지 못하게 막았다. 비록 그들이 물대포를 맞은 경험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모든 원숭이들이 나무에 올라 바나나를 먹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무에 오르지 않는 이유도 모른 채. 

이 우화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원숭이들이 더 이상 바나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질문과 의문이 배제된 맹목적 관습이란 것이다.

관습이 우리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우리가 그 관습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을 경우다.

이를 헤겔의 역사적 변증법으로 적용해 보자. 정반합의 질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간다. 이때 기성세대는 기존의 관습(正)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그것에 반(反)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누구에 의해서 완성될 수 있을까? 바로 배우는 학생이거나 또는 학생의 태도로 자유롭게 기존의 질서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관습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다. 

결국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힘(正)과 이 틀을 조금씩 비틀어보려는 시도(反)는 사로 격렬하게 충돌하게 된다. 그래야 정과 반의 과정을 통해 합(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기획회의 이야기다. 학교장은 말했다. 젊은 부장교사들이 경력 있는 부장들의 눈치를 보거나 진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면 이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소 강격한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만큼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후배 교사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교육환경을 조성함은 물론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나아가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운영하는데 학교 경영의 핵심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관리자로서의 필자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