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벌초하면 내년엔 벌초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https://blog.naver.com/dawa0209/221934977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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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그것은 21세기 초에 본 ‘움짤’이었다. 재미있을 거라며 지인이 메일을 보내줬다.

메일을 열어보니 한 마리 개구리가 나른한 표정으로 물이 채워진 솥 안에서 반신욕을 하고 있었다. 밑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고 물에서 나오는 김의 농도는 점점 짙어졌으며 온도계의 눈금은 점점 올라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움직이는 그림 속 개구리 표정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느긋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우리는 그 마지막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개구리는 점점 온도가 올라가는 물속에서 가까운 미래에 자신에게 닥쳐올 ‘튀김’이란 현실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양서류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다.

소독용 알콜도 따지고 보면 비슷하게 바라볼 수 있다.

‘왜 100%가 아닌 70%의 알콜을 사용할까?’ 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는 쪽이 더 많다. 알기 때문에 묻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것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경우는 더 많다.

실험실에서도 그저 비치된 70% 소독용 알콜을, 혹은 100% 알콜과 물을 7:3으로 섞어 만든 혼합물을 실험 테이블이나 기구에 분무기로 뿌리고 티슈로 닦아낼 뿐이다.

“100% 짜리가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위에 예로 든 개구리를 생각하며 답을 내 보자.

소독이 일상인 실험실이니 만큼 그 비용이 그래도 만만치 않아서, 절약하기 위해서 일부러 희석하는 것이라는 경제학적 대답은 당연히 틀리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70% 알콜은 삼투압에 의해 세포 내로 들어가 세균의 단백질을 응고시키며 결과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매커니즘인데, 100%의 알콜은 그 응고 기능이 지나치게 뛰어나 세균 세포의 표면에 한꺼번에 단단한 단백질 막을 형성시키게 되고 그 결과 세포 내로의 침투가 어려워지게 된다.

즉, 세균은 살아남는 것이다.

세균의 입장으로 서술해 보자면 극도의 위험물질에는 즉각적인 방어막을 생성한다고 봐도 그다지 틀리지 않은 표현일 것이다.

아이들 눈높이를 감안해서 동화를 끌어오자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살균)은 강한 바람(100%)이 아닌 온유하게 미소 짓는 태양(70%)이 아니던가.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나, 나에게 치명적이라 여겨질 만큼 강도가 센 위험이 감지될 때는 극히 조심하며 방어 수위를 최대치로 높인다.

그러나 그 위험이 속도를 조절하며, 서서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한발한발 다가올 때는? 차츰차츰 온도는 올라가지만 그것을 위험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개구리는?

서서히 다가와 나의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경계심이 흐려지고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지 못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는 무엇일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했던 2~3월 확진자 수 추이.(사진=질병관리본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했던 2~3월 확진자 수 추이.(사진=질병관리본부)

코로나가 처음 왔을 때 그 위험성을 감지하고 한껏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응했을 때를 돌이켜 보자.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날아온다. 중대본에서, 도청에서, 시청에서... 번호로 매겨진 확진자의 수와 동선을 안내해 준다. 어느덧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일상이 된 그것을 우리는 얼마나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가?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심드렁해지지나 않았는지?

문자가 너무 와서 귀찮다고 하는 사람도 간간히 있는 모양이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일상이라도 그것을 경계하는 일상과, 노출되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상은 큰 차이가 있다.

일상이라도 어떻게 달라진 일상인지를 늘 체크하며 살아야하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감에 자기도 모르게 언어가 뒤틀리며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분란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불안감은 막연하지 않다. 단언컨대 코로나는 위험한 것이며, 그 치사율은 차치하더라도, 감염 후 완치된다 해도 후유증이 평생토록 심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이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곧 있으면, 어느새 추석이다. 코로나에 잠식된 사이 빠르게 흘러가 버린 세월을 다시 한 번 반추하기 보다는 SNS에서 접한 누군가의 ‘뼈 때리는’ 한 마디를 소개하려 한다.

“그래도 명절이니 조상님들 벌초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올해 벌초하면 내년엔 벌초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명료하고도 간결한 말에 끌리는 건 시국이 시국이라서일까, 아니면 내 나이테에 새겨져 있는 이과 마인드 때문일까?

만물의 영장 호모 사피엔스여, 양서류 개구리의 최후를 기억합시다. 일상이 되어버린 위험을 더더욱 경계합시다. 순한 맛 알콜의 진정 독한 맛을 생각합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