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1만 시간 넘게 투자하는 초등학생은 과연?"
배우는 방법 자체 배워야 하는데..."교사의 과잉 친절, 자기주도적학습 막아"
원격교육 시대 교사 역할은?..."학생의 자기주도적학습 방법 길러주는 것"

송미나 한국유초등수석교사회장/ 광주 대반초 수석교사
송미나 한국유초등수석교사회장/ 광주 대반초 수석교사

[에듀인뉴스] 몇 년 전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 유행처럼 회자된 적이 있다.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일명 전문가 되기 법칙이다.

양적인 시간 하나만 본다면 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크게 틀린 법칙은 아닌듯하다. 학습과 관련하여 이 법칙을 초등학생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그들은 매년 190일 이상을 학교에 다니며 최소 1744 시간에서 최대 2176시간을 배움을 위한 수업에 참여 한다. 초등 6년을 기준으로 보면 총 1만1784 시간을 교육과정이라는 지식을 다루는 활동을 통해 배우는 일 하나만을 전문으로 배운다.

그렇다면 오롯이 배우는 일 하나를 배우기 위해 만 시간이 넘는 시간을 6년 동안 수업에 투자한 학생들은 과연 배움의 전문가로 길러졌느냐이다.

현재 코로나19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우리의 원격수업 상황을 보면 아쉽지만 답은 아닌듯하다.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배움의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 군단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 시간 이상을 배우는 일 하나에 투자하고도 그들을 배움의 전문가로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수업의 치명적 약점은 무엇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만 시간이 넘는 수업을 하는 동안 교사가 가르치지 않고 놓쳐버린 것이 무엇이었기에 학생들은 그 많은 지식을 배우고도 스스로 배우지 못하는 학습 장애를 갖게 되었을까.

(출처=https://blog.naver.com/mten/221824768194)
(출처=https://blog.naver.com/mten/221824768194)

현재 원격학습 상황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수업문화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결핍을 찾고 그것을 개선해야 할 시점은 분명해 보인다.

학교와 교사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가르친다. 그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배운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지식을 생산해내도록 하는 생산적 창의융합형 인간양성에 있다.

그렇다면 학습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창의융합적 지식으로 볼 때 그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핵심 지식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과연 어떤 지식일까.

당연히 그 모든 배움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것’에 대한 지식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방법을 배운다는 방법’이란 의미로 볼 때 방법 보다는 개념이 큰 ‘배움의 형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그러나 현재 수업형식이란 말에 익숙하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효율적인 수업혁신 문화를 볼 때 편의상 이해하기 쉽게 ‘방법’이라고 하겠다.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융복합시대의 미래사회에서는 지금처럼 국가가 지정해 운영하는 폐쇄적 교육과정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만으로는 배움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식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야 할 학생이 학교와 교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배움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배우는 방법’ 자체를 배우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서 가장 먼저 이 일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미래의 평생학습시대를 살아 갈 학생들이 최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 중 하나가 학습 방법의 궁극인 자기주도적학습 역량임을 볼 때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 자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기주도적학습 방법까지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수업의 중요성과 함께 그 수업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격 수업의 학습 효과 또한 학습에 필요한 외적 환경을 제외하고는 학생의 자기주도적학습 역량과 가장 크게 관련 있음을 볼 때 이러한 학습 방법 자체를 훈련시키고 연습시키는 수업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급해 보인다.

지금까지 학생들이 경험한 대부분의 배움은 그들 스스로 먹는 배움이 아니라 교사에 의해 완벽하게 떠 먹여 지는 교사 의존성 중심의 배움이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결핍이 바로 이 부분이다. 교사는 다양한 수업 방법들을 활용해 학생들이 받아먹기 쉽게 상을 차려 주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배움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도록 하는 지난한 과정 자체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놓쳐버린 것이다.

학생들이 배움을 혼자 먹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핍과 학습 장애가 교사 가르침의 과잉 친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교육은 어떤 경우에도 친절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친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필요한 친절해야 할 번지수를 정확하게 짚는 일이다.

차를 타고 다닌다고 모두가 운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운전은 운전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만이 가능하다. 혼자 운전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그것을 요령이나 기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배움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에게 배우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것은 기교나 요령이 아닌 배움의 기본과 관계된 교사 가르침이다.

교사는 수업을 통해 학생이 다양한 지식들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혼자서도 잘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쉬운 것이라도 교사가 가르치지 않고 학생이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에 대한 교육적 폭력이다. 또한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출처=https://blog.naver.com/peoff721/221651786892)
(출처=https://blog.naver.com/peoff721/221651786892)

운전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자는 평생을 누군가가 태워주는 차만 타야 하는 만년 조수석의 손님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학생들 또한 교사가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그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주지 않으면 그들은 평생을 스스로 배우지 못하고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지식들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타인의 지식에 종속된 노예로 밖에 길러질 수밖에 없다.

운전으로 겪는 불편함이야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학생에게 배우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학생이 알고도 안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일 수 있지만 배우는 방법 자체를 몰라서 배우지 못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한 우리 교사의 책임이다.

특히 평생학습 시대로 열리는 미래사회까지를 감안 한다면 학생들이 ‘배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겪게 될 불편함은 그들이 평생을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장애라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니리라 본다.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면 주는 것을 멈추어 보면 안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원격수업은 학생들에게 주고 있는 무엇이 멈추었기에 그들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주는 것을 멈추었더니 배움이 멈추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학생들은 자기주도적학습에 의한 학습의 주인으로 세워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론이다.

디지털 세상은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밥들이 오히려 등교수업보다 풍요롭게 넘쳐나고 교사 또한 온라인을 통해 여전히 그들 곁에 있는데도 그들이 혼자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의 부재고 결핍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교사는 가르침과 배움에 있어 학생들의 결핍과 장애가 자신의 가르침의 부재로 인해 비롯되고 있지는 않는지 늘 살피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제 아무리 스마트한 교육판 뉴딜 정책으로 불리우는 그린 스마트 학교가 구축된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학생을 배움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학습의 생존 키워드인 학생의 자기주도적학습 방법을 길러내야 할 교사의 가르침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