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은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임금 환수 및 삭감 중단 촉구 기간제교사 집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기간제교사노조)<br>
전국 기간제교사 노동조합은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임금 환수 및 삭감 중단 촉구 기간제교사 집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사진=기간제교사노조)

[에듀인뉴스] 안녕하십니까?

저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에서 살고 싶었던 전직 정의당 당원이자, 노회찬 재단 평생 후원회원인 A초등학교 영양교사입니다.

제가 굳이 교육감님께 저의 삶의 한 축을 말씀드리는 것은 교육감님께서 지향하시는 세계와 저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기때문입니다.

2019년 2월 12일은 성인이 된 이후로 제 스스로가 가장 수치스러웠던 날이자 저의 선택에 많은 두려움을 느꼈던 날입니다. 이기적이며 이율배반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저를 마주하고 실망스러움도 느꼈습니다. 저의 가치를 담고 있는,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었던 소중한 당을 임용합격으로 인하여 신분상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공무원이라는 안락한 자리를 선택하며 탈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2019년 2월 19일 그간 저를 옭아매던 속박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신규자 연수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비록 직무연수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는 없었지만 교육감님의 말씀과 성공회대 하종강 교수님의 노동에 대한 강의는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즐거웠습니다.

노동자의 삶을 버리고 나 혼자 편하게 잘 살겠다고 변심한 것 같아 합격 이후에도 고통스럽고 우울하던 제 자신에게 교사로서 충분히 노동에 대한 숭고함을 지키고, 교육현장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에도 내가 일조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더불어 신규자를 대상으로 한 연수에 노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신 것도 저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교육현장을 보수적인 곳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편견들을 가뿐히 즈려 밟으시고 교육감님께서 나아가고자 하시는 방향과 생각들을 제시하시는 모습에‘나의 지원군이 저기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향후 이사의 계획이 있기는 하나, 저는 인천사람이 아니며 인천에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유명하다는 인천 차이나타운 한 번 가본 적 없는 서울태생의 경기도 사람입니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내가 적응 할 수 있을까? 속으로 되물으며 초조해하던 시간들도 뚝심 있어 보이시는 교육감님을 뵙고 기우라고 여겼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해드린 것과 같이 교육감님의 이상향이 저의 이상향과 한 궤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의 교육공무직 영양사라는 명칭이 있기 전부터 학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일당직 영양사로부터 시작해 회계직 영양사, 무기계약직 영양사, 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난 이후에는 기간제 교사, 시간 강사에 이르기까지 제 직업 앞에 붙은 수식어들은 변화무쌍하게 변해갔지만, 그 모든 시간 변하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학교 영양사로서의 저의 자부심과 고유 업무였습니다.

저는 야간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학교 직영급식 영양사로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본교와 분교를 포함한 총 4군데 학교를 공동조리하는 공동조리교 영양사로 근무하면서도 그 어떤 추가 수당을 받은 적 없이 묵묵히 저의 업무에 충실하였습니다. 중석식을 하면서도 힘들기는 하였으나 학생들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직무에 대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해가 더해가도 박봉인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그냥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학생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밝은 미소에 많은 긍정의 기운을 받는다고 느꼈습니다. 학생들이 성장하듯 저도 학생들에게 걸 맞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교원자격증 취득을 위해 뒤늦게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였고, 임용을 거쳐 교사가 되었습니다.

신규교사에 대한 체계적인 직무연수나 교육이 있지 않았고, 인수인계의 시간마저 전임자의 타학교 발령으로 지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과정들이 크게 두렵거나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그간 학교 직영 급식 영양사로 근무해온 경험이 축적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규발령 이후, 경력이 없는 동기가 한 달에 사용 가능한 최대 초과 근무시간을 이미 초과하였다고 하였을 때도 저는 여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그 모든 과정들을 지나왔고 오랜 기간 체득하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보낸 저의 10여 년의 시간은 결코 우스웠던 시간들이 아닙니다. 저의 지난 청춘과 열정이 응집된 시간들입니다. 누군가의 한 줄 예규 만들어 끼워 넣기, 혹은 유선상의 통보로 대체될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닙니다.

제가 10여 년을 학교에서 공무직으로 근무하는 동안, 대기업 위탁 급식 영양사로 학교에서 4년간 근무하고 떠난 친구의 경력이 유사하게 취급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산업체에서만 근무하여 학교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학교에서는 어떤 서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도움을 요청하던 친구에게 저는 서슴없이 저의 시간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친구는 학교 현장을 떠났지만, 저는 지금도 여전히 학교급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면 친구의 4년은 온전한 100% 경력으로 인정됩니다. 학교를 지켰던 저의 10년 세월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는 어디로 간 것입니까?

최근 회자되는 뜨거운 감자인‘불환빈 환불균’이라는 말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박봉에 많은 업무를 수행할 때에도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맡은 업무이므로 내가 끝마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불평등의 범주를 넘어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이 끝없는 박탈감과 허무함을 안겨줍니다. 이는 곧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잃게 하며 삶에 대한 일정 부분의 회의감을 느끼게 합니다.

존경하는 교육감님,
항상 교육 현장의 부조리와 불합리성에 많이 안타까워 하셨다고 알고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시고, 평등의 숭고함을 추구하시며, 차별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치지 않으시고자 한다고 들었습니다.

초심을 다시 한번 뒤돌아봐 주십시오. 아직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기대를 하고 있고, 나의 아군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라며 생기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번 피해자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에게 보여주셨던 진보적인 뚝심 있는 모습으로, 이번 문제에 대한 불합리성과 부적절함을 타시도 교육감들과 연대하여 문제제기 해주시기를 거듭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교육감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날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천 A초등학교 영양교사 L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