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한 일본인 사업가가 있었다. 소고기 체인점을 하는 이 사업가는 소고기 공급을 위해 호주인과 5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을 맺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 소고기 값이 폭락했고, 이 사업가는 비싼 값에 계속해서 고기 공급을 받아야 하고 그러면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이 사업가는 호주인을 찾아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계를 쌓아나갈건데 계약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이 얘기를 듣고 호주인은 분노하며 "우리가 처음 맺은 계약부터 이렇게 신뢰를 져버릴 수가 있냐? 나는 너희와 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하며 오히려 계약을 파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당신은 어느 쪽 편인가? 호주인이 너무한가? 아니면 일본인이 너무한가? 

이 내용은 얼마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발견한 조승연 작가가 울산MBC에서 진행한 몇 년 전 강의 내용 중 일부다.

조승연 작가는 이 내용을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로 정리한다. 동양은 문서에 적힌 글보다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면, 서양은 바로 그 문서를 통해 관계를 신뢰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조 작가의 말대로 동양과 서양이 딱 잘라 사고방식이 분리된다고 말할 수 없고, 관계와 문서가 대척점의 관계에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강연 의도와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이 문서와 관계 문제가 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올해, 아니 이미 예전부터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대 문제는 문서와 관계다. 다른 말로는 원칙과 융통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학교 공간은 기본적으로 관계로 구성된 공간이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 교사간 관계, 교사와 교감, 교장의 관계, 학교와 교육청의 관계 등 매우 여러 관계가 층층이 쌓여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교의 문제 해결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매뉴얼, 규정 등을 찾아 문서대로 진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법을 찾아나서는 것.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많은 이들 중 한편은 문서가 아닌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교육은 융통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볼 때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직성이다. 문서에 의해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문제 삼는다. 

이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현재 학교가 많은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학교 내부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분위기를 만들면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refcheck/221945165192)
이 이미지는 기계적인 방법을 넘어서 관계하는 것 같은가, 기계적인 방법을 기준으로 관계하는 것 같은가.(출처=https://blog.naver.com/refcheck/221945165192)

그러나 동시에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또 다른 이들은, 학교교육의 자의성을 지적하고 일관되고 균등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말한다.

이들이 볼 때 교육은 동등하고 일관된 교육과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볼 때 규정과 매뉴얼이 있으나 이를 간과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들은 명확한 규정과 그에 대한 준수만이 학교교육의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본다. 두루뭉실한 문서 상의 표현들이 자의적 해석을 낳고, 그 결과 문제가 생겨난다고 본다. 이들은 학교간 격차, 교사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표준화된 방법들을 요구한다.  

두 지적 모두 일리가 있다. 사실 이 둘이 필요한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기보단 각자 따로 존재한다. 어떤 것은 통일된 지침이, 어떤 것은 내부의 대화가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동시에 두 가지를 요구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렇다면 수업에 대해서는 어떨까? 

2학기 들어 실시간 수업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그 결과 교육부와 각 교육청에서도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하도록 교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사실 수업은 교사의 영역이다. 이에 학교도 교육청도 '수업방식'을 규제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학교마다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이런 지침이 내려온 것에 대한 불만들도 찾아볼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지침들이 계기가 되어 학교 내부에서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침에 대한 찬성으로서든, 반발로서든 대화의 씨앗이 된 셈이다.  

결국 지금 학교는 지침과 대화 두 가지를 양쪽 날개로 삼고 있다.

한 번도 맞아보지 않은 원격수업 시대, 학교에게는 자세하고 명료한 규정과 지침이 아니라, 학교 내부의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화두(話頭)로서의 가이드 라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