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 노년기일까?

최초의 인간, 인류의 탄생.(사진=ebs 캡처)

[에듀인뉴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류 출현으로부터 따져서 인류의 역사를 500만년이라고 한다. 그 태초에서 499만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최초의 혁명이 시작된다. 보통 혁명이라 하면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처럼 무언가가 확 바뀌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일만 년 전의 혁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임계점을 가뿐히 넘어버리는 긴 시간 속에서 그 ‘신석기 혁명’은 하루아침에 비유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499만년 전이라는 시간이나 4,989,900년 전의 옛날은 다르지 않다. 

물론 수학에서는 엄연히 100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뗀석기에서 ‘세련되게’ 갈아 만드는 돌 도구로의 변화가 혁명은 아니었다. 

1만년 전에 인류는 최초로 농사라는 걸 시작했다. 채집 경제에서 생산 경제로, 사람이 최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오랜 시간 자연과 환경을 관찰하고 수 세대의 경험을 쌓아서 이뤄낸 쾌거였을 것이다.

문자가 생겨나고 선사 시대에서 진정한 역사의 시대로 들어서면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는 조금 변화한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등 옛 문명 시대를 언급할 때는 대략 기원전 ‘몇 세기 경’이라는 100년 플러스 마이너스 오차범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기억을 돌이켜 역사 시험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 시대는 아주 정확히 알려진 특별한 역사적 사건 이외에는 대체적인 사건 경위나 여러 사건의 발생 순서를 묻는 질문이 대다수이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걸쳐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에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테네 시대와 로마 시대를 아우르는 유명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이름만은 생소하지 않은 철학자, 수학자, 종교학자, 의학자, 정치가, 군인, 예술가 등이다. 굳이 세분하자면 그렇지만 그냥 이 학당에 등장한 엘리트들을 ‘철학자’란 카테고리에 통일시켜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화가의 집념(?)에 의해 끝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여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테네와 로마 시대만 해도 수 세기를 망라하는 것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븐루시드라는 스페인의 철학자 겸 의학자는 12세기의 사람이니 어림잡아 1700년이라는 시대를 한 폭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학당에 모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을 터이니 이 장면은 순전히 화가의 머릿속에서 조합되어 탄생한 것이다.

르네상스를 거쳐 (서양 역사 관점에서의) 대항해시대를 통과해 산업혁명에 맞닥뜨리는 근대로 오면 시간의 흐름은 급박해지고 복잡해진다. 역사 시험 문제도 세밀해지고 난이도가 높아진다. 단순히 흐름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외워야 할 사항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1850년과 1851년은 전혀 다른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1894년은 굵직한 사건만 한 해에 세 번이다. 

신이라는 단어와 정제된 글에 어긋나는 비속어 하나를 허락한다면,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신이 재능과 지식을 농도 짙게 몰빵한 시기가 아닐까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특히 과학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사진=ebs 캡처)

대표적으로 1927년 제5회 국제 물리학 솔베이 학회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이 때의 기념사진을 보면 과학 교과서에서 낯이 익은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터이다. 1927년 현재는 아니지만, 사진의 29명의 과학자들 중 최종적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다(물론 노벨상이 그들 연구 업적의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어, 파울리, 막스 플랑크, 마리 퀴리 등, 조금만 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이름들이다. 20세기의 과학판 아테네 학당의 인물들은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서 이렇게 함께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상상에서 기록으로, 철학에서 과학으로, 1700년이란 시간에서 사진 한 컷의 순간. 그렇게 시대가 변해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그것을 그렇게 실감하지 못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의 시간은 느릿느릿 지나간다. 한 사람의 시간과 인류의 시간이 묘하게 비슷하다. 

숫자로 표기되는 절대 시간이 아닌 체감 시간으로 대입해보면 선사시대는 영아기, 고대는 유아기, 중세는 청년기, 그리고 20세기 초는 한창 능력이 왕성한 장년기.

2019년과 2020년은 확실히 다르고 2020년의 상반기와 하반기도 비대면 수업의 일상화라는 변화를 겪었다. 오늘 또한 어제와 같지 않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나에게 다가올지 불안하다. 

하루하루 시시각각 화살같이 날아가는 시간, 인류는 지금 노년기일까? 그렇다면 노년기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 나는 인류의 건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망치는 데 일조할 것인가.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