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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njbmagazine.com/monthly-articles/economic-impact-of-covid-19)

[에듀인뉴스] 우리는 잘 살기를 꿈꾼다. 이는 본능을 넘어 인간의 이상(理想)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작금의 우리 현실에선 잘 살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국민은 살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각종 스펙(커리어)으로 무장하여 가장 유능하다는 청년들도 사정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일로다. 그 이유는? 일을 할 수 없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팬데믹(Pandemic)을 가져온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으로의 진출도 봉쇄되어 있다. 그들이 의지하는 유일한 곳은 부모의 보호처다. 그래서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기생충족’으로 살아간다. 

그뿐이랴. 작금의 대한민국의 고용실태를 보자. 모두가 쇼크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이 안 되고 고용불안이 악화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날로 양극화되고 서민경제는 숨이 막힐 정도다. 가계부채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그런 가운데 수출로 국민을 먹여 살리던 국가 경제도 크게 흔들리면서 큰 폭으로 하강해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역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일찍이 맹자는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고 했다. 곧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올바른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정한 생산소득이 있어야 독립적 인격체로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군주시대였다. 그때도 그랬다. 

맹자는 일자리 창출을 국가 최고통치자의 중요 책무로 규정했다. 일자리가 백성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고 봤다. 그래서 군주에게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도록 조언했다. 나아가 일자리 없음을 범죄의 방치로 간주했다.

결국 사람답게 살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백성들의 경제생활 안정은 그만큼 중요했다. 

이제는 군주시대와 달라야 한다. 철학은 같아도 방법은 달라야 한다.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대신 기업이 주연을 맡아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세금으로 일자리를 해결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길이다. 

땜질용 추가 경정 예산으론 한계가 있다. 대기업도 살리고 중소기업도 살려야 한다. 상당히 망가진 대한민국 경제는 이제 중소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일반 가정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온통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제 기업과 국민이 함께 잘 사는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중요한 건 상호 신뢰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필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고전의 지혜를 빌리고자 한다. 이에 비록 20년이 채 안 되었지만 다시금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히딩크 감독을 소환해 본다. 

(사진=YTN 캡처)

그는 고독한 승부사였다. 스타플레이어를 쥐락펴락하는 심리전의 달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촌철살인을 날리는 언어의 마술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히딩크는 타성에 젖은 스타를 배제했다. 무명이라도 체력이 뛰어나거나 잠재력이 있는 선수를 과감히 발탁했다. 

그라운드에 우뚝 선 그의 호령은 가을날 서리 같았다. “골을 넣지 못하는 선수는 책망하지 않지만, 공이 빗나갈까 두려워 슈팅조차 시도하지 않는 선수에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은 꿈만 같았다. 히딩크의 어퍼컷 세레모니에 국민들은 열광적인 환호로 화답했다. 우리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수만 명이 한데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 응원을 펼쳤다. 그것은 축구공이 가져다준 국민 통합이었다. 그 기분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벅찬 희열이었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했던 순간에도 히딩크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히딩크의 그 말에 우리 국민은 더욱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승승장구했고 결국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었다. 

지금 2020년에 필자는 왜 다시금 히딩크 감독을 우리의 가슴 속에 소환하려 하는가? 지금의 현실이 너무 황량하기 때문이다. 기쁨과 희열로 가득 찼던 곳곳의 광장엔 좌절과 분노가 넘쳐난다. 한데 뭉쳐 하나가 되었던 마음과 목소리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마저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치인들의 언행은 한심하게도 수준 미달이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는커녕 저급한 언어로 연일 분노를 돋운다. 

히딩크의 리더십과 유머, 그의 촌철살인이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정치와 축구는 엄연히 다른 분야지만 만약 히딩크라면 요즘 같은 상황에서 뭐라고 말했을까? 

2002년 히딩크는 이렇게 말하면서 축구팬들을 설득했다. “다른 사람들이 ‘난제’라고 부를지라도 나는 ‘도전’이라 칭하겠다.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모든 정책을 재건축하고 국가 운영을 더욱 숙고해야 한다. 모두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과거 운동권 세력, 민주화 세력을 위주로 하는 순혈주의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탕평(蕩平)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하루라도 시급하게 끼리끼리라는 동종교배에서 벗어나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이 적재적소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등 인화에 화합에 주력함으로써 진정한 국민 통합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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