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당 '부자묘', 쑨원의 묘 '중산릉'

[에듀인뉴스] 중국, 가까운 듯하면서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G2로 미국과 견주고 있는 중국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을 비웃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리상으로 가까워 문화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중국. <에듀인뉴스>는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를 통해 중국의 도시에 살아가면서 느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중국을 접하고 알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인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예측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알다가도 모를 중국!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공자의 사당 부자묘

중산공원 지구의 커다란 오동나무 길을 따라 걸어 내려 오면서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잡히질 않는다. 결국엔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환승하여 우리 숙소가 있는 부자묘역에서 내렸다.

가족들 모두가 더위, 배고픔에 몹시 지쳐 있다. 아들이 갈비가 먹고 싶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검색을 통해 한식집을 몇 군데는 알아 놨지만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얼큰한 맛을 느끼고 싶어 인근 마트에서 초밥과 함께 컵라면을 사려는데 韩国饮食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골목을 따라 갔더니 한국 사람이 차린 식당이 있다.

식당에 입장할 때부터 종업원들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인테리어, 부착물, 메뉴판 등이 모두 한국식으로 되어 있어 정말 한국에 온 느낌이 든다.

중국 식당에서도 냉면, 떡볶이, 김치찌개 등 한국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먹는 그 맛과는 다르다. 메뉴판을 보면 한국 맞춤법이 틀리게 적혀 있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우리가 간 한식집은 한국식으로 종업원을 교육시키고 철저히 관리하는 곳이었다. 중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사람들로 북적인다.

양념갈비와 김치찌개를 주문한 후 기본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 무침, 계란말이, 겉절이 김치 등을 급하게도 해치웠다. 배부르고 맛있게 먹은 후의 포만감으로 숙소에 들어가려다 보니 부자묘가 바로 옆에 있어 그곳으로 향하였다. 역시 배부터 채워야지 다른 것들이 보이는 듯하다.

부자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부자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부자묘는 신지에코우와 함께 난징 최대의 번화가에 있다. 부자묘 일대는 상하이의 예원상성처럼 고풍스런 건물들이 보이는 상업 골목이다.

부자묘로 불리는 건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옆에 있고 이곳과 어우러져 난징 최대의 번화가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지에코우 보다 야경이 화려하고 각종 공연이 많아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부자묘 인근 친하이허(秦淮河).(사진=김현진 교사)
부자묘 인근 친하이허(秦淮河).(사진=김현진 교사)

부자묘 앞에는 친하이허(秦淮河)가 있다. 좁은 곳인데도 강과 배 그리고 건너편의 조명을 띤 용의 문향들이 있다. 야경과 물에 반사된 건물 모습들이 중국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광장에는 인력거꾼들이 관광 손님을 태우려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부자묘는 공자를 모시는 큰 사당으로 과거시험을 이곳에서 치르기도 했다. 옛날 이곳이 난징의 교육 성지라고 불릴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주변의 전통가옥들은 복원이 잘 이루어져 볼거리가 매우 많다. 전통가옥뿐만 아니라 야시장, 음식점, 기념품점이 많다. 특히 길거리 음식도 많은데 유명한 취두부도 있다.

부자묘는 티켓을 산 후 입장할 수 있고 그 앞에서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조명과 함께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중국 어디나 현대와 조화로운 전통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중산릉 풍경구 인근.(사진=김현진 교사)
중산릉 풍경구 인근.(사진=김현진 교사)

쑨원의 묘 중산릉

어제 못 간 중산릉은 난징에서 꼭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다음날 점심 비행기로 다롄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가는 수밖에 없다.

아침 도로가 한산하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 택시를 타고 중산릉 입구까지 갔다. 관광 센터 창구 직원에게 물어보니 예약을 하지 않은 외국인이 따로 입장권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해당 장소로 가서 여권을 보여주고 입장 티켓을 일사천리로 받을 수 있었다.

신의 한수라는 생각에 기쁨이...

낮의 뜨거운 열기와 많은 인파가 아닌 한산한 중산릉을 아침 일찍 방문하니 기분이 더더욱 좋았다.

중산릉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여러 무리의 관광객들과 중산릉을 향하여 걸어 올라갔다. 아침 일찍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중산릉은 중국 근현대 정치가 쑨원의 묘가 있는 곳이다. 중산은 쑨원의 호이며 릉은 왕의 묘를 뜻한다. 증산릉은 쑨원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중국 국민정서가 반영되어 있는 곳이다. 베이징에 가면 만리장성에 오르듯 난징에 오면 증산릉을 꼭 들르는 것이 중국 사람들의 필수 여행 코스라고 한다.

중산릉 계단.(사진=김현진 교사)
중산릉 계단.(사진=김현진 교사)

쑨원의 사망 당시 중국의 인구가 3억 9천 2백명이었다 해서 계단이 392개이다. 계단은 가파르게 위까지 쭉 이어져 있다.

쑨원은 1925년 3월 국민혁명이 한창일 때 베이징에서 죽었다. 쑨원의 장례는 장제스에 의해 북벌이 이루어진 1927년 국민정부 치하에서 국장으로 행하여지고 난징 교외에 그 시신을 매장하였다.

이 능묘는 1,300㎢의 넓이로서 청천백일기를 상징하는 기와와 지붕이 산허리에 솟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국민정부는 이 곳을 성역화함으로써 그들 정권에 권위를 부여하였다.

국민정권은 타이완으로 옮긴 뒤, 타이베이에 중산릉을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중산릉은 이곳 난징에서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하여 잘 보존되어 있다.

중산릉에서 바라본 난징 시내.(사진=김현진 교사)
중산릉에서 바라본 난징 시내.(사진=김현진 교사)

계단 끝까지 올라가니 쑨원의 상이 있어 사람들이 참배를 한다. 계단 아래로 펼쳐진 숲이 장관이다.

어찌 보면 국민당의 흔적인 총통부나 쑨원의 묘를 보존하는 것이 신기하다. 쑨원은 국민당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지만 중국과 타이완 모두에게 국부로 불려지며 존경 받는 인물이다.

마오쩌둥에겐 정적이기도 한 장제스의 흔적도 중국 곳곳에 있는 걸 보면 역사의 흔적을 당시의 해석으로만 보지 않고 보존하는 모습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떠나서도 여운 남는 '난징의 매력'

대도시이기도 하면서 중국의 전통이 고스란히 보이는 난징, 요즘 중국의 대도시들은 현대화, 서구화를 추구하면서 도시 중심부에는 높은 빌딩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어쩔때는 중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실망스럽기도 하다.

난징 전부를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본 곳은 현대의 건축물이어도 저층이 대부분이고 인근에 전통적인 건물들과 문화재가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었다.

오동나무가 곳곳에 있는 난징.(사진=김현진 교사)
오동나무가 곳곳에 있는 난징.(사진=김현진 교사)

도시 곳곳에는 오동나무 가로수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주고 도시의 멋을 더해준다.

몇십 년이 지나면 헐어내고 재건축을 추진하는 우리의 모습과 조금은 비교가 된다. 물론 중국도 재건축을 많이 하는 추세다.

시간이 부족해 현무호와 명나라 성벽을 오르지 못해 아쉽다. 인근 진강이라는 곳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흔적도 남아 있다는데 이 역시 아쉽다. 여행은 여유롭게 다녀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긴다.

떠나서도 여운이 계속 남는 역사의 고도인 난징, 대대로 강남 특유의 부를 누렸던 도시이면서도 일본의 침략으로 아픔도 있는 도시,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보존하며 그 먼 거리를 찾아와 둘러 보고 가는 그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이곳 난징! 중국의 모든 도시처럼 다시 한번 꼭 오고 싶은 도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