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에듀인뉴스] 즐거운 상상과 기대감을 안고 왔던 미국. 그동안 코로나, 인종차별 시위와 폭동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많아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발생한 미국 서부 산불은 그보다 더한 괴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들었던 미국 대형 산불 소식. 그 때는 그저 먼 곳의 일이려니 했었는데 직접 그 현장을 경험하고 보니 간과하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오레곤에서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이동 중이었던 우리가족은 불이 나는 순간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땅 여기저기에서 스멀스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까만 연기와 함께 근처의 집이 순식간에 타버리고 불기둥이 솟구쳤다. 

까만 연기가 우리 차가 있는 쪽으로 밀려오자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연기를 피해 달려야만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던 그 때, 출동한 경찰이 다급한 목소리로 길 안내를 해 주었다, 길 바로 옆까지 불이 붙어 연기가 자욱했다. 

간신히 연기를 헤치고 그 곳을 지나 큰 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와 몇 시간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일행은 그곳 불이 심해져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했고, 대피 명령이 떨어져 근처에서 숙소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상은 노랗다 못해 빨간색으로 변해 버렸다. 영화 속에서 보던 지구의 마지막 모습처럼 느껴져 공포감 밀려왔다. 온통 빨갛게 변한 세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고, 핸드폰으론 긴급재난문자가 쉴 새 없이 삑 삑 거리며 쏟아졌다. 

세상은 노랗다 못해 빨간색으로 변해 버렸다. 영화 속에서 보던 지구의 마지막 모습처럼 느껴져 공포감 밀려왔다. 온통 빨갛게 변한 세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고, 핸드폰으론 긴급재난문자가 쉴 새 없이 삑 삑 거리며 쏟아졌다. (사진=이다정 교사)

하루를 꼬박 걸려 달려온 곳의 상황은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연기와 재가 하늘을 가려 노란 색이었다. 이틀 전 출발 할 때만 해도 괜찮았던 요세미티의 대기질은 사상 최악이 되었고, 공원입구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가득 찬 연기로 야외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오래 전 어렵게 예약해 놓은 숙소를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연기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을 보니 멍 해져 아무생각이 들지 않았다.

(왼쪽) 산불로 인한 연기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요세미티국립공원 (오른쪽) 고온건조한 기후 때문에 불이나자 순식간에 번지는 마을 모습.(사진=이다정 교사)

먼 길을 달려갔으나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힘이 빠졌는데 더 힘이 빠지는 소식이 들려왔다. 집이 있는 오레곤주에서도 산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지인 가족은 집 근처까지 불길이 번져 중요한 물건만 챙겨 대피를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땐 밖에서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대기질은 나빠져 있었고, 문틈과 벽난로 사이를 테이프로 막고 창문을 꼭 꼭 닫은 채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평소에 공기가 좋은 곳이라 공기청정기가 있을 리 만무했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비를 기다려야 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묵직하게 내려  앉은 연기와 재는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환기를 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고통과 두통이 밀려왔다. 

지금껏 살아오며 그렇게 괴로운 시간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2주 정도 암흑 같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이틀정도 비가 내린 후 서서히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파랑은 아니었지만, 푸르스름한 하늘이 살짝 보였을 때의 기쁨이란.

늘 머리 위에 있었던 당연했던 하늘이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흠뻑 내린 비로 인해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의 힘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최근 일어난 아시아의 홍수, 몇 달 전 심각했던 호주의 산불 등 지구의 비정상적인 현상은 기후변화로 인한 것임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알고는 있으나 적극적으로 그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뉴스를 보면 그 때 잠시 걱정만 했지 내 일처럼 여기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고, 무엇보다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무력감이 느껴졌다.

소수의 사람들과 전문가들은 매우 다급하게 이 상황을 이야기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소식을 전해들을 뿐 큰 관심이 없다. 한 예로 땅덩이가 큰 미국은 분리수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자신이 분리수거에 신경을 써도 미국에서 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즉, 환경 문제, 기후 변화 문제는 소수의 노력만으로는 절대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각자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이번에 겪은 끔찍한 일이 더 자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인류는 많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류 전체의 문제이다. 각국의 이익과 힘을 내세우는 것으로는 해결 할 수 없다. 함께 위기의식을 느끼고 함께 움직여야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때문에 마스크 벗을 날이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을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야 할 때이다.

이다정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