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11월은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봄에는 비가 한 번씩 올 때마다 따뜻해지는데 가을은 역시 그것도 정반대다. 비 한 번에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하늘이 높고, 별 바라보기 좋게끔 맑고, 오소소한 찬 공기가 살갗에 닿는 서늘함이 좋은 11월이 덕분에 겨울로 분류되는 2020년이다. 

어린 내가 환절기 때마다 겪은 감기는 주로 코감기였다. 몸은 막 아프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없이 흘러내리는 콧물이 늘 성가셨고, 꽉 막힌 코가 견딜 수 없이 답답했다. 

약 먹으면 7일, 그냥 버티면 일주일 지속되던 그 증상은 까칠하게 헐어 지저분하게 피부가 일어난 코를 남기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 창궐로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감기가 비껴간 시간을 살고 있다. 너무 오래 머물고 있는 불청객 코로나는 해마다 찾아오는 다른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막아주고 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은 안 하련다.

찬 기운이 스멀스멀 피부의 겉면에서 속으로 파고들 때면 따뜻한 물에 온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더운 공기를 좋아하지 않아 덩달아 사우나니 반신욕이니 하는 것들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일 년에 한 두 번은 그래도 온천이나 휴양지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기억이다. 올해는 공중목욕탕이니 온천이니 하는 장소를 생각하는 것도 미안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아쉽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ellow_life&logNo=10012965391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br>
(출처=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ellow_life&logNo=10012965391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세계지도를 펼쳐보고 시선을 유럽 지중해로 던져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를 보면 그 장화가 톡 차버릴 것만 같은 세모꼴의 섬을 볼 수 있다. 이 시칠리아 섬은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피아란 연관 단어를 떠올리게 하겠지만, 2300년 전 이 섬에는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과학자가 살고 있었다.

그 곳의 왕은 순금을 내려주며 왕관을 만들라고 명령한다. 금속세공사는 명을 받들어 새로운 왕관을 만들어 왔지만 왕은 의심한다. 저 완성품이 과연 순금일 것인가. 이래저래 아무래도 다른 금속이 섞인 것 같은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왕, 그러나 심증만 있고 결정적 물증은 없는 상태. 왕은 과학자 아르키메데스에게 명령한다. 저기 납품된 물건이 순금이 아니란 증거를 가져오거라. 

때가 어느 때인가, 왕의 말이 곧 법이고 길이 아닌가.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 유명세라는 것은 수명이나 자신의 안위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을 터이다. 해법에 골똘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어느 날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집어넣자 물이 흘러넘쳤다.

과학자는 외쳤다. “유레카!”

동양이든 서양이든 물질의 가치를 가늠할 때, 즉 금이나, 은 같은 화폐에 준하는 가진 물질에 보편적으로 도입된 기준은 무게였던 것 같다. 물론 지역마다 단위는 달랐겠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부피는 가치보다는 ‘양’을 설명하는 느낌이 강하다. 

https://yungend.tistory.com/316
고대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출처=https://yungend.tistory.com/316)

고대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가 심장의 무게를 저울을 사용해 측정하는 그림이 남아 있고 성경에 나오는 은을 재는 단위 세겔도 무게의 단위이다. 왕이 일정 무게만큼의 금을 내려주며 왕관을 만들라 했을 때 정직하지 못한 제작자는 무게만 맞추면 감쪽같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울 위에서 몸‘무게’를 잴 때 체중계에 적혀있는 단위는 kg이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단위는 무게가 아닌 ‘질량’의 단위이다. 달에 가서 몸무게를 재면 60kg의 사람은 (고맙게도!) 10kg 정도 나온다. 

이것은 지구와 달의 중력 차이 때문인데, 아직 우주 시대가 도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구에서의 질량과 무게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같은 의미가 되지만, 원래 무게는 질량이 있는 물체가 받는 중력의 크기를 의미한다. 무게의 진정한 기본단위는 ‘N(뉴턴)’으로 질량에 중력을 곱한 단위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대로 지표면에서는 측정값에 큰 차이는 없다. 

‘보기보다 가볍다’라거나 ‘보기보다 무겁다’라는 말에는 ‘밀도’라는 개념이 숨어있다.(삼중바닥 스텐레스스틸 냄비와 양은 냄비를 비교해 보라.) 밀도는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이며, 밀도에 따라 부력이 달라진다는 것이 아르키메데스의 발견이다. 순금과 섞인 금의 밀도는 같을 리가 없고, 왕관제작자는 밀도를 간과했고 아르키메데스에 의해 꼬리를 잡혔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여기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솜씨 좋은 금속세공사가 우연한 일로 왕의 눈 밖에 나서, 왕이 그를 벌하려는 명분을 만들고자 처음부터 섞인 금을 주었다면? 그 경우에도 아르키메데스는 같은 명령을 받았을 것이고, 유레카는 일어났을 것이지만 과학자에게는 가슴 아픈 흑역사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유레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슴 뛰는 단어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