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우서희 서울 자운초 교사/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우서희 서울 자운초 교사/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오팽이에게,

오팽아, 오랜만이야. 달팽이인 네가 우리 반에 오게 된 건 살구꽃이 피어오르던 어느 봄날이었지. 봄비가 내린 아침, 너는 길을 잃었는지 복도 벽에 붙어 있었대. 그걸 우리 반 어린이가 발견해서는 교실로 너를 데려온 거야.

풀잎에 있어야 할 네가 어찌 벽에 붙어있었을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책상 위에 있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꿈쩍꿈쩍 기어가던 너는 책상 위에 하얀 점액질을 내놓았고, 모두 너의 곁에 둘러서서 환호성을 내질렀어.

“선생님, 우리 이 달팽이 길러요!”

나는 애원하는 눈빛을 뿌리치지 못했어. “그래, 딱 며칠만 데리고 있자!”라고 승낙했지. 그리고 달팽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어. 달팽이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찾아보는 어린이의 얼굴은 처음 육아서를 집어 든 부모처럼 진지했어.

너의 이름 오팽이는 5학년 3반에서 기르기에 붙여진 이름이야. 그렇게 너는 우리 반에서 스물네 명의 어린이와 함께 살게 되었지.

너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어. 너를 돌보는 사육사 역할을 맡기 위해 많은 어린이가 경쟁했어. 먹이를 매일 가져다주고, 주말에는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주겠다는 공약을 낸 진우와 정현이가 사육사 역할을 맡았어.

쉬는 시간마다 어린이들은 너의 조그마한 사육장 옆에 붙어서 네가 무얼 먹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중계했어.

달팽이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진우는 “달팽이가 싫어하잖아! 좀 조용히 좀 해!” 하며 소리쳤지. 그렇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더 시끄러웠지만 난 눈감아주었어.

달팽이 사육사 정현이가 사육장 안의 흙을 갈아주기 위해 사육장을 들고 나간 어느 점심시간이었어. 신나게 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사색이 된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교실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지.

“선생님, 오팽이가 밟혔어요!”, “오팽이 껍질이 부서졌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어. 미안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너의 부상보다 어린이들이 이 사고를 두고 서로 잘잘못을 따지면서 싸울까 봐 먼저 걱정되었어. 교실에서 만난 첫 번째 죽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도 막막했어.

껍질이 깨져버린 너는 식음을 전폐하고, 힘겹게 버텼지만, 바로 다음 날 죽고 말았지. 교실을 가득 채운 무거운 공기가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어.

그림책 '오래 슬퍼하지마' 표지.(글렌 링트베드 저, 안미란 역, 샬로테 파르디 그림, 2007)
그림책 '오래 슬퍼하지마' 표지.(글렌 링트베드 저, 안미란 역, 샬로테 파르디 그림, 2007)

이 무거운 공기를 버텨보고자 나는 그림책 『오래 슬퍼하지 마』(글렌 링트베드, 샬로테 파르디)를 꺼내 들었어.

그림책 표지에 움푹 들어간 퀭한 눈, 마녀처럼 큰 코를 가진 사람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앉아있어.

동그란 코, 분홍빛 뺨을 가진 소녀가 검은 망토 사람의 길고, 창백한 손을 잡아주고 있네.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죽음’이래. 할머니를 데려가기 위해 집에 찾아온 거야. 어린이들은 ‘죽음’이 할머니를 데려가지 못하게 커피를 계속 따라주며 시간을 끌려고 해.

우리 반 어린이들이 껍질이 깨진 너를 살려보고자 신선한 당근과 배추를 가져다준 것처럼 말이야.

그러자 ‘죽음’이 이야기를 들려줘.


먼 옛날에 '슬픔'과 '눈물'이 골짜기에 살고 있었대. 햇빛도 비치지 않는 아주 어두운 곳에. 그곳에 사는 돼지들도 표정이 어두워. 언덕 위쪽에는 '기쁨이’와 '웃음이’가 살고 있었어. 골짜기와 다르게 언제나 햇빛이 비치고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나는 곳이었어. 그런데도 '기쁨이’와 '웃음이’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대. 그러다 자매와 형제가 만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서로 떨어져서는 못 사는 사이가 되었대. ‘죽음’이 우리에게 물어봐.

“죽음이 없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밤이 없다면 아침을 기다릴 필요가 없겠지?”


(사진=우서희 교사)
(사진=우서희 교사)

우리 반 어린이들은 너의 죽음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점심시간, 어린이들은 너를 위한 장례식을 치러주자며 너를 고이 들고 학교 텃밭으로 내려갔어. 봉긋한 흙무덤 주변에는 너의 영정 사진과 함께, ‘오팽이 여기에 잠들다'라는 묘비를 만들었지.

철쭉, 노란 데이지, 보라색 매발톱꽃과 나뭇가지가 무덤을 장식하고 있었어. ‘밟으면 죽는다!’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어.

진우가 사회를 맡아 장례식을 진행했어. 우리는 묵념을 하고, 돌아가며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어.

“오팽아, 네가 있을 때 참 좋았어. 미안해. 잊지 않을게.”

“네가 우리 반에서 살지 않았다면 목숨대로 오래 살다가 자연사했을 텐데, 우리 반에 왔는데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 말을 듣는 내 눈도 알싸해졌어.

죽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막막했던 마음이 지나가자, 비로소 슬픔이 찾아왔어.

우리는 너의 죽음을 함께 슬퍼했어. 내 곁에 함께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어. 퇴근길에 들린 너의 무덤가에는 더 많은 꽃이 놓여있었고, 꺾인 꽃들도 시들어가며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어.

너의 존재가, 너의 죽음이 우리를 끈끈하게 연결해주었어. 너는 손톱만 한 작은 몸으로 꿈쩍꿈쩍 우리들 마음을 지나가며 끈끈한 흔적을 만들어 놓았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