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털어놓는 고민에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면 좋을까?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를 이끄는 대표이자 '그림책 한 권의 힘'의 저자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해주고 있다. 그림책을 통해 감정, 관계, 자존감 등 삶의 문제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의 숨을 쉬도록 숨구멍을 틔워준다. <에듀인 뉴스>는 <이현아의 그림책 상담소>를 통해 이현아 교사로부터 아이들과 마음이 통(通)하는 그림책을 추천받고 그림책으로 진행 가능한 수업 팁을 전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선생님,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되면 어떡해요?”

중학생이 된 시윤이가 글쓰기대회를 준비한다고 연락해왔다. 시윤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나와 함께 그림책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마음껏 글 쓰고 그림을 그렸던 아이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 시간 내내 누구보다 자기표현의 기쁨을 누렸던 시윤이의 환한 얼굴을 기억한다.

그렇게 글쓰기를 즐겼던 시윤이도 대회를 준비하다 보니 부담과 압박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글쓰기대회를 신청하는 사람은 수천 명이지만 수상자는 다섯 명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대회에서 떨어지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쓰기를 즐기기도 하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시윤이는 대회에서 떨어질까 봐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털어놓았다.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초등학교 교실을 떠나 현실의 세계로 진입한다.

초등학교 때는 무엇이든 ‘잘함’이었던 나, 담임 선생님의 품에서 ‘넌 특별하단다’라는 칭찬을 들었던 나. 그런데 막상 중학교에 가보니 나 자신이 그저 평범하고 하찮은 존재로 느껴진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딱딱한 책상에 앉아서 칠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알록달록한 색종이가 가득했던 초등학교 교실을 떠나 숫자가 적힌 성적표와 씨름하면서, 이제 아이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진짜’ 학창 시절을 맞이한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낙오자가 되는 세상으로 진입한 아이들은 이제 동화 속의 달콤한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다.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표지.(루리 글·그림, 비룡소, 2020)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표지.(루리 글·그림, 비룡소, 2020)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를 보면 그런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인이 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열심히 운전해서 모범운전자가 되었는데도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낙오자가 되고, 성실하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도 얼굴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이들은 절망한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퇴사하면서 동료들이 이별 선물로 준 참치통조림 선물세트, 그리고 편의점에서 해고당하면서 싸 온 삼각김밥이 전부다.

열심히 해도 별 볼 일 없는 세상에서 이제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림책을 펼쳐보면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안고 절망한 여덟 명의 인물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각자 자신에게 남은 것들을 꺼내어 한데 모은다.

김치와 참치통조림, 가스레인지와 냄비가 만나자 맛있는 김치찌개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이 김치찌개로 텅 빈 속을 따뜻하게 달래고 서로 힘을 합친다.

“만약에 우리가 힘을 합치면, 맛있는 김치찌개 가게를 열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말이야….”

그림책의 뒷 면지를 보면 그 ‘만약’이 현실이 된다. 이들은 절망 가운데 홀로 주저앉아있지 않는다. 몸을 일으켜서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냄비와 조리기구를 빌리면서 새로운 내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성실하게 살아도 낙오자가 될 수 있고, 아무리 좋아하는 분야라도 끝내 잘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열심히 해도 잘 안 될까 봐 움츠러든 아이에게 오늘은 ‘무조건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대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해도 잘 안 될 수도 있어. 혹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혼자 주저앉아있지는 마.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실패와 낙오가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 넘어지더라도 일어날 수 있도록 잘 넘어지자. 실패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도록, 부디 잘 실패하자.”

▶현아샘의 그림책 수업 tip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다시 일어날 힘이 필요한 아이를 위한 그림책 질문입니다.

1. 이 그림책의 주인공처럼 열심히 했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요?

2.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혼자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
이현아 서울 홍릉초 교사. 11년차 현직 교사로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독특한 노하우가 담긴 그림책 수업을 통해 지금까지 탄생한 어린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이 200여 권에 이른다. 유튜브 ‘현아티비’와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의 ‘읽고 쓰고 만드는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강연으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미술교과서 및 지도서(천재교육)을 집필했고, 저서로는 ‘그림책 한 권의 힘(카시오페아 출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