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은 지 꽤 되었다. 한 해 건너 돌아오는 건강검진은 나의 경우 늘 연말로 밀린다. 년 초나 연중에 특별히 바빠서가 아니다. 일 년의 상반기가 넘어가면서는 해야지 해야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 소리를 무시하는 건... 

그렇다, 무서워서다. 여기서의 무서움이란 흔히 말하는 ‘공포’의 의미보다는 겪기 싫은 일을 피하고 싶은, 피할 수는 없지만 되도록 늦게 맞닥뜨리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비슷한 감정일 게다. 그리고 나는 그 ‘무서움’의 실체를 정의할 수 있다.

바로 ‘위 내시경’이다. 최초의 경험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 해 건강검진을 예약했는데, 예약이란 특성상 당일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미리 예상할 수가 없다. 그 예약된 날에 난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되었고, 기도(氣道)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악에, 내시경 호스가 들어가는 식도(食道)와의 밸런스는 컨트롤이 정말 어려웠다. 

나도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진행하는 의사선생님도 고역이었을 게다. 눈물 콧물에, 온통 진이 빠지던 그 경험은 2년에 한 번씩 있는 어떤 날을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도 멀쩡한 정신으로 검사받고 싶다며 꽤 오래 스스로에게 고집을 부렸지만, 올해 처음으로 수면내시경을 접했다. 코로나 정국의 11월, 아침 일찍부터 병원은 검진 대상자들로 붐볐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련의 동선 끝에 내시경 검사가 있었고, 오른 팔 정맥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정신을 잃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마 후 간호사는 내시경 검사가 끝났다며 나를 깨웠다. 살면서 별로 겪어보지 못한 ‘믿을 수 없는 실제 상황’. 

그 상황을 이끌어낸 건 ‘수면유도제’라는 물질이다. 찾아보니 미다졸람이나, 혹은 프로포폴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투여된 물질이 무언지는 물어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이 약물들의 화학구조를 보면 벤젠에서 유도된 링 모양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데, 탄소(C)와 수소(H)로 이루어진 벤젠의 화학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낸 케쿨레(Friedrich August Kekulé von Stradonitz, 1829 – 1896)의 일화가 떠올랐다. 

많은 유기물이 탄소와 수소의 ‘사슬구조’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시대에, 화학식이 C6H6로 알려진 벤젠은 사슬구조로 설명될 수 없는 물질이었다. 팔이 네 개인 탄소 여섯과 팔이 한 개인 수소 여섯이 함께 하나의 구조물을 이루려면 어떻게 팔짱을 끼어야 가능할까? (독자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라)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무언가에 골똘해서 몇날며칠 24시간 한 주제만을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유레카’의 순간이 온다는 것을?

필자에게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데 게임에 몰두하던 한 지인이 당시 빠져 있던 게임의 어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방법을 자다가 생각해냈다며 PC방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본 적은 있다. 

성공적이었다는 후일담도 들었다. 케쿨레는 벤젠구조에 대한 수수께끼에 몰두하다가 잠에 들었는데, 꿈속에서 뱀이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케쿨레는 벤젠의 ‘고리구조’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최근 유행했던 책의 한 구절을 빌려보자면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했는데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 말이다. 

과학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떤 법칙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전제를 두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과학자들이 우주의 법칙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생각하며 몰두하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대체시키기에는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그 단어가 그다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지만 여기서의 ‘지극한 정성’도 조금은 추상적이고, 굳이 이 경우에 어울리는 말을 찾는다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한다는 것. 

얼마나 몰두했으면 꿈에서 뱀이 나올 정도였을까? 하긴 그 뱀도 케쿨레의 무의식 속에서 나온 것일 테니 케쿨레의 무의식이 미리 그 구조를 알고 있던 것일지도. 

수면내시경 과정 동안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수많은 세월 동안 계절 따라 사과가 떨어졌겠지만 뉴턴의 사과만이 만유인력의 사과가 아니던가. 

나는 내후년에도 건강검진 때 수면내시경을 받을 생각이다. 연말로 미루지도 않을 것이다. 과학의 원리를 밝혀내진 못하더라도 과학에 기인한 이로움이나 편리함을 사용할 수는 있지 않은가. 무서움을 극복하는 데에.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