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월 17일 여야 의원 113명의 동의를 받은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교원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하며 이들에 대한 사정이 재조명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민주화의 울림이 거리를 메우던 1980년대, 이들은 어떤 일로 해직되었고 임용제외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한다.

강득구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 교원의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캡처  

[에듀인뉴스] 얼마 전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20여년간 억울하게 옥살이 한 사람의 사연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착오와 성급함으로 빚어진 사건이었지요. 누명을 쓴 채 젊은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요?

그런데 국가기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30여년간 억울하게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성행불량자’라는 오명을 씌워서 교단에 서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교사 임용고시가 없었으며 국립 사범대생들은 졸업 후 5년간 의무적으로 교단에 복무하는 조건으로 수업료를 면제해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여의치 못한 성적우수자들이 국립사범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골 출신인 저도 1983년도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있는 국립사범대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캠퍼스는 제가 꿈꾸던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교내 잔디밭마다 전경과 사복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수시로 최류탄이 난무하였으며 곳곳에서 선배들이 구호를 외치며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입수한 비디오를 통해 1980년 광주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목격한 젊은이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강의실에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밤 9시에 나오는 대통령이 그 만행의 주범임을 안 순간 젊은 대학생들은 정권교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세 차례에 걸친 구속, 구금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졸업해야 할 시점보다 2년 6개월이나 늦은 1989년 8월 달에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학번 동기들은 모두 교사로 임용된 이후에 늦깎이로 졸업하게 된 거지요. 

졸업 후 공무원 신체검사 서류를 포함한 임용서류를 교육청에 제출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하여 대학 재학 중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있던 졸업생들은 발령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졸업하기 한 달 전에 정부에서는 시국사건관련 예비교사들의 임용을 배제하라는 공문을 이미 지역교육청에 하달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경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89년 7월 25일, 문교부에서는 ‘신규교원 보안심사 강화 지침’이라는 공문을 하달하여 전교조 가입 가능성이 있는 예비교사들을 임용에서 배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적용된 법조항이 구 교육법 77조 3항 ‘성행불량’ 조항이었습니다. 

신규교원임용에 관한 문교부 지침에 따르면 성행불량자란, ▲이성관계 문란, 상습도박, 음주추태, 폭행, 허위사실 및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여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자 ▲불법 학원 소요 주동자 및 적극 가담자 ▲불순단체 가담자 또는 불법 시위 가담자 ▲기타 학칙 위반 사실이 있는 자 등 이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예비교사들을 ‘성행불량자’라며, 교단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위의 문교부 지침에 있는 ‘유언비어 유포’란 시국 관련자들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유인물을 제작하여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며, ‘학원소요 및 불법 시위 가담’이란 광주 학살의 주범을 규탄하는 집회나 시위에 가담한 것이었으며, ‘학칙 위반’이란 이러한 활동으로 수배, 구금, 구속된 사람에 대하여 대학 당국이 이들을 탄압했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침에 의하여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교원보안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후보자 명부에 등재된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경찰서에 신원조회를 의뢰하였습니다. 

경찰서에서는 시국사건과 관련된 예비교사들을 ‘신원특이자’로 분류하여 교육청에 통보를 하였고 교육청에서는 이를 근거로 구 교육법 77조 3항 ‘성행불량’ 조항을 적용하여 임용에서 배제하였던 것입니다.  

역사적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과 안위를 내팽개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에게 ‘이성문란, 상습도박, 음주 추태자’들과 동일한 ‘성행불량자’로 취급하여 임용에서 제외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임용 면접 심사에서 ‘전교조활동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전교조에 우호적 답변을 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임용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항거하여 임용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1989년 하반기에 ‘전국임용제외교사발령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10여년간 각종 탄원과 서명운동, 집회 및 시위 등으로 임용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이 절실한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하였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오랫동안 교단 진출의 꿈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발령투쟁을 시작한지 10여년 후인 1998년에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50년만의 정권교체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전국임용제외교사발령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다시 모여 새롭게 발령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간 교육부, 국회, 정당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였고, 마지막 6개월은 노숙과 철야농성 등을 비롯하여 거의 매일 교육부와 국민회의 당사 앞에서 집회를 하였으며, MBC 뉴스데스크, KBS 인간극장, CBS 라디오 등을 통하여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1999년 8월경 설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시국사건관련교원임용제외자특별채용에관한특별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상임위원회실 옆 대기실에서 특별법 통과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후 시국사건 등으로 졸업이 지연되어 임용명부에 등재될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도 2001년 이 특별법을 개정하여 교단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용제외교원’이란 ‘시국사건관련교원임용제외자특별채용에관한특별법’에 의하여 1999년과 2001년에 특별채용된 교원을 지칭하게 된 것입니다. 

전국 임용제외 교원은 그 대상자가 220여명이었으나 현재 교직에 몸담고 있는 교원은 150여명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특별법에 의한 특별채용은 임용제외교원들이 받은 피해 중 일부만 회복(신분상의 지위 회복)한 것일 뿐 여타의 불이익을 해소하지 못한 반쪽짜리 원상회복이었습니다.

특별법에 의하여 꿈에도 그리던 교단에 설 수 있게 되었으나 신규채용 형식이었기 때문에 임용에서 제외되어 있던 기간(임용제외기간)에 대한 임금 및 호봉과 연금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채용 후 현 시점까지 20여년간 그 불공평한 처우를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21년을 기준으로 저와 정상적으로 졸업한 저의 대학동기의 호봉과 연금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연금은 거의 2.5배 차이가 납니다. 호봉은 12호봉 차이가 나는데 이 격차는 현재 20여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섰을 때 특별한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의 제도적 폭력에 의하여 발생한 이런 불공평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특별한 보상이나 혜택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원래 있어야 할 원상태 되돌려 달라는 것입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섰고, 6월 항쟁과 촛불혁명의 밑거름이 된 사람들에게 예우는커녕 아직도 이런 가혹한 처우를 감내하라는 것은 민주적 정통성을 이어 받은 정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20여년간 지속되어온 ‘시국사건관련 임용제외 교원’에 대한 불공평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임용제외교사들은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원상회복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교육부에서도 단체협약과 공문 등으로 불이익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하였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11월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해직교원 및 임용제외교원 지위 원상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원상회복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였고 이 법안에 대하여 여야를 망라한 113명의 국회의원들이 공동발의에 동참하였습니다. 

강득구 의원은 “역사적 정의를 위해 담대한 첫걸음을 떼겠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어 독배가 될지언정 그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10월 26일 국정감사 질의에서 강득구 의원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질의 응답한 내용입니다.

○ (질의) 이 분(해직교원 및 임용제외교원)들의 명예회복 조치는 임용제외와 해직 기간이 고려되어야 하고, 그 기간만큼 호봉경력과 연금경력이 인정되어야하며, 잃어버린 임금도 합당하게 보전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 (발언) 후세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교육에서의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교육부와 국회가 앞장서서 이 부분에 대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1월 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15개 시·도교육감은 '민주화운동 관련 교원의 원상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결의문을 발표하였으며 11월 19일 광주시의회에서는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 촉구 건의안을 심의 의결하였습니다. 

제주와 전북, 서울시 의회 등에서도 입법촉구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을 대상으로 원상회복 특별법 지지서명을 추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해방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여 친일파 후손들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려 하고, 광주학살의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하여 광주의 희생자들이 공공연히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듯이, 역사적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언젠가는 정의와 진실이 훼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져온 민주화운동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시켜 왔지만,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그 희생자들에 대한 원상회복을 망각한다면 언젠가는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날지도 모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홀대받는 사회,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지속적으로 불이익 받고 있는 사회에서 누가 시대적 소명과 진실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겠습니까?

깊은 어둠 속에 파릇한 여명이 밝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강창호 경기 양주 덕현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