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5. 진학고 교육 개선①
"아이들 진로와 꿈을 키워주는 교육, 약점보완형 아닌 강점강화형 교육해야"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사진=EBS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8부 잠자는 교실 캡처)
(사진=EBS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8부 잠자는 교실 캡처)

[에듀인뉴스] 우리나라 일반고를 생각하면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학입시 때문에, 자사고, 특목고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는 얘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잠자는 교실’이라고 할 정도로 교실은 맥이 풀려 있다.

고등학생이면 가장 혈기가 왕성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 학생들은 꿈을 잃고 잠자고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학생 입장이 아닌 공급자, 특히 일반고를 세우고 운영하는 이들의 문제로 생각한다.

우선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일반고가 무엇을 하는 곳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헌법에서는 초중학교 의무교육이나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고교교육은 빠져있다. 교육법에서도 그냥 ‘중등 보통교육’이라고 할 뿐, 뭘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도록 목적을 진술해두었다. 이는 일제 때나 해방 직후 동연령층의 5~20%가 고등학교 진학할 때 만들어진 문구다.

일반고가 질곡에 빠져 헤매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일반고에 오는 학생들이 너무 다양하다. 심지어 특성화고(직업계 고교)를 낙방한 학생들도 오고, 한글 독해도 잘 안 되는 다문화가정 자녀도 적지 않다.

일반고는 그냥 중학교 공부를 반복 확대 심화하여 보통교육을 ‘완성’한다고 보는 시각은 더 큰 문제다. 중학교 공부를 연장할 뿐이니 고교 공부의 수준이 낮고 획일적이며 초점이 없다.

이것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기준 문서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그냥 학술적으로 이런저런 과목을 늘어놓았을 뿐 학생들의 장래를 밝혀주는 ‘길’은 찾을 수 없다. 학생들도 이미 12년간 배운 것들이라 지루할 것이다.

출석일수의 2/3만 채우면, 학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누구나 고교졸업장을 받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기초, 기본 학습이 안 되어 있다.

그리고 대학 가는 준비와는 거리가 먼 상당수의 일반고 학생들이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직업위탁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거나, 아무나 와도 고맙다는 대학에 들어가서 세월을 허송한다.

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왔다가 여기저기 기웃거린 끝에 결국 실업자가 되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무릇 학교는 아동들이 기억을 자기관리하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가는 곳이다.

4~5세까지의 아이들은 듣고 보고 경험했지만 까맣게 잊어버린다.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전전두엽이 미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를 젖먹이의 망각, 유망(乳忘)이라고 부르겠다. 노년에 불행히도 노망을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람은 유망과 노망 사이에 배우고 일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먼저 ‘건강한 생활과 즐거운 생활’로 시작하여 ‘바른 생활’이 잡히면 그 다음에는 사회와 자연을 대하는 지혜를 배우는 ‘슬기로운 생활’을 공부한다.

슬기는 사람과 사건,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데서 일어난다.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하는 공부는 해당 분야의 슬기, 곧 지식과 기술이다.

학교의 공부는 크게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배우는 기초 기본적인 것으로 생활 교양이다.

초중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남녀, 지역, 언어, 인종 등 어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권적 학습권으로 균등하게 교육받는다.

교육의 기회, 과정, 결과도 가급적 유사하게 차별 없이 받도록 의무무상교육으로 진행한다. 부진아가 없도록 지도해야 하고 약점보완형 교육을 통해 기초를 탄탄히 하고, 기본을 튼튼히 하는 교육이다.

기초 기본 생활 교양 교육을 넘어서면 각 분야별로 심화, 특수, 전문, 직업 교육을 공부한다. 이때는 차별이 아닌 차이에 따라 알맞게 진로 맞춤형 공부를 시작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차 내가 할 ‘일’이자 ‘직업’이다. 희망하는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어떤 전공을 공부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 대학 공부를 준비하기 위해서 고등학교에서는 그에 알맞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약점보완형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잘 하는, 해야 하는 공부를 선택과 집중하여 강점강화형으로 본격 시작하는 곳이 고등학교다.

문명은 급변하여 평생직장은 없고, 수명도 길어져서 일생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 직업은 작정해 두어야 거기에 이르는 공부에 힘이 난다.

즉 귀항할 항구를 정해두고 배는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망대해를 떠돌다 풍랑을 만나거나 헤맨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잠을 잔다면 그만큼 꿈을, 갈 바를 모르기 때문이다. 뭘 위해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물론 IMF 이후 고도성장이 끝나고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사회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교나 대학에 종사하는 이들이 학생들에게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를 제대로 탐색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졸업하고 대학만 들어가면 될 것으로 착각하고 무작정 공부하고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가는 것이다. 만약 의대에 의사가 뭘 하는 직업인지도 모르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낭패일까?


일반계 고교는 무엇을 위한 곳인가? 한마디로 대학에 가서 전공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다.

고교에서 수학과 물리 등을 제대로 공부하고, 공대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직업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고교에서 화학과 생명과학 등을 제대로 공부하고, 보건의료계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그 직업에 종사하기 위함이다.


고교는 진로별 공부를 본격 시작하는 곳이다. 풍부한 교양을 쌓는 것은 중학교까지 12년으로 끝내고 고교에서는 공부에 선택과 집중을 시작해야 한다.

고교생들이 헤맨다면 장래 꿈, 내가 할 일, 직업을 먼저 찾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중학교 1학년에서 자유학기를 실시하는 것처럼 진로 탐색기간이 너무 일찍 잡혀 있어서 그렇다. 만약 중3이나 고1에 자유학기가 잡혀 있다면 더 나을 것이다. 진로를 탐색하고 발견하여 결정하였다면 그것을 준비하는 진로별 학습기회를 고교부터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고교를 중학에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는 견해는 퇴행적이다. 그런 견해는 과거 고교만 나와도 충분할 때 시작된 것이다.

IT에 적응하기도 전에 접어든 AI시대는 직업도 점점 연구개발(R&D)직으로 변한다. 끊임없이 자기주도적으로 탐구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협동적으로 배우는 평생학습 습관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곳이 고교이다. 그러므로 문이과식 획일적인 공부나 국영수 편중은 공부할 힘을 잃는다.

중학을 잇는 과거 고교관과 대학과 사회를 잇는 현대 고교관.(그림=홍후조 교수)
중학을 잇는 과거 고교관과 대학과 사회를 잇는 현대 고교관.(그림=홍후조 교수)

위의 그림을 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좌측처럼 고교를 중학교까지의 교육을 완성하는 곳으로 여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고교의 교육목적 의식이 흐릿하기에 고교는 어영부영 공부하다가 졸업장을 받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고교는 진로별 교육을 시작하는 곳이다. 진학계 고교는 대학과 연결되고, 직업계 고교는 사회 직업과 연결된다. 대학과 사회는 모두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있고, 그것을 본격 준비하는 곳이 고교이다.

위 그림에서 오른쪽 그림처럼 고교를 보기 시작할 때 고교 교육은 힘을 갖게 되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자기 ‘일’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A. Toffler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학교는 먼저 학생들이 자기 일을 백방으로 찾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중등학교 공부의 가장 큰 성과는 학생이 각자 자기 나아갈 길을 찾는데 있다. 어차피 진로는 변경가능하고 잠정적이며 복수일 수 있다. 그렇다고 주춤할 필요 없이 백방으로 진로를 찾아야 한다.

특히 중학교에서 고교로 올라갈 때 진학고로 갈 것인지, 직업고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일생의 직업(calling, vocation)을 찾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장래 직업, 그러니까 학교 졸업 후 첫 직업은 먼저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직업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대학 전공이 필요하다면 고교에서 그 전공 공부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중등학교 공부의 목적의식 명료화.(그림=홍후조 교수)
중등학교 공부의 목적의식 명료화.(그림=홍후조 교수)

종합하면 일반고는 이제까지의 길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진로별 학습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문이과식과 국영수 중심을 넘어서야 한다.

첫째, 고교는 중학교를 반복, 확대, 심화하는 곳이 아니라 대학과 직업세계로 연결되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문이과 양분의 획일화된 공부를 벗어나야 한다. 국영수 편중의 공부를 벗어나야 한다. 진로에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중학교와 고교에서 학생들은 직업 진로를 백방으로 찾아야 한다.

직업이 정해지고 그 다음에 공부다. 그냥 막연히 공부하고 졸업하는 것을 벗어나야 한다. 진로 탐색을 하는 자유학기제가 필요하면 중3이나 고1에서 해야 한다. 성적에 맞추어 막연히 대학에 진학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헤매는 학생들이 없어야 한다.

일반고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학생이 사는 길이고 나라가 사는 길이다.


◆ 글 싣는 순서

Ⅰ. 교육의 기본제도 1. 어긋남으로써 빚어진 문제들/ 2. 학제(학생수용)/ 3. 학교급 나누기/ 4. 교육과정 /5. 출생률 제고와 주택 문제/ 6.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

Ⅱ. 교원 양성과 운용 1. 전공 교육과정, 자격과 2중 전공/ 2. 교단교사 직급다층화/ 3. 교감발탁제, 교장 발탁제/ 4. 교육감 직선제, 중단위 교육행정기관

Ⅲ. 이공계 인력 양성 1. 수학, 과학, 기술공학 분야의 특징/ 2. 교원의 문이과 배분, 교대, 사대(사/과)/ 3. 첨단과학기술을 제 때에 가르치는 미래 pilot 학교/ 4. 수포자 구제문제/ 5. 국민기초학력과 충실화/ 6. 절대평가와 IB DP교사들의 시험 출제와 채점 능력

Ⅳ. 교과서 문제 1. 교과서가 필요없는 교과에서 예산 낭비/ 2. 판수를 거듭하는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3. 성교육교재와 발달 추동/ 4. 한국판 탈무드 개발 보급

Ⅴ. 진학계 고교 문제 1. 자사고와 특목고(집값 폭등)/ 2. 평준화와 비평준화/ 3. 국영수 편중과 진로별 교육과정/ 4. 교육기회 제공에서 학교간 역할분담

Ⅵ. 온라인 수업 1. 온-오프간의 분리와 협력(교육과정 조정)/ 2. 온라인 교육전용기기 개발 보급/ 3. 온라인 수업에서 효과 제고(중위층 몰락 대책, 수업시간 조정)

Ⅶ. 국민형성교육 1. 헌법을 제대로 가르치기/ 2. 한국근현대사 재인식/ 3. 국제관계와 국제정세 알기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