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에세이] '책 청소부 소소'가 준 문제..."교과서, 빠짐없이 가르치는 게 잘 가르치는 것일까?"
[그림책 에세이] '책 청소부 소소'가 준 문제..."교과서, 빠짐없이 가르치는 게 잘 가르치는 것일까?"
  •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 승인 2020.11.29 0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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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학창 시절, 심심하면 교과서의 이름을 바꾸는데 열중하는 친구가 있었다. 도덕을 똥떡으로, 사회는 상어회로, 국사는 국자로. 가끔 친구의 재치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너도 해볼래?’라는 말에는 늘 고개를 저었다.

나는 책을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밑줄도 잘 치지 않고, 귀퉁이를 접지도 않았다. 책 한 권, 그 자체의 완벽을 해치면 안 된다는 나만의 신념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이 다 되어서야 신기한 그림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림책 '책 청소부 소소' 표지.(노인경 글·그림/ 문학동네어린이/ 2010)
그림책 '책 청소부 소소' 표지.(노인경 글·그림/ 문학동네어린이/ 2010)

'빨간 머리 앤이 녹색 머리 앤이 되는 장면이 싫다고 함. 207쪽부터 211쪽까지 지우기.'

그림책에는 황당한 쪽지가 하나 등장했다. 책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아닌 지우라니? ‘책은 완벽하다’고 믿는 나에겐 정말 기가 막힌 말이었다.

그런데 이 쪽지를 보고 움직이는 인물이 있다. 책 청소부 소소이다.

소소는 청소용품이 가득 담긴 작은 차를 끌고 빨간 머리 앤 책 앞으로 간다.

207쪽, 소소는 앤이 염색을 잘못해서 초록 머리로 변하는 장면을 찾는다. 그러더니 우웨에엥웽 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청소기로 글자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책을 지우다니? 분명 불쾌한 기분일 줄 알았는데, 청소하는 소소를 보는 마음은 묘하게 짜릿했다.

완성된 물건을 다루는 일은 늘 조심스러웠다. 완벽히 완성되어있기에, 내가 맘대로 손을 대면 부수거나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정해진 사용법대로만 버튼을 누르고, 설명서에 나온 대로만 조작했다. 나에겐 책도 하나의 완벽한 완성품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책 중 하나가 교과서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으로서 나는, 교과서를 부실하게 넘어가는 부분 없이 잘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교과서를 빠짐없이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수행을 거듭하던 어느 날, 따분해 죽겠다는 얼굴의 아이들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를 빠짐없이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일까.

책 청소부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진 소소 역시, 이런 물음에 부딪혀 그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책에 나오는 말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그런 용기가 없을까? 내가 한번 해봐야지.’라고.

처음에는 글씨를 지우기만 하던 소소는 자신의 청소기 속 가득 찬 글씨들과 함께 도서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번엔 그 글씨를 여기저기, 책에 맘대로 붙이기 시작한다.

‘새의 선물’이라는 책 앞에는 ‘펄럭펄럭’이라는 글자를 붙여 날아갈 수 있게 한다. ‘공장’이라는 책 앞에는 솜사탕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퐁퐁퐁’이라는 글자를 붙인다.

가만히 있던 도서관의 책들이 들썩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동감을 찾은 것이다.


‘교과서에 있는 것을 빠짐없이 다 가르쳐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렸더니, 교과서를 벗어난 아이들의 일상이 보였다.

따돌림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아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수많은 삶의 모습이 가득했다.

어딘가에 완성되어 있을 교과서 같은 해답을 찾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고민을 책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민서 학생이 만든 그림책 '달력의 시간' 표지.(사진=이한샘 교사)
민서 학생이 만든 그림책 '달력의 시간' 표지.(사진=이한샘 교사)

민서는 기르던 강아지가 죽은 후 죽음이 무엇인가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민서는 ‘달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달력이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 자그마한 탁상 달력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열두 달밖에 살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강아지를 돌보고 진정한 교감을 나누며 삶의 한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아지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버리고, 남은 달력이는 힘들어하다가 또 다른 동물을 돌보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시간이 흐르고 달력이 역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이란 마냥 슬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삶이 그만큼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고민은 살아 있는 책이 되었다. 교과서를 스스로 찾아 읽는 아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서로의 고민이 담긴 책은 흥미를 느끼며 몇 번이고 읽었다.

책 청소부 소소의 이야기는 책을 지우고, 바꾸는 것에서 끝난다. 하지만 뒷이야기가 있다면 분명 소소는 책을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은 지우면 안 돼요? 바꾸면 안 돼요? 그리고 직접 쓰는 건 안 되나요?”라고 물으면서 말이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한샘 서울 신길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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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진 2020-11-30 12:49:34
그림책 에세이의 기사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책 청소부라는 개념도 참신하고 의미심장했습니다. 교과서의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보다는 우리들의 눈높이와 흥미에 맞도록 교과서를 재편집해주는 선생님이 저희는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