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제도, 교육정책, 교육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29일 대표 발의한 '교원단체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 일부 캡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29일 대표 발의한 '교원단체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 일부 캡처.

[에듀인뉴스] 교사노조연맹과 실천교육교사모임(이하 ‘실천교사’) 간의 논쟁이 뜨겁다. 비슷한 지향점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두 단체가, 갈림길에 섰다.

보통 노조에게 주어졌던 노동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나머지 하나의 권리인 단체행동권은 교원노조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이, 노조가 아닌 단체(교원단체)에게도 주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두 줄로 압축할 수 없는 이 복잡한 논쟁을 요약할 의지와 능력이 내겐 없다. <에듀인뉴스>에 꽤 자세한 기사들이 있으니 무책임하지만 그걸 참고하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필자를 용서하시라.

다만 나는, 주변인으로서, 이 논쟁 구석들을 돌아보며 느낀 짤막한 단상들을 다소 체계 없이 늘어뜨릴 작정이다.

어디 한 곳에 소속해 제대로 의미 있는 활동 한 번 한 적 없는, 자격 없는 이의 무책임한 발언을 다들 너무 귀담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쟁의 대부분이 사실은 페이스북 게시글과 그 댓글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페이스북을 많이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페이스북은 이미 공론장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글도 있지만, 공적인 글과 공적인 반론이 적어도 교육담론 영역에서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소 편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나온 논쟁 내용과 관련한 단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사과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지항수 선생님(전남 목포초등교 교사)이 뜬금없이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정성식 선생님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실천교사 회장에게 사과를 바란다’라는 게시글을 통해서다. 나는 실천교사 회장이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나 싶었다.

발단은 이렇다. 실천교사 회장이 올린 글이 문제였다.


“교사노조연맹이 교원단체법안을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로 든 고용노동부 의견은 정당보다 교원단체 설립을 더 까다롭게 했던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먼저 발의한 법률안에 대한 고용노동부 의견입니다. 그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박찬대 의원이 이후에 발의한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법률안을 반대하는 논리로 고용노동부 의견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항수 선생님은 이를 “팩트를 가장한 선동”이라고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해설을 하자면 이렇다.

교원단체법(‘교원단체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은 두 가지 버전이 나왔다. 하나는 올해 6월에 나온 김병욱 의원의 발의안, 두 번째는 10월에 나온 박찬대 의원의 발의안.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고 심사의 과정에 있는 법안이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박찬대 안을 밀고 있다. 위의 표현에서 보듯, 김병욱 안은 독소조항을 품고 있다고 여긴다.

김병욱 안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이러했다.


“교원단체의 설립 운영에 관한 사항이 교원노조법에 따른 교원노조와 유사·중복으로 규정되어 법 운영 과정에서 교원단체와 교원노조의 관계 등에 대한 혼란이 초래되고 교원노사관계의 안정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별도의 법 제정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


이 고용노동부 의견은 교사노조연맹이 두고두고 자신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쓴다.

그럼 새로 발의된 교원단체법과 교원노조법은 정말 유사·중복되는 면이 있을까? 있다. 바로 ‘교섭권’이 그것이다.

교사노조연맹은 법적으로 인정받은 교원노동조합이니 당연히 노동권의 하나인 ‘단체교섭권’을 가진다. 그런데 김병욱 의원의 교원단체법안에도 유사한 권한이 나온다.

‘제5조 교원의 지위 향상을 위한 교섭·협의’가 그것이다. 통상 ‘교섭·협의권’이라 부르는 그것.

교원노조의 ‘단체교섭권’, 교원단체의 ‘교섭·협의권’은 상당히 유사하며 중복이라 할 만한다. 물론 알고 보면 상당히 다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이 부분을 짚은 것이다.

그런데 실천교사가 밀고 있는 박찬대 안에도 ‘교섭·협의권’은 똑같이 나온다. 토씨도 거의 비슷하다.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김병욱 안에 대한 것이었지만, 어찌 보면 박찬대 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천교사 회장은, 고용노동부의 의견은 김병욱 안에 대한 의견이므로, 박찬대 안에 대한 비판 근거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천교사 회장이 지적한 김병욱 안의 독소조항은 이와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

실천교사 회장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김병욱 안의 독소조항은 교원단체 설립에 대한 내용인데, 교원단체 설립을 너무 어렵게 만들어 사실상 교총만이 교원단체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실천교사와 같은 신생 단체는 죽어도 교원단체가 될 수 없는 구조이다.

그 독소조항을 완화하여 교원단체의 문을 열어놓은 안이 바로 박찬대 안이다. 정성식 회장은 이 두 안이 전혀 다른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그 독소조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물론 그 독소조항의 유무는 매우 큰 차이다.) 교섭권에 대한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정성식 회장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지항수 선생님은 바로 이 부분을 짚은 것이다.

나는 다른 부분의 경우 정성식 선생님의 견해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항수 선생님의 지적이 훨씬 설득력 있고, 쉽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을 잘 짚어 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항수 선생님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쓴 몇 단어들과 소통을 하는 방식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겠다.

예컨대 ‘선동’이라는 말은 지나치다.

정성식 선생님의 글이 결과적으로 선동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쓴 글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내 입장에서는 다소 논리비약이 있는 글로 읽힐 뿐이다.

‘선동’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선동하는 사람으로 만들면 이후 논쟁이 생산적으로 흘러가기 힘들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동’의 개념을 지항수 선생님은 너무 넓게 잡은 것 아닌가 싶다.

게다가 제목에도 나왔듯이, 지항수 선생님은 “회장이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원들과 교사노조연맹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글을 올림으로써 교원단체 합법화의 정당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이게 사과할 일인가? 사과는 상대방에게 잘못을 했을 때, 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 명백할 때 하는 것이다. 정성식 선생님이 잘못을 했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 명백한가?

의견이 다른 이에겐 그것이 잘못으로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잘못을 했고 피해를 준 셈이 된다.

그저 의견이, 생각이 다를 뿐이다. 나는, 그리고 지항수 선생님은 동의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정성식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쨌든 다른 법률안이 나왔고, 그 법률안에 대한 고용노동부 의견이 아직 따로 나온 게 아닐진대, 고용노동부의 의견을 똑같이 적용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에 (크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일말의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하는가?

정성식 선생님 말대로, ‘지항수 샘 판단이 있다면 그 생각을 적으면 될 일’이다. 지항수 선생님은 본인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맥락에 맞지 않는 사과를 요구함으로써 논쟁에 불필요한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생산적인 논의로 끌고 갈 수 있는 순간을, 아쉽게도 날려버렸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시행령은 되고 법률은 안 된다?


논란의 와중에 있는 것 중 하나가 시행령 논란이다.

교육기본법 제15조 2항에 따라 ‘교원단체의 조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는데, 대통령령, 즉 시행령이 20여 년째 만들어지지 않아 기존에 있던 교총 외에 새로운 교원단체가 생길 수 없는 구조로 돼 버렸다. 정부의 직무유기다.

이번에 발의된 김병욱 안, 박찬대 안 모두, 당연히 ‘시행령’이 아닌 ‘법률’이다. ‘시행령’에서 언급하기로 한 ‘교원단체 조직에 필요한 사항’을 ‘법률’ 차원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다.

발의된 법률들은 모두 교원단체 조직에 필요한 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다만 김병욱 안은 그 설립을 굉장히 까다롭게 만들었고, 박찬대 안은 상대적으로 열려있다.

이 법률로 인해 ‘교육기본법 시행령’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고, 교육기본법 제15조 2항은 삭제되게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두 단체에겐 큰 문제로 다가왔다. 특히 교사노조연맹에게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으로 다가온 것이 바로 ‘교섭권’ 부분이다. 위에서 얘기했듯, ‘단체교섭권’은 노동기본권 중 하나이며, 보통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가 실현된다. 그런데 이 교섭권과 유사한 ‘교섭협의권’이 이번 교원단체법, 즉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들어가 있어, 교원단체가 법률차원에서 그 교섭협의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교원단체의 ‘교섭협의권’이 중복·충돌하게 되고, 노동조합의 노동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 교사노조연맹의 논리다.

일부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 노동 3권 중 하나인(교원에게는 단체행동권이 없어 노동 2권이지만) 단체교섭권은 노동자의 권리이면서 현실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권리다.

헌법에 그 권리를 노동조합만 누리라는 조항이 없기에 다른 단체도 그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기본권을 힘겹게 쟁취한 장구한 역사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사노조연맹 측에서, “그럴 거면 노조를 만들라”고 하는 게 실천교사 측에서는 고깝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교섭권을 사용하려면, 노동조합에 들어가거나, 노동조합을 만들면 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노조의 ‘교섭권’과 단체의 ‘교섭협의권’이 정말 같은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같지 않다. 같지 않은 걸 계속 같다고 전제하고 얘기하니 교사노조연맹의 주장은 겉돌 수밖에 없다.

둘 간의 가장 큰 차이는 강제력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만약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 사용자가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한다면 사용자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게 된다.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서로 합의하여 체결한 내용을 단체협약이라고 하는데, 이 단체협약 또한 지켜야 하는 의무조항이며 이행하지 않을 시 벌칙 조항이 있을 만큼 강제력이 있다.

그에 반해 교섭협의권은 어떨까? 교원단체법에는, 교육당국은 교섭에 성실히 임하여야 하고, 합의서의 내용이 성실히 이행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만 있을 뿐, 강제 이행 조항은 없다. 즉 둘 간에는 강제력에서 현격히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의 교섭협의권이 충돌할 시 법적으로 단체교섭권이 우위에 있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다만, 이미 단체의 교섭협의권으로 합의가 끝난 사안에 대해서, 노조가 반대 입장으로 교육당국과 교섭을 한다고 했을 때를 굳이 가정한다면, 쉽지는 않을 개연성을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언급된 이런 큰 차이에 대해서 교사노조연맹은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다. 11월 8일 발표한 <교사노조연맹이 교원단체법과 관련하여 교원 3단체에 드리는 글>에서도, 사실상 현재까지는 마지막 공식 입장표명인 11월 9일 <‘교원단체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도 관련 언급은 없다.

게다가 교원단체의 교섭협의권은 이번 발의안인 교원단체법에 처음 나온 내용이 아니다. 이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법’)이라는 별도 법률에 1991년도부터 존재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교섭협의권’ 자체가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었다. 다만 교육기본법 제15조 2항에 따른 시행령 제정 미비로, 교원단체 지위는 오직 기존 교총만이 독점해 왔었고, 따라서 교총만이 이 교섭협의권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 30년 동안 교총의 교섭협의권이 특별히 문제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교사노조연맹은 이 교섭협의권을 문제 삼으면서, 교원단체법과 같은 ‘법률’이 아니라, 교육기본법 아래 원래 제정하려 했던 시행령을 만들어 교원단체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교원단체 지위를 얻어 전문성 향상과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해 활동을 하라 한다.

여기서 교사노조연맹은 입장을 좀 더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교원단체법 법안을 철회하고 교육기본법 시행령을 제정하여 교원단체 조직에 관한 내용만 추가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교원지위법 상 살아 있는 ‘교섭·협의권’은 어떡할 것인가?

시행령을 제정하고 교원지위법은 그대로 둔다면 교원단체들이 교섭협의권을 사용할 수 있어, 어차피 결과는 교원단체법이 통과되는 것과 똑같은 것이 되고 만다.

교원노조연맹은 교원지위법을 긍정하지 않는다고 했는데(<교사노조연맹이 교원단체법과 관련하여 교원 3단체에 드리는 글>), 그렇다고 이 ‘법률’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예컨대 헌법소원을 한다든지) 내놓지도 않았다.

또, 엄민용 교사노조연맹 대변인이 “새로운 법률안을 제정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헌법 21조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차라리 교원단체의 설립은 신고로서 가능하게 하고, 설립 신고한 단체는 당연히 교섭·협의권을 보장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한 모순적인 발언(<"교원 단체 설립 등은 시행령 아닌 법률로" Vs "다른 단체 진입 막는 정치적 처사">, 에듀인뉴스, 2020.07.22.)에 대해서도 딱히 언급이 없다.

교섭협의권도 시행령 수준에서 하라는 건지, 아예 없애라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 교사노조연맹은 자신들의 입장을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정리가 안 된 느낌이다.

교사노조연맹은 어쨌든 시행령에 크게 집착하고 있다. 법률은 안 되고 시행령을 제정하라고 한다.

법률과 시행령은 전혀 다른 위상을 갖고 있고, 교원단체의 교섭협의권이 법률 수준에서 보장되면 교원노조의 노동기본권인 교섭권이 침해받아 문제가 된다는 게 핵심인 것 같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혹자는 법률로 하던지 시행령으로 하든지 별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만, 전교조가 법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시행령에 의해 “노조 아님”을 통보받았기 때문에 ‘노조 아님’ 통보가 무효라는 대법 판결이 말해주듯이 법과 시행령(대통령령)은 전혀 다른 지위와 위상을 갖습니다.“(<교사노조연맹이 교원단체법과 관련하여 교원 3단체에 드리는 글>)


하지만 이는 시행령을 하찮게 보이게 하기 위해 다소 근거를 부적절하게 댄 것이다.

전교조의 ‘노조 아님’(정확히는 ‘법외 노조’) 통보가 무효라는 대법 판결은, 전교조의 ‘노조 아님’ 통보가 단순히 시행령에 근거했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의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법률(즉, 상위법인 ‘노동조합법’)에 근거하지 않았다(법률유보원칙)는 대법원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행령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 법률유보원칙(시행령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에 따라 대법원은 시행령에 따른 정부 집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법률에 근거한 게 명백한 시행령의 경우는, 특별히 그럴 일이 없다는 말과 같다. 대부분의 시행령은 법령으로서 정당하게 효력을 발휘하며 강제조항이 있다면, 그 효력 또한 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시행령은 불안하다. 법률에 비해 재개정이 쉬워 정부정책의 방향에 따라 쉽게 바뀌기도 한다.

여기서 교사노조연맹에 물어보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교사노조연맹은 교원단체와 관련한 법령이 시행령 수준에서 제정되길 원하는가? 주장하듯이, 법률에 비해 현격히 낮은 지위와 위상을 갖고 있는 시행령으로? 교원단체의 발전을 바란다는 교사노동조합의 말과 무언가 모순되는 느낌이다.

이것저것 정리 안 되는 느낌은 있지만, 교사노조연맹이 바라는 것은 아마도, 교육기본법 상 시행령을 제정하여 교원단체의 설립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고, 교원지위법에 있는 ‘교섭·협의권’ 관련 내용은 삭제하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 실천교교사에겐 굉장히 무리한 요구다. 그동안 교사노조연맹이 30년 동안 큰 문제없이 있어왔던 교섭·협의권을 문제 삼고 재개정, 혹은 폐지 운동을 벌였거나, 지도부 중 상당수가 속해 있었던 전교조에서 법이 태동한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로 재개정, 폐지 운동을 벌인 적은 없었다.

그러한 반대 의견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면 실천교사 측에서도 그것을 고려해 대안을 마련했을 것이다.

실천교사 측은 여러 대안을 마련 중에 현재의 박찬대 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 법안을 만들기 전에 교사노조연맹 측에도 의견을 구한 걸로 알고 있다.

강제력 없는 교섭·협의권 조항이 들어가는 것은 큰 문제없을 것 같다는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의 답을 들은 후, 법안 마련에 들어갔고 발의되기 전 법안 파일을 미리 보내 검토의견까지 구했는데, 답이 없었다고 정성식 실천교사 회장은 전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성식 선생님은 페이스북으로 김용서 위원장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만약 이 전개과정이 사실이라면, 교사노조연맹은 지금 굉장히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성식 선생님의 공개토론 제안 4일째 교사노조연맹은 아직까지는 답이 없다. 실천교사 측의 일방적 주장일지도 모른다. 교사노조연맹의 답변을 기다린다.


교감, 교장, 장학사는 사용자가 아닌가


교사노조연맹의 우려가 일부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다소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천교사 입장을 지지하는 분들의 글 중에서는 '관리자와 교육청은 교사의 적이 아니다'라는 류의 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굉장히 안이한 인식이라 생각한다는 이민동 선생님(청명고등학교 교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학교 내부자들>(에듀니티, 2018)을 지은, 이 시대의 존경할만한 관리자 박순걸 교감 선생님은, 페이스북 실천교육교사모임 광장에 올린 글 일부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월급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이고, 더구나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만 하는데 제가 왜 노조에서 말하는 ‘사용자’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노동자라고 할 때, 보통 ‘임금 노동자’를 상정한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대개가 노동자인 건 맞다. 그러나 임금을 받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노동자라고 한다면, 일반 기업에서는 왜 보통 ‘과장급’ 이상부터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했을까? 과장은 물론 차장, 부장, 심지어 임원들도 임금을 받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사용자라 함은 박순걸 교감선생님이 얘기하듯, 단순히 ‘월급을 주는 사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법상으로는 사업주 또는 사업의 경영담당자 기타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근로기준법 2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까지도 사용자로 본다.

물론, 교육계를 일반 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계라 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수평적인 관계 하에 살아가지 않는다.

크게 보면 위아래가 확실한 관료제에 기반하여 조직되어 있고, 이는 일반 기업의 조직 형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임용을 한 임용권자가 분명히 있고, 그 임용권자들의 지휘·명령에 따라 우리 평교사들은 움직인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따라 사원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법상 사업주에 해당하는 것이 교육조직에서는 임용권자일 텐데, 교육부장관, 교육감, 교육장 정도가 될 터이다. 사업의 경영담당자,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는 장학관, 연구관, 장학사, 연구사, 그리고 교장, 교감이 해당될 것이다. 이건 실제 교육 현실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구분으로 나타난다.

사용자의 부당한 지휘·명령에 노동자가 항의하듯, 평교사는 교육청과 관리자의 부당한 지휘·명령에 항의한다.

평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부당함과 억울함의 태반은, 관리자의 권위적인 태도와 부당한 지시, 교육청의 부적절한 업무 지시와 과도한 사업 추진 등에서 나온다.

박순걸 교감선생님과 같은 훌륭한 관리자가 있다는 건 행운이지만, 그리고 그런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지만, 여전히 소수다.

그런 개별적 사례로 우리는 관리자, 교육청과 매번 협력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거나, 노동자와 사용자의 이분법적 구분은 낡았다며 비아냥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이분법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먼저 실제 현실의 권력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더 우선이다.

상대방을 위한 반대에 몰두하여, 혹은 몇몇 소수의 사례에 함몰되어, 그동안 있어왔던 부당한 현실관계를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실천교사에 들어올 정도 관리자라면, 보통의 관리자는 아닐 것이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아직 식지 않았고, 눈을 낮은 곳에 돌리려 계속 애쓰는 분들일 터이다.

하지만 실천교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어느새 높은 분들이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단체를 변화시키려 할지 모른다.

기우라는 것 안다. 그러나 그런 염려를 너무 무시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는 애정을 갖고 있는 실천교사의 일개 한 회원의 염려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솔직함, 그 허무주의에 대하여


수요일밴드로 유명한 박대현 선생님은 교사노조연맹이건 실천교사건 좀 솔직해지자고 한다. 회원확보, 권력욕, 명예욕, 그런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밑바탕에 그런 저의들을 깔고 있으면서 아닌 척, 교육을 위해 그러는 것처럼 위선 떨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솔직한 것, 좋다. 위선에 대한 혐오, 좋다.

하지만 과하면 그것은 강박적 냉소가 버무려진 허무주의로 흐르고, 허무주의는 실제로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다른 이에게 생채기만 낸다.

권력욕과 명예욕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것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이념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 내 안에 쌓이면,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적인 존재로 단정해 버린다.

나는 교사노조연맹과 실천교사 측 사람들이 회원확보, 권력욕, 명예욕에 의해서만 움직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런 욕망이 어느 정도 도사리고 있을 수 있겠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 교육과 노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말과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열정을 존경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열정이 문제다. 열정을 내려놓고 상대방 주장을 차근차근 살펴볼 때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