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5. 진학고 교육 개선③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지난 번 칼럼에서 필자는 고교가 중학공부의 심화가 아닌 대학이나 사회 직업과 연계하여 진로별 공부를 해야 하는 곳으로 제안하였다.

학생, 교원, 학교 등은 한정된 시간, 노력, 비용을 최적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실제 고교의 모습을 보면 평준화, 문이과 양분, 국영수 편중 식으로 공부하도록 하여 학습효율이 떨어지고, 학습수준은 낮으며, 자원 낭비도 심각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는 과고나 외고에서는 공부에 선택과 집중을 시켜주고,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은 이것저것 다 공부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정말 고쳐야할 모순이다.

초·중학교가 공통교육과정을 운영한다면 고교부터는 학생들이 진로별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대체로 1학년에서는 공통으로 공부해도, 2학년에서는 문·이·예·체 계열별 공통으로, 3학년에서는 이보다 더 나누어서 공학(현장, field), 공학(실험실, Lab), 의료보건, IT(AI), 기초과학, 경상, 국제, 사회, 인문, 미술디자인, 음악, 연극영화영상, 문화콘텐츠, 개인운동, 단체운동 등으로 나누어, 진로맞춤형 학습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고교에서 진로별 학습을 하려면 먼저 교육과정 문서에 진로별로 교과목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교육과정 문서는 그렇지 않다. 가령 국어의 선택과목으로 제시된 독서, 작문, 화법, 문학, 문법 등은 대학 국어국문학의 학문적 분류이지 고교생용 과목은 아니다. 이는 교과의 진로별 하위과목 재구성에 대한 인식 없이 학문적으로 과목을 분류한 무책임한 체계이다.

진로별로 공부한다는 것은 국어를 배우되 문과, 이과, 예술, 체육 분야에 따라 내용의 범위, 수준, 심도, 분량이 조금씩 다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예술분야 학생은 국어공부에서 상대적으로 문학의 비중이 커야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고, 과학 분야 학생은 상대적으로 사실적·논리적 글쓰기를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어를 핵심과목으로 하는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는 국어를 문학중심이나 비문학중심으로 더 세분해줄 수 있다.

진로가 같으면 공부할 과목의 종류는 같고, 요구하는 수준은 다른 것을 제공해야 한다.

즉 수학은 중3까지 보충학습용, 인문사회용, (수학 더 쓰는) 경상용, (보건의료생명 등 수학 덜 쓰는) 이과용1, (공학 등 수학을 더 쓰는) 이과용2, 정보용, 예·체용, 대학선이수용의 8개면 충분하다.

진로별 수학 공부를 처방하면 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더 어려운 공부는 대학으로 과감히 넘겨서 대학전공공부를 위한 대학수학공부를 하도록 하면 고교에서 수포자도 줄어들 것이다.

더 나아가 학생의 능력이나 대학의 요구를 고려하여 수학 등은 수준별로 재구성해주어야 한다. 공대로 진학할 학생을 위한 수학을 개설하되, 서울공대나 KAIST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높은 수준도 있고, 2년제 공대를 위한 보통 수준 수학도 있어야 한다.

선 진로별, 후 수준별로 교과목을 재구성했다면 그 과목들은 대체로 2년 정도 연속으로 이수하도록 대단위로 만들어야 깊은 이해와 높은 수행(deep understanding & high performance)을 거둘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과목은 대체로 한 학기 단위로 쪼개져 있다. 다른 교육선진국들은 고2-3학년을 위한 과목들은 대체로 2년 연속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세계수준 국제공인 고교교육과정인 IB DP에서도 이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당 4~5시간씩 2년 연속으로 공부하는 과목은 너무 적고, 반면에 주당 1~3시간씩 한 학기를 공부하는 과목은 너무 많다.

이에 2009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기당 이수과목수를 8개 이하로 줄이는 집중이수를 강조하였으나 여전히 주당 적게는 10과목, 많게는 15과목을 배우는 ‘다과목 분산 피상학습’을 초래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고교학점제’로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하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진로별로 과목의 정비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을 더 주려니 과목을 더 잘게 쪼개야 하고, 교사들은 쪼개진 여러 과목을 가르친다.

이제는 ‘소교과 집중 심층학습’으로 바꿔야 한다.

각 교과를 진로별 과목으로 체계적으로 분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로별로 분화할 기본교과는 국어, 외국어, 사회, 수학, 과학, 기술(IT, AI로봇 포함), 예술, 체육이다.

각 교과는 기본적으로 문과용, 이과용, 예술체육용의 3가지나 문·이·예·체의 4가지 과목으로 나눌 수 있다.

예술과 체육을 ‘전공’할 학생들이 고교에서 해당 분야를 분화해서 심화학습하듯이, 문과형 과목인 국어, 외국어, 사회는 문과생들을 위해 한 번 더 분화해주고, 수학, 과학, 기술 등은 이과생들을 위해 한 번 더 분화해주면 된다.

결국 각 교과는 진로별로 5~7개 정도를 만들 수 있고, 대략 50개면 ‘선 진로별, 후 수준별’ 과목이 만들어진다. 다음은 그 예시안이다.

고교에서 교과의 진로별 과목 재구성(안)(예시).(표=홍후조 교수)
고교에서 교과의 진로별 과목 재구성(안)(예시).(표=홍후조 교수)
고교에서 교과의 진로별 과목 재구성(안)(예시).(표=홍후조 교수)
고교에서 교과의 진로별 과목 재구성(안)(예시).(표=홍후조 교수)

고교 공부는 진로에 따라 한 학기 집중, 1년, 2년, 3년 연속의 중·대규모 단위로 과목을 만들고, 3년 내내 공부하는 과목을 대입시 과목으로 삼으면 된다.

취미, 교양, 보충용 일부 과목은 한 학기 단위로 공부해도 된다. 이런 주변 과목들은 학교단위에서 자체 개설하도록 두어도 된다.

정리하면, 진학계 고교에서는 대학의 전공 등에 필요한 바탕학습을 충실히 하기 위해 진로별로 선택과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

자신의 진로와 무관한 무수한 선택지는 오히려 학습자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선택이든 필수든 학습자가 자신의 진로에 따른 적절한 학습기회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요체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학기 단위로 잘게 쪼갠 과목을 줄이고, 대신 과목을 진로별로 재구성하되, 가급적 1~3년간 연속 이수할 수 있도록 단위수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심층학습과 높은 수행을 할 수 있고, 나아가 교과 간 통·융합도 가능해진다.

차기 고교 교육과정을 연구 개발하는 이들이 곱씹을만한 제언이다.


◆ 글 싣는 순서

Ⅰ. 교육의 기본제도 1. 어긋남으로써 빚어진 문제들/ 2. 학제(학생수용)/ 3. 학교급 나누기/ 4. 교육과정 /5. 출생률 제고와 주택 문제/ 6.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

Ⅱ. 교원 양성과 운용 1. 전공 교육과정, 자격과 2중 전공/ 2. 교단교사 직급다층화/ 3. 교감발탁제, 교장 발탁제/ 4. 교육감 직선제, 중단위 교육행정기관

Ⅲ. 이공계 인력 양성 1. 수학, 과학, 기술공학 분야의 특징/ 2. 교원의 문이과 배분, 교대, 사대(사/과)/ 3. 첨단과학기술을 제 때에 가르치는 미래 pilot 학교/ 4. 수포자 구제문제/ 5. 국민기초학력과 충실화/ 6. 절대평가와 IB DP교사들의 시험 출제와 채점 능력

Ⅳ. 교과서 문제 1. 교과서가 필요없는 교과에서 예산 낭비/ 2. 판수를 거듭하는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3. 성교육교재와 발달 추동/ 4. 한국판 탈무드 개발 보급

Ⅴ. 진학계 고교 문제 1. 자사고와 특목고(집값 폭등)/ 2. 평준화와 비평준화/ 3. 국영수 편중과 진로별 교육과정/ 4. 교육기회 제공에서 학교간 역할분담

Ⅵ. 온라인 수업 1. 온-오프간의 분리와 협력(교육과정 조정)/ 2. 온라인 교육전용기기 개발 보급/ 3. 온라인 수업에서 효과 제고(중위층 몰락 대책, 수업시간 조정)

Ⅶ. 국민형성교육 1. 헌법을 제대로 가르치기/ 2. 한국근현대사 재인식/ 3. 국제관계와 국제정세 알기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