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후조의 우리 교육 더 낫게 만들기] 5. 진학고 교육개선⑤ 모든 학교를 특목고로

[에듀인뉴스] 교육은 희망이고 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온갖 교육 혁신안이 등장했음에도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원, 교육학자, 기업인, 일반인, 실업자 등 각자 처지에 따라 교육문제를 보는 눈이 다르다. <에듀인뉴스>는 창간 5주년 기획으로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만나 무엇을 주고받는가를 탐구하고, 국가의 거시적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의 미시적 교실 수업을 아울러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홍후조 교수(교육과정학자)의 입을 빌어 ▲교육 기본제도 ▲교원 양성과 운용 ▲이공계 인력 양성 ▲교과서 문제 ▲진학계 고교 문제 ▲온라인 수업 ▲국민형성교육 등 분야 별로 문제의식(배경), 현황과 문제점, 원인과 이유, 개선 방향(가치 추구), 구체적 방안, 후속지원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계획이다.

(사진=MBN뉴스 캡처)
(사진=MBN뉴스 캡처)

[에듀인뉴스] 교육부(2017)의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 계획(안)’에 따르면 한국형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운영 제도’라고 정의된다.

고교학점제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 고교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입시중심 교육을 학생성장 중심으로 바꾸고, 획일적인 교육을 유연하고 개별화된 교육으로 전환하며, 수직적으로 서열화되어 있던 학교들을 수평적으로 다양화되도록 한다.

둘째, 고교학점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제해결력, 창의성, 융합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고, 학생 수 급감에 따른 교육 여건의 변화를 미래형 교육 실현을 위한 중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의 주요 내용은 ‘선택과목 확대, 과목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수업 및 평가 개선’의 3가지다.

첫째, 학생의 적성, 진로, 수준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과목을 확대 개설한다.

둘째, 종전의 문·이과계열 또는 학급별 과목 이수 방식이 아니라 학생이 일부 또는 전체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형태로 교육과정 운영을 운영한다.

셋째, 학생 참여형 수업과 과정중심 평가 등 학생들의 학습 경험의 질을 개선하고 학생 성장을 중시하는 형태로 수업과 평가 방법을 개선(2025년 성취평가제 도입)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에듀토피아가 가까워지는 듯하다. 실제로 이웃학교 간 몇몇 과목의 공동 개설, 온라인 강좌 확대, 개별 교사의 과목 개설 확대 등으로 학교에서 선택을 넓혀보려는 힘겨운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그렇지만 이런 노력은 고교교육의 개선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를 내는 것은 도리어 해롭다. 진로별 학습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취지가 교육과정 설계, 편성, 운영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헛심을 쓰는 셈이다.

고교학점제 도입을 계기로 학교에서는 주당 1~2시간씩 한 학기로 끝나는 ‘부스러기, 조무래기, 자투리’ 과목이 늘어나고 있다. 수업시간이 적은 교사로 하여금 이를 개설하게 하고, 학생들은 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종전에는 교사들이 평균 1.5과목을 가르쳤으나, 학점제가 도입되면 선택을 늘려준다는 명목으로 교사들은 2.5과목을 가르치게 된다. 겉보기에는 모두 좋다. 학생은 선택을 더 할 수 있고, 각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여기서 ‘선택’이란 용어는 ‘교육실천적 용어’인데, 이 용어는 고교학점제에서 매우 피상적으로 쓰인다. 학생이 어떤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면 선택이고, 선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의 주체가 교육부, 교육청, 학교 등이면 학생은 꼼짝없이 따라야 하므로 필수가 된다.

학생이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선택이다. 선택할 대상은 계열, 과정, 교과, 과목, 교사, 학교 등인데, 통상 문이과를 없애는 것만이 대단한 일인 것처럼 계열은 없애고, 한 학기로 끝나는 자잘한 ‘과목’ 선택을 우선으로 한다.

잘못된 길이다. 도리어 더 많은 진로의 길을 내줘야 한다.

주당 1~2시간으로 한 학기 만에 끝내는 과목을 상상해보자. 이런 자잘한 과목이 많으면 교사는 바쁘고, 학생은 여러 과목을 이수해야 하므로 분주하기만 할 뿐 학습의 깊이를 잃게 된다.

고교학점제에서 말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제해결력, 창의성, 융합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 육성’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적은 수의 과목을 깊이 있게 꾸준히 공부해야 융합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교사가 짧은 기간에 스쳐가는 수많은 학생을 이해하기는 어려우므로 과정평가나 성장평가도 어렵다.

더구나 학생의 개인주의화, 학생인권 존중, 학생 행복 등으로 인해 학생에 대한 교사의 밀착 지도도 쉽지 않다.

물론 학교생활기록부 과목 특기란에 한두 줄 써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은 교사의 힘만 들 뿐 학생의 진로별 학습기회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학생이 진로를 개척하는데 필요한 계열이나 과정을 선택해 나간다고 한다면 진로에 도움이 되겠지만, 고교학점제에서는 이상하게도 이런 정공법은 취하지 않는다.

본래 학점제는 대학의 한 학과, 한 전공, 한 학부 등에서 일정한 집중concentration과 중핵core이 있을 때 그것이 60학점이든 80학점이든 필수와 선택으로 나누어 부과하고 이수하는 방식이다.

현재 고교학점제에 문이과도 없다는 것은 그냥 학점만 채우되, 형편이 되면 선택하여 채우라는 것에 불과하다.

고교학점제의 맹목성은 ‘학생 선택권 확대’라는 허울 좋은 명성만 남은 껍데기다.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 아니라 학점제의 명의만 도용한 것이다.

이것은 학생들이 진학해서 계속적·성공적으로 학습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수학, 과학처럼 위계가 있는 과목들은 먼저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에서 공부하기 어려운 담장쌓기식 공부이기 때문에 학기 단위로 끊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

일반고와 특목고를 포함하여 대학진학을 우선 목표로 하는 진학고에 대해서 교육부는 수평적 다양화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목고나 자사고의 일반고화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직업과 학업 선택이 자유로우려면 학교나 학과 선택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사립 특목고를 일반고화하려는 것은 사립학교법에도 어긋나지만, 일반고로 평준화시킨 후 대책이 없다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도리어 모든 학교가 특목고가 되어야 한다.

현행 단위제와 별다른 차이도 없으면서 ‘모든 고교에서 학점제만 시행되면 모든 것을 다 잘 해 줄’ 것처럼 학생과 학부모에게 눈가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부, 교육청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사실 그분들도 일반고를 개선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는 알고 있을 것이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정책 설계는 진로별 학습기회를 어떻게, 제대로 보장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과정기준 문서에서 교과목을 진로별로 재구성해주어야 한다.

가령 수학이라면 공학용, 의료보건용, 경상용, 인문사회용, 예체능용 등에 따라 그 범위, 수준, 심도, 분량을 달리해주고, 그 순서를 잡아주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학생 개인의 다양한 요구에 조금이라도 더 맞추어주려면 더 나누어 선택과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교육맥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진로에 중요한 과목은 2~3학년에서 집중 이수하도록 학점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1학년에서는 고루 공부해도, 2학년에서 문이과 진로 학생은 수학, 과학, 기술, 국어, 영어, 사회를 진로별로 하위과목을 분화한 것을 배우고, 그 중 4개 정도를 3년 내내 집중 이수하도록 계열과 과정의 길(6C4=15가지)을 보여주어야 한다.

2~3학년까지 공부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내신 평가를 엄정하게 하고, 3학년 과목을 중심으로 수능을 치르도록 한다.

어느 학교나 교육과정 문서에 나타난, 학생이 원하는 계열(문/이/예/체), 과정(문과 아래 인문, 사회, 경상, 국제 등), 교과목을 모두 다 개설해 줄 수 없다. 즉 학교는 교사 수, 교실 수, 학생 수 등 규모에 따라 교육과정 개설 여력이 다르다.

그러므로 교육청에서는 학교구를 묶어 학교간에 계열과 과정 개설을 역할분담시키고,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지역에 10개 고교가 있고, 입학생이 100개 학급이라고 하자. 진로를 조사해보니 문이과 학급 수는 92개 학급이고, 예술은 4학급(음악, 미술디자인, 연극영화영상, 문화콘텐츠가 각 1학급)이고, 체육은 4학급(개인운동, 단체운동이 각 2학급)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학생들을 여러 학교로 다 흩어버려서 문이과로 획일화한다. 왜 2개 길인가? 다중지능처럼 8개 길은 어떤가? 필자처럼 16개면 안될까? 학생들은 360도 방향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장차 2만개의 직업에 종사할 사람들 아닌가?

진로별 학습기회를 보장하려면 대다수 학교에는 문이과를 나눠주고, 예술과 체육은 학교별로 하위 과정을 하나씩 개설하면 될 것이다. 마치 직업계 고교가 모든 분야를 다 개설할 수 없어 역할 분담하듯이 진학고도 진로별로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그림=홍후조 교수)
(그림=홍후조 교수)

그림처럼 학교 규모에 따라 대규모 학교는 문이예, 문이체를 개설하고, 중규모학교는 문이, 문예, 문체, 이예, 이체를 개설하며, 소규모 학교는 문, 이, 예, 체 중 하나만 개설하게 한다.

소규모학교는 문과 중점이라도 고3에서 인문, 사회, 경상, 국제 중 일부를, 이과 중점이라도 공학, 보건의료, AI(IT), 자연 중 일부를 개설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학교를 특목고화하는 것이다. 고교는 규모에 맞게 그 인적, 물적 자원을 선택과 집중해서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1500개교 중 섬 지역, 농어산촌의 작은 학교 300개는 기숙사를 갖추고, 이웃 학교와 역할분담해서 문과 집중학교, 이과 집중학교를 개설해야 작은 학교도 대도시 대규모학교 못지않은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이보다 더 치밀한 기획을 해야 학생들의 진로별 학습권을 보장하고 확대하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다.

(그림=홍후조 교수)
(그림=홍후조 교수)

고교학점제로 이름만 바꾼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진로별 학습기회 보장이라는 고교 교육의 기본 기능에 충실한 정책 설계도 없이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 학생들은 진로별 학습기회를 얻기 어렵고,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것이다.

진로별 학습기회를 교육과정기준 문서, 교육청, 학교, 이수체계, 대학 입시 등을 통해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제쳐두고 껍데기를 들고 홍보에만 열을 올리니 진전되는 바가 없고, 시간과 재정과 행정력만 낭비하게 된다.

필자는 고교학점제의 알맹이를 학교간 역할분담을 통한 학생들의 다양한 진로별 학습기회 보장으로 채워보자고 제안한다.


◆ 글 싣는 순서

Ⅰ. 교육의 기본제도 1. 어긋남으로써 빚어진 문제들/ 2. 학제(학생수용)/ 3. 학교급 나누기/ 4. 교육과정 /5. 출생률 제고와 주택 문제/ 6.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

Ⅱ. 교원 양성과 운용 1. 전공 교육과정, 자격과 2중 전공/ 2. 교단교사 직급다층화/ 3. 교감발탁제, 교장 발탁제/ 4. 교육감 직선제, 중단위 교육행정기관

Ⅲ. 이공계 인력 양성 1. 수학, 과학, 기술공학 분야의 특징/ 2. 교원의 문이과 배분, 교대, 사대(사/과)/ 3. 첨단과학기술을 제 때에 가르치는 미래 pilot 학교/ 4. 수포자 구제문제/ 5. 국민기초학력과 충실화/ 6. 절대평가와 IB DP교사들의 시험 출제와 채점 능력

Ⅳ. 교과서 문제 1. 교과서가 필요없는 교과에서 예산 낭비/ 2. 판수를 거듭하는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3. 성교육교재와 발달 추동/ 4. 한국판 탈무드 개발 보급

Ⅴ. 진학계 고교 문제 1. 자사고와 특목고(집값 폭등)/ 2. 평준화와 비평준화/ 3. 국영수 편중과 진로별 교육과정/ 4. 교육기회 제공에서 학교간 역할분담

Ⅵ. 온라인 수업 1. 온-오프간의 분리와 협력(교육과정 조정)/ 2. 온라인 교육전용기기 개발 보급/ 3. 온라인 수업에서 효과 제고(중위층 몰락 대책, 수업시간 조정)

Ⅶ. 국민형성교육 1. 헌법을 제대로 가르치기/ 2. 한국근현대사 재인식/ 3. 국제관계와 국제정세 알기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