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보장법 제정을 위한 쟁점 분석과 제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기초학력 보장법안' 표지 캡처.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 발의한 '기초학력 보장법안' 표지 캡처.

[에듀인뉴스] 12월 8일, 국회 교육위에서 기초학력보장법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공청회가 열리는 것은 상임위원회 통과가 목전에 있다는 의미다.

학습이 불리한 학생들을 위한 학습안전망 구축을 주장해 온 터라 이 공청회 자리에서 논의된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의견을 밝힌다.


첫 번째 쟁점은 기초학력보장법이 기초학력 부장을 만들고 업무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지금까지 교육행정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학력 지원 업무는 해야 할 일은 많은 것에 비해 다양한 원인과 학습상태에 따라 효과성이 검증된 학습방법이 충분치 않아 에너지를 쏟은 만큼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나, 이 법이 없을 때도 기초학력 진단 업무나 학력 관련 업무는 늘 있어 왔고, 학생의 학습상태를 진단하고 지원하는 일은 교사의 기본적인 책무로서, 업무가 많아진다고 이 법을 반대할 명분은 매우 약하다.


두 번째 쟁점은 진단을 의무화하는 점이다.


진단을 의무화함으로써 과거 일제고사처럼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고, 학생을 줄 세우기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하나의 시험지로 진단했을 때나 줄 세우기가 가능하지, 진단 도구를 다양화하고, 실시 시기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비교는 어렵게 된다.

또 시험 점수로 학생의 가치를 매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정도를 파악해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니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부작용은 피할 수 있다.

반면, 진단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학습이 뒤쳐지는 학생을 지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조기 개입이기 때문이다.

초3 시기를 지난 이후에 부족한 기초학력을 지원하려 하면 투입되는 에너지와 비용에 비해 효과성은 떨어지고 있음을 관련 연구들이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초3 이전에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찾아서 지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학부모가 반대해도 이것은 꼭 해야 하는 일로서 기초학력보장법이 진단과 지원활동의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검증된 진단도구나, 진단 이후에 보정하는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특히, 특수교육의 대상을 너무 좁게 제한함으로써 특수교육 대상 진단 비율이 1.3%에 그치고 있어, 실제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교실 안의 부적응아 또는 학습부진아로 상당수 남아 있는 현실이 큰 문제다.

외국의 경우 학습장애를 폭넓게 규정해서 특수교육 범주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6~15%까지 특별지원 대상으로 진단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지원 대상자 진단 과정에 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법 제정 전이라도 교육 당국은 특수교육대상자 또는 특별지원 대상 학생의 진단 범위를 확대하고 더 나은 진단도구와 검증된 보정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보급하는 일에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서 학교가 효과적으로 기초학력 지원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

법이 없어도 해야 할 일이나, 법이 제정되면 안 하면 안 될 것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세 번째 쟁점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지, 굳이 기초학력보장법을 만드는 가’이다.


초중등교육법 28조에 이미 학습지원에 대한 근거 조항은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학습지원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기관의 의무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 국가 단위에서 기초학력 지원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확대하게 하려면 논의되는 기초학력보장법 정도의 법률은 있어야 한다.

논의되는 법안은 초중등교육법에 없는 학습지원 교육 실시 의무,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한 학습지원 교육, 보건교사·상담교사 등이 학습지원 교육에 투입될 수 있는 근거, 보조인력 추가 배치 근거 등 그 동안 취약했던 법적 근거 등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현재 학부모의 동의 없이 학생에 대한 보충교육을 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에 법 내용이 불충분한 점이다.

과거 학생 인권과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나머지 공부를 시키던 것에 대한 반발, 보호자의 양육권과 충돌할 때에 양육권을 먼저 존중했던 전통 등으로 인해 법안에 넣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 다툴 여지를 주는 법안이다.

기초학력보장법안 8조 2항의 '학교의 장은 학습지원대상학생의 학력수준과 기초학력 미달 원인 등을 고려하여 학습지원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에 근거해서 학교가 적절한 절차를 마련해서 학습지원을 실시했을 때, 부모가 반발해도 학교의 교육활동이 법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뒷받침할 수 있다.

지금은 이것마저도 없는 현실이다. 부모가 반대하는데 굳이 학교가 애써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으나, 학생의 학교생활 전체를 생각했을 때 학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학생들을 찾아내서 지원해야 한다.


네 번째 쟁점은 기초학력의 정의다.


참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쳐 보면 이 학생은 기초학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감이 온다.

이것을 법적 용어로 설명하려니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기준' 정도로 표현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진행한 기초학력 재개념화 연구에서는 '읽기 문해력', '쓰기 문해력', '수리 문해력', '사회정서적 역량'으로 정의했고, 서울교육청은 3R+관계성으로 정의한다.

합의된 개념을 정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법적 용어가 보다 엄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교육계에서도 합의가 안된 개념임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정의 정도가 최선일 수도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보장해 주지 못한 책임을 묻는 이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교육적 무지 자체라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학생이 학교에 들어왔으면 읽고 쓰고 기본적으로 셈할 수 있는 정도의 학력은 갖춰주도록 학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의 기본적인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다섯 번째 쟁점은 사실 좋은교사운동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는 ‘학습지원 담당교원 배치’ 용어를 ‘학습지원 전담교원 배치’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습지원 담당교원'을 배치하겠다고 명문화되어 있는데, 이것이 학교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교사 중 어느 한 명에게 기초학력 업무를 주는 방식으로 될 것이다.

누가 이 일을 하느냐에 따라 정책효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고, 특히 학교 안의 교사들이 학생의 학습을 지원하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하려면 그 누구보다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업무담당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학습지원전문교원'이라는 명칭을 법적으로 새로 만들고, 경험 있고 역량 있는 교원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연수를 시켜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실 학습지원에 있어서는 모든 교사가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교사업무의 본질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습지원 전문교원을 배치하면 이 교사에게 학습지원 전체를 다 몰아주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 학습지원은 모든 교사의 책무가 맞다. 그런데, 이 분야를 좀 더 들여다보면 학습이 뒤쳐진 학생들의 원인과 학생이 가진 어려운 상황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학생이 가진 어려움에 따라 적합한 지원 방법을 결정하려면 보통 교사들이 가진 것보다 전문적인 정보와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학생들을 오래 지도한 경험을 가진 교사들에게 관련 분야의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쌓게 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제도가 없다보니 학습지원 정책의 대부분은 예산을 투입해서 보조교사를 투입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고, 실패한 학습방법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기초학력보장법 제정 동의, 가정과 지역사회 협력 필수


기초학력보장법 제정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학교는, 그리고 교사들은 이 법에 근거해서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적극적으로 찾고 지원하려 노력해야 한다.

물론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가정과의 협력, 지역사회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이것이 없다고 우리는 하기 어렵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영재교육진흥법에 근거해서 영재학교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각종 영재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 반면, 학습지원에 대해서는 예산 규모나 국민적 관심이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영재교육 진흥의 관점에서 보다보니 학습지원을 받는 것이 뭔가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 같고, 학습부진아 낙인의 역사 속에서 자기 자녀가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풍조가 생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초학력보장법 제정을 통해 학교와 교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하고, 내 자녀가 학교에서 학습지원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환영하고 요구하는 흐름들이 만들어져야 이 학생들이 학교에 올 의미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최근 몇몇 정치인들이 과거와 같이 일제고사 형태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10여 년 전 시행해서 이미 실패한 정책이고, 미국의 NCLB정책을 통해서도 낮은 효과, 큰 부작용 등이 드러났지만 이와 같은 요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 미칠 해악을 생각할 때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러나 기초학력에 대해 책임지고 지원하는 정책으로서 기초학력보장법을 제정하고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노력은 하고 있어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국단위로 실시해서 결과를 공개하자는 무도한 주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