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에세이] 그림책의 주인공이 된 나를 '상상해 봐!'
[그림책 에세이] 그림책의 주인공이 된 나를 '상상해 봐!'
  • 조시온 서울 탑산초 교사
  • 승인 2020.12.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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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로 접속 '상상해 봐'..."예술작품에서 얻은 영감이 수업이 되고 삶이 된다"

[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조시온 서울 탑산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앵거게임 저자
조시온 서울 탑산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앵거게임 저자

“선생님! 오늘 미술 시간에 뭐 할 거예요?”

교실에 들어온 수진이가 칠판에 적혀진 시간표를 보고는 아침부터 대뜸 물었다. 그리기와 만들기 등 표현활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미술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이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술 교과서 60쪽! 오늘은 미술 작품을 감상할 거예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시간이나 작품 감상을 한다고요?” 하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그림에 대한 해설을 수동적으로 듣는 설명식 수업을 예상했으리라.

하지만 그림책 『상상해 봐!』 표지를 보여주자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드를 든 소년에게 집중했다.

그림책 '상상해 봐!' 표지.(라올 콜론 글, 보물창고)
그림책 '상상해 봐!' 표지.(라올 콜론 글, 보물창고)

이 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마법과 같은 하루를 담고 있다.

보드를 탄 소년이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 미술관 앞에 멈춰 선다. 매번 그 앞을 지나쳤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일이 펼쳐질 것만 같다.

미술관 안으로 성큼 들어가 마티스의 <이카루스>, 피카소의 <세 악사> 그리고 루소의 <잠자는 집시>를 마주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튀어나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소년을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나와 어깨를 들썩거리며 소년과 함께 춤을 춘다.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들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지 않는다.

소년은 그들과 함께 미술관 밖을 빠져나와 뉴욕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한바탕 신나게 논 뒤에 미술관으로 돌아오는데. 그들은 도로 벽 위의 그림으로 들어가 버린다.

소년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들과 나눈 추억이 가득하기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상상의 세계로 접속할 수 있는 주소를 벽 위에 남겨두는 것만 같다.

다시 혼자가 된 소년은 거리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미술관에서 만났던 그림 속 인물들이 벽화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하고, 거기에 소년의 감성과 상상을 가미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그림이 또 다른 그림을 몰고 나온다는 것. 이 장면은 이상하게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나에게도 소년처럼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문득 작년 여름, 대림미술관에서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이라는 전시회 티켓이 생겨 친구와 미술관 나들이를 갔던 때였다.

그 당시, 그림책 <앵거게임>에 이어 차기작을 구상하면서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기대 없이 갔던 전시회였는데,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뛰어난 상상력에 흠뻑 빠져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독특한 모양의 꽃병과 대형 체스말을 보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랐다. 거기서 봤던 비정형의 아름다운 형상들이 내가 구상하고 있는 그림책의 배경이 되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사로잡기 위해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미술관은 예고 없이 상상의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그때 쓴 글이 그림작가의 손을 거쳐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상상해 봐!> 그림책에서 펼쳐진 마법 같은 기적이 내게도 일어난 것이다.

그림책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학생들에게 “우리도 책 속의 주인공처럼 그림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교과서에 있는 작품 중에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교실 텔레비전 화면에 크게 띄웠다. 한 인물이 강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장면은 무섭고 혼란스러운 감정과 함께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본 후 비슷한 기분을 느낀 나만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자 봇물 터지듯 학생들의 경험이 흘러나왔고 거기에 새로운 상상이 더해졌다. 그렇게 그 작품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진입로가 되었다.

학생들은 그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그림을 그렸고 덧붙여 이야기도 만들었다.

4학년 학생의 ‘교실 속 창작 그림책’ 한 장면.(이지미=조시온 교사)
4학년 학생의 ‘교실 속 창작 그림책’ 한 장면.(이미지=조시온 교사)

태진이는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그만 핸드폰을 강에 떨어트려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상상해냈다.

다정이는 미용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폭탄 머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을 구상했다.

승태는 흔들 다리를 건너려다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며 공포에 휩싸였지만, 친구의 재치 있는 대화 덕분에 그 다리를 무사히 건넜다는 이야기를 지었다.


학생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학생들의 <절규> 패러디 그림들을 모아 이야기를 더해, 옴니버스식 구성의 ‘교실 속 창작 그림책’이 탄생하였다.

예술 작품에서 받은 영감은 또 하나의 창작으로 흘러간다. 작품에 녹아 있는 섬세한 감성과 함축된 이야기가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전해져 변신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다.

더는 교과서의 박제된 그림이 아니라, <상상해 봐!> 소년처럼 예술이 삶 속에도 침투하여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빚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으로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조시온 서울 탑산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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