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YTN 캡처)

[에듀인뉴스] 교과서 한자병기 논란은 교육과정이 개편될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쳐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찬반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대립하였는데 특히 공청회장 앞에서 아수라장이 되었던 현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만드는 걸까? 두 진영의 힘의 논리에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보고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어린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 이후 학기초가 되면 이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토의수업을 진행한다. 찬반 양측의 관련 영상과 근거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물어보면 80% 이상 학생들은 "그래도 한자·한문학습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본인이 스스로 학습하는데 어휘 부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금일(今日)/금요일, 무뇌한/문외한을 헷갈려하거나 어차피를 어짜피로 소리나는 대로 쓰는 경우가 흔하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글을 작성하거나 발표를 할 때 학생들의 어휘 수준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글을 읽는 학생이 '병기'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병기가 뭐지??" 이럴 때 나란하다 병(竝), 기록다하 기(記)라는 한자를 언급해주며 ‘함께 나란히 적다’라고 설명을 잠깐 이라도 해준다면, 그 학생은 병기라는 단어를 더 정확히 오래 기억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한자를 배운 학생들은 어려운 어휘나 수업시간에 처음 접하는 개념어를 한자로 추측해서 조금 더 쉽고 정확하게 받아들인다. 이처럼 학습의 필요성은 학생, 학부모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다만 학습 부담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중‧고등학교에는 ‘한문’ 과목이 있지만 점점 선택과목으로 내몰리면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문을 배울 기회 조차 박탈당하는 것이 현재 교육과정이다. 선택과목이 선택사항에 아예 없거나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조차 하지 못한다. 

초중고 12년동안 한자·한문을 제대로 한 학기도 배우지 못한채 국가교육과정을 마치기도 한다. 어렵다, 입시와 관련이 적다는 선입견으로 스스로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조금이라도 한문을 배운 학생들은 한문을 선택한다.

한문을 선택한, 한문반 학생들의 평균성적이 높다는 것이 학교 현장에서의 공공연한 현실이다. 

실제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습용어라는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모 중학교 선생님께서 1학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서를 분석하여 학습용어를 추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학생들의 호응도가 좋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이런 수업을 진작에 했다면 도움이 많이 되었을 텐데 아쉬워하고 앞으로 더 많이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수업을 주제로 한 전국 한문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사례연수에는 전국의 200명 넘는 한문교사가 신청을 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학생들이 필요로 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국어, 학생들의 어휘력은 한자를 빼놓고는 반쪽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참고서에도 일부 한자병기를 통해 학습용어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런 식의 학습서들이 시중에 많다. 한자 학습이 오히려 공교육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이 발생하는 것이다. 

학습 부담이 문제라면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되 그 방식, 그 범위, 평가반영 여부 등을 세세하게 정하면 된다. 그동안의 한자·한문 학습이 암기와 쓰기 등 학생들을 지루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왔기 때문에 선입견이 크다. 

지금의 한자·한문 교육은 그렇지 않다. 2015년에도 그 부분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진척이 있었지만 막판 진통 끝에 교육부에서 백지화시키기로 아쉬운 결정을 내렸다. 

(사진=kbs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모든 어휘를 한자와 병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자를 병기하면 개념이해가 더욱 쉬운 용어, 한자를 통해 의미를 분명히 하고 맞춤법을 헷갈리지 않게 쓸 수 있는 용어 등 범위를 정하고 각주 등을 이용하여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평가에 반영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언급해주는 정도 등 학습부담이 문제라면 그 방법과 형식은 추후 논의하면 된다. 한자를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한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어휘력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국어를 더욱 잘 쓰기 위함인데 반대여론은 이 법안을 왜 반대만 하려는 것일까? 한자를 병기하고 한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우리나라 한글과 국어를 망치게 될까? 오히려 국어를 더욱 아름답게, 풍요롭게, 국어답게 쓰기 위함이다. 

얼마 전 퇴임하신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이명학 교수님께서 최근 출간한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에 나오는 문구를 대신하여 이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말의 세계를 좀 더 정확하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려운 한자어를 쓰며 남들 앞에서 유식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말을 바르게 읽고, 쓰고, 말하기 위해서다. ‘한글’과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언어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김연수 광주 성덕고 한문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