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을 소재로 한 만화의 캐릭터.(사진=유튜브 캡처)

[에듀인뉴스] 아주 오래 전에, 처음 듣고서 배를 쥐고 뒹굴었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워낙 첫인상(?)이 재미있게 다가왔던 터라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내용인즉슨 A형의 성격은 소시지요, B형은 오이지, O형은 단무지라 했다. 소시지는 소심, 세심, G랄의 준말이고, 오이지는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G랄 맞다는 뜻이었으며, 단무지는 단순과 무식과 G랄의 합체라 했다. 여기서 당연히 나오는 질문은 “그럼 AB형은?”이란 것이다. 대답은 이랬다. “GGG.”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게 있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90% 정도는 인터넷의 세계에 도는 소위 ‘점’이라는 것과 그와 비슷하거나 혹은 관련된 사이트를 접해보았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전문가들(?)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많은 경우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궁금증 때문에 찾는 것일 테다. 

신빙성을 믿든 혹은 믿지 않던. 그 못지않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성격이다. SNS나 인터넷 게임을 하다보면 중간 중간 많이 눈에 띄는 게 성격테스트라는 것이다. 제목이 마침 궁금증을 유발하면 자연스럽게 클릭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인데, 남의 성격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성격이 왜 궁금할까? 

내가 수긍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맞아, 그래. 역시 그런 거였어.’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전혀 아니거나 원하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면 ‘뭐 이런 건 그냥 심심풀이 용이지.’하고 부담 없이 창을 닫아버린다. 

그 심심풀이 작은 테스트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데이터에 기반한 건지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상기한 혈액형에 관한 농담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려우니, 무언가 그 막연함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 

20세기 초까지 외과 수술 중에 최후의 선택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을 경우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환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것은 당시만 해도 순전히 ‘운’이었다. 

그러나 그 ‘운’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또한 과학자의 사명이 아니던가. 의문과 의문과의 싸움,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년~1943년)는 항원항체 응고반응 원리에 입각한 AB0 혈액형 시스템을 규명했고 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혈액형은 정말 성격과 관련이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No! 

세계 인구가 80억이라 치면 그들이 4개의 혈액형 중 하나를 가지고 있을 테니 각 혈액형 당 대략 25%씩이라고 치자. 물론 A형과 0형 비중이 더 크다는 통계는 있지만 일반화를 시켜보자는 이야기다. 80억의 25%면 20억인데, 이 20억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성격일 것인가? 이렇게 간단한 산수로도 가능한 No라는 결론을 무시한 채 혈액형과 성격을 함께 논하는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불명의 성격테스트보다도 신빙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속에 생명과 연관되어 중요시 되던 피라고 하는 물질이 성격과도 큰 관련이 있을 거란 옛사람의 추측은 그다지 틀린 접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접근의 방식은 단연 혈액형은 아니다. 피의 성분이다. 

피를 구성하는 여러 성분, 그 중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일 터인데, 피 속에 헤모글로빈이 모자란 사람은 빈혈을 앓게 된다. 빈혈이 사람 성격이나 생활패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결론이 혈액형과의 상관관계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훨씬 과학적이 아닐까 싶다. 

혈액형을 이용한 우생학 이론이나 성격 연관 주장에 집착하기 보다는 소시지 단무지 오이지와 GGG의 결론에 주목해 보는 것이 더 의미심장하다. 

성격의 다른 점이 상당히 단순화되고 도식화되어 있는데 반해, 공통점에 주목해본다면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혈액형이든 결론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다 G랄 맞다는 이야긴데, 생각해보면 맞는 말 아닌가. 누구든 다 괴팍한 성질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같다. 이런 걸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흑묘든 백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고양이는 그저 쥐 잘 잡는 것이 훌륭한 고양이 아니던가. A형이든 B형이든 AB형이든 혹은 0형이든 혈액형이 ‘뭣이 중헌가’ 말이다. 

그저 빨간 피는 철분을 듬뿍 머금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산소를 잘 실어 나르면 되는 것이다. 

헌혈에 받아주지 않는 피는 특정 혈액형의 피가 아니라 빈혈환자의 피다. 쓸데없는 TMI를 하나 늘어놓자면,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나는 빈혈 진단을 받고 보조제를 처방받았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독일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 석사를 거쳐 같은 대학 생화학 연구실에서 특정 단백질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충북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고 충북대와 방통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복지관에서 세계문화와 역사교실 강좌를 담당하며 어린 시절 꿈이었던 고고학자에 한 걸음 다가갔다. 또 계간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며 인문학에서 과학으로, 다시 인문학으로 넘나들면서 크로스오버적 시각에서 바이오필로피아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