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불평등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2019년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부자 26명이 세계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38억명과 동일한 자산을 가지고 있고, 전 세계 인구 중 34억명이 절대 빈곤선인 하루 5.5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화되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인종, 성별, 나이, 지역, 학력, 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가장 심각한 불평등 문제 중 하나가 교육 불평등이다. 과거 한국은 산업화 시절의 한때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교육은 부모의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되었고,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사교육의 굴레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현재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1위가 되었다. 단적인 예로 2019년 사교육비는 21억 5,000억 원이나 되었다. 공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처럼 교육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지니 정부는 정시 확대, 특목고⋅자사고 폐지 등 여러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표면적 현상을 바꾸는 정도의 변화로는 아이들의 생기(生氣)를 잃게 하는 교육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의 정책들은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와 같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압도적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앞으로, 뒤로 달리면서 이를 막아보겠다고 어설픈 모양새를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정책은 무엇인가? 일단 기차를 멈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말인가?

먼저 교육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왜 우리가 그런 불평등을 감수하고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나아가 실천적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토론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를 옥죄고 있는 잘못된 믿음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눈앞에 있는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불가능한 시대라 할지라도 실낯같은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21 수능시험 전 대기하는 학생들.(사진=대전시교육청)  
2021 수능시험 전 대기하는 학생들.(사진=대전시교육청)

지난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었다. 예전에 비해 코로나19로 인해 몇 주 늦게 실시된 것이다. 매번 수능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12년 동안 준비’, ‘12년 공부의 결실’이란 말을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모두 입에 달고 있다.

공교육 12년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버린 수능, 이것이 과연 배움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시험을 위해 달려가는 교육은 이대로 괜찮은가?

최근에 정부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고 정시의 비중을 확대’한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물론 특혜를 줄이고 공정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 대책을 통해 우리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청소년에게 평등하고 정의로운 교육이 실현될까? 답은 ‘어렵다’ 이다. 여기엔 성적 상위 10%에 속하는 아이들만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90%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소수의 학생을 위한 혜택을 지양해야 한다. 대신 학교에서부터 패자부활전을 일으켜야 한다. 공부에 유리한 집안의 환경이 갖추어진 학생 중심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넘어지고 지쳐 나가떨어진 낙오자에게도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패배에 익숙한 낙오 학생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고 기회를 주어 자신에게 기대를 걸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바로 패자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고 제도적으로 얼마든지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로써 교육이 그들에게도 희망을 열어주고 언제라도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교육은 입시와 개인의 사교육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교육은 공공의 영역으로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교육을 야금야금 점령한 사교육 시장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를 위해 당사자인 학생들이 나서서 큰 목소리를 내어 불평등한 교육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무심결에 사회적 불평등에 굴복해 온 그들에게 변화가 없다면 집단적 빈곤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체념과 굴복, 자발적인 협력에서 이를 강력하게 시정하기 위한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 선거권이 18세로 하향된 지금이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또 학교는 소수가 정보와 기회를 독차지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것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른 경쟁자를 꺾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가 돕는 협력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일부 학교가 폐지되고 대학의 서열이 사라진다면 이것이 해결될까?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아래에서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아니다. 없을 것이다. 사회의 분열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불평등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학생은 과감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아가 적극적인 대안과 새로운 비전,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는 이를 경청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혼자가 아닌 함께 살기 좋은 사회를 꿈꾸는 것이고 교육은 그런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금 우리는 학교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여기엔 오늘의 학교 교육 현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단지 성적을 잘 받는 학생 이전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윤리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공존을 위한 사랑을 갖춘 민주시민 육성이 우선해야 한다. 

또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혁신 교육의 길을 가야 한다, 교육 불평등의 해소는 이렇게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하는, 비록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현시대와 다가오는 미래에 보다 적합한 교육을 설계하는 과정 속에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 불평등의 굴레를 벗는 하나의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