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미주 서울 홍릉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김미주 서울 홍릉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교 시간이었다. 그날 본 단원평가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학생이 소리쳤다.

“선생님 미연이가 시험지 구겨서 버렸어요!”

당황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실수도 실력이래요. 저는 매번 실수만 하고, 잘하는 것도 하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미연이에게 조금의 위로라도 되길 바라며 나는 말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사람이 어떻게 다 완벽해. 선생님도 깜빡하고 가정통신문 나눠주지 않은 적 있잖아. 그리고 선생님도 수학 익힘책 풀 때 실수로 잘못 풀 때도 있어.”

그렇게 미연이를 달랬지만, 교실 밖으로 나가는 미연이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계속 자신을 자책하는 미연이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림책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표지.(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글/그림, 현북스, 2014)
그림책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표지.(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글/그림, 현북스, 2014)

다음날 나는 학생들 앞에 그림책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를 꺼내들었다.

이 그림책에는 어딘가 하나씩 부족한 다섯 친구가 등장한다.

배에 큼직한 구멍이 있어서 뭐든 새어나가는 구멍 친구, 꾸깃꾸깃한 주름에 생각이 꼭꼭 숨어버리는 주름 친구, 힘이 없어 늘 피곤한 물렁 친구, 생각이 자꾸 뒤집어지는 거꾸로 친구, 생각대로 되는 일 없이 엉망진창인 친구.

다섯 친구는 누가 더 못났을까 입씨름까지 하며 즐거워한다.

이 친구들에게 낯선 이가 찾아오는데, 부족한 다섯 친구와는 다르게 잘생긴 얼굴에 구멍이나 주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친구였다.

완벽한 친구는 부족한 다섯 친구에게 여기서 뭘 하고 있냐고 묻는다. 다섯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완벽한 친구는 이런 다섯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맙소사!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가 있어! 무엇이든 할 일을 생각해 내야지!”

“그렇다면 너희들은 아무 쓸모가 없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완벽한 친구에게 타박을 당한 부족한 친구들은 이제 한 명 한 명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아. 화가 나려다가도 구멍으로 빠져나가거든.”

까맣고 뾰족뾰족한 선인장으로 표현된 화가 구멍 친구의 몸을 통과해 빠져나간다.

“아, 맞아! 난 모든 걸 망쳐 버리지. 하지만 어쩌다 뭔가 해내면 정말 정말 기뻐!”

엉망진창 친구가 그린 수십 개의 자화상이 바닥에 깔려있고, 엉망진창 친구는 그중 마음에 드는 자화상을 하나 손에 잡고 해맑게 웃고 있다.

그림책을 덮고 나니 부족한 친구들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졌다. 구멍 친구처럼 구멍으로 쓸데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따라다니는 잡념들이 빠져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보게 된다.

엉망진창 친구처럼 실패의 경험에도 주눅 들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끈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의 부족한 친구들처럼 내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기보단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

아직 자신의 빛나는 부분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칭찬 샤워’ 활동을 준비했다. 칭찬 샤워는 칭찬을 받을 한 학생을 정하면, 나머지 친구들이 그 친구의 장점을 찾아 실컷 칭찬해 주는 것이다.

칭찬 샤워를 통해 미연이가 긍정의 옷을 한 겹 한 겹 덧대어 입어 빵빵한 패딩을 입은 듯 자존감이 채워지길 바랐다.

(사진=김미주 교사)
(사진=김미주 교사)

활동이 끝나고 미연이는 말했다.

“제 장점이 이렇게 많아서 놀랐어요. 또 100점을 못 받는 제가 맘에 안 드는데,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친구들이 알아줘서 좋았어요.”

누구나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완벽한 친구처럼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부족한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일은 나를 아끼는 일이 아니다.

젠가 게임에서 아래쪽 블록을 제거하면 금방 무너져버린다. 젠가든 사람이든 똑같다. 무너지지 않고 튼튼하게 버티기 위해서는 아래부터 단단하게 쌓아올려야 한다.

땅을 딛고 튼튼하게 버티는 힘은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 위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성취부터 시작해서 성공의 경험들을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부족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튼튼한 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