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 30년을 보며...국제사회우려 직면한 '여당', 협치국회 망친 '여당'

정국진 시사평론가·前 국회 비서관
정국진 시사평론가·前 국회 비서관

[에듀인뉴스] 마스크 같은 규율을 꺼리는 탓에 유난히 코로나 희생자가 많은 서구권에서 방역 모범국을 꼽으라면 역시 독일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사회 구성원의 자율이 잘 작동하며, 탄탄한 보건 의료복지가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한 결과다.

역대 최장수(16년) 총리를 예약한 메르켈의 독일은 이미 유럽연합에서도 독보적인 지도적 위치를 확보함은 물론, 미·중의 글로벌 리더십이 예전만 하지 않은 가운데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지난 세기 세계 역사 최악의 전범(戰犯) 국가가 금세기 세계 최고의 모범(模範) 국가로 탈바꿈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 독일이 올해로 통일 30주년을 맞았다. 우리에게는 개천절인 매년 10월 3일은 독일의 통일 기념일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동·서 베를린의 사이에 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난 서독 총리는 동독 총리와 악수하며 정식으로 통일을 선언했다.

독일 통일은 공산권 붕괴에 따른 냉전의 급격한 해체가 가져다준 행운 같은 선물, ‘세렌디피티(serendipity)’이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서독이 동서 통합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이기도 했다.

이는 한민족이 일본의 2차 대전 패전에 따른 선물로 해방을 맞이했지만, 독립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었음과 같다.

카이로회담에서 한반도의 광복이 약속된 데에는 중국 장제스의 역할이 컸는데, 그는 윤봉길의 의거를 보며 한민족의 독립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도시락 폭탄으로 상징되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 없이 광복이라는 선물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서독으로 돌아와 마키아벨리의 용어를 빌리면, ‘행운(포르투나·fortuna)’을 붙잡을 수 있었던 서독의 ‘노력(비르투·virtu)’은 한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동독에 대한 접근 정책이었던 ‘동방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사민당의 브란트 총리에서 시작해서 ‘통일 총리’ 기민당의 콜 수상까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이어진 정책이었다.

동방정책은 흔히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햇볕정책에 비견되곤 한다. 교류·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민족의 번영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국가 전략이다.

다만 이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지금의 집권당이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측면이 있는데, 서독의 동방정책이나 햇볕정책이나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을 확고히 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사진=YTN 캡처)
(사진=YTN 캡처)

이를 간과한 가운데 범여권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면서까지 통과시킨 법이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이라는 외피를 썼지만 그 개정된 내용의 핵심은 ‘대북전단금지’에 있는,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다.

김정은의 동생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6월 한국 당국을 압박했다. “(대북전단 관련) 응분의 조처를 따라 세우지 못한다면… 하여튼 단단히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라는 숫제 협박조인 담화였다.

2018년의 놀라웠던 대북 성과가 그 이후 지지부진한 것을 타개하고자 집권 당정청은 무비판적인 태도로 반년 만에 불도저식으로 입법을 완료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것도 2018년, 즉 남북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에 말이다. 그게 2년 만에 뒤바뀌었다.

전직 유엔 북한 인권위원장, 영국 상하원 공동위원회, 미국 국무부 부장관,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 특사,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한반도를 잘 아는 의원들에 이르기까지 이 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 속에서도 무리하게 입법할 이유는 오로지 하나, ‘김여정 하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던 요인 중 하나는 서독 정보가 동독에 꽤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데 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동독 사람들은 서독 TV를 즐길 수 있었다. 외부 정세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었다면 동독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통일을 위한 가두 시위에 나서고 베를린 장벽을 깨 부수며 한꺼번에 서독으로 탈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북한은 중국을 통해 ‘사랑의 불시착’ 같은 최신 한국 드라마 등이 유포되고 있다. 2018년 가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연설을 보면서 한국을 동경하게 된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북한의 한류’가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찌나 컸던지 독재 권력 김정은 일가는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지난 4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순전히 남북 접경 지역에서 이뤄지는 대북전단만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허나 급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모호하게 규정됐다. 이에 따라 자칫 한국 드라마를 북중 국경에서 북한 주민에게 전달하는 것조차도 처벌받을지 모르는 위험성이 생겼다.

물론 법의 원 취지대로 남북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통에 대북 전단으로 인해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 우리 국민들을 보호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북전단금지법이 아니라도 단순 행정명령이나 항공안전법 같은 대체 입법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북한 주민에게 외부 정보를 전달하려는 북중 국경에서의 필사적인 노력까지 위축시킬 것까진 없었다.

급한 입법 과정에서 국제 사회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도 샀다. 사전에 충분히 양해를 얻은 뒤에 국제 사회의 지지 속에서 입법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나아가, 서독이 당을 뛰어넘어 광범위한 동방정책 지지로 통일에 이르렀던 것을 생각하면, 대북 유화파인 여당이 대북 강경파인 야당을 설득해나가면서 국론 분열 없이 대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받는 가운데 이 법을 통과시켰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아쉬움이 꼬리를 문다.

통일부는 입법이 이뤄진 후에야 부랴부랴 국내외의 우려를 수습하려 든다. 너무 아마추어스럽다.

한반도 문제를 푸는 핵심은 대북 경제제재 조치 완화·해제를 지렛대로 한 북한의 비핵화에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체(政體)인 자유 민주주의를 북한의 협박 속에 일정부분 포기하면서까지 남북 관계의 개선을 노린다면 우리 국민 상당수는 물론이요 국제적으로도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더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위에 북한 노동당의, 고작 부부장에 불과한 자가 있다는 인상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구긴다.

다행히 아직 실수를 고칠 기회가 남아 있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이 법이 충분한 논의 속 국내외의 이해를 구하면서 재의결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하면서도, 그 평화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는 가운데 이뤄지기를 바라는 전세계의 자유 시민들이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독일 통일을 이루는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회자되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옮겨 온다.


“모든 자유민(All free men)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건 간에 그 사람은 베를린 시민입니다. 고로, 자유민으로서 저는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 am a Berliner.)라는 이 말을 자랑스레 여길 겁니다!”


나는 서울시민과 평양시민 모두가 자유민이기를(All free men)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