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중국, 가까운 듯하면서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G2로 미국과 견주고 있는 중국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을 비웃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리상으로 가까워 문화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중국. <에듀인뉴스>는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를 통해 중국의 도시에 살아가면서 느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중국을 접하고 알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인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예측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알다가도 모를 중국!

평양 고려 식당 전경.(사진=김현진 교사)
평양 고려 식당 전경.(사진=김현진 교사)

가까운 듯 먼 듯 조심스런 북한식당


중국에 오면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북한식당에 가서 식사 해보는 것이다.

내가 지내는 다롄에서는 류경 식당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몇 번 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촬영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히 조심해서 인지 특이점을 보지는 못했다.

북한 사투리의 젊은 여자 종업원들이 음식 주문을 받고 북한의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다만 신기했다.

선양의 서탑가에 갔을 때는 북한 식당에 가보진 못하였는데 그 유명한 대동강 맥주를 이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특히 단동철교 인근의 여러 북한 식당을 찾아보고 꼭 가볼 생각을 하였다.

유람선 선착장 앞쪽으로 보면 북한 식당들이 많이 있다. 옥류관, 평양식당, 고려식당 등의 이름을 가진 식당들인데 조금씩은 차이점이 있는 듯하다. 여행 책자에 있는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평양고려식당이라는 멋드러진 간판을 단 식당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이곳에도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가 보다. 문을 닫은 상점들을 꽤 보았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은 북한 종업원들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안내해준다. 식당 내를 둘러보니 코로나로 인해 한국인 관광객들은 볼 수가 없었고 대부분이 조선족 또는 중국 손님들인 것 같다.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대동강 맥주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꽤 오랫동안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블로그를 보니 고려거리나 인근 슈퍼마켓에서 대동강 맥주를 사간 사람도 있다고 하니 돌아가기 전에 둘러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칭따오 또는 삿포르 맥주를 주문하고 메뉴판을 둘러보았다. 평양냉면, 회냉면, 냉 밀면 등 몇 가지 종류의 면을 시켜보고 만두, 꿔바로우(탕수육) 그리고 북한 백김치를 시켜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찬도 메뉴의 한 종류로 주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냉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냉면과는 다르게 조금은 싱거운 맛이다. 노래방 기계 쪽의 화면에서는 북한 영화를 상영해주고 있는데 전투 장면이 꾸준히 나와서 조금은 특이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도 꾸준히 북한 여자 종업원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정말 얌전히 밥을 먹다가 나온 듯 하다. 뻔한 이야기지만 통일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생각하게 된다.

호산 장성.(사진=김현진 교사)
호산 장성.(사진=김현진 교사)

우리의 흔적 박작장성(호산장성)


아침에 밥을 못 먹고 서둘러 나온 관계로 배가 고팠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중국의 다른 곳을 둘러보는 터라 긴장도 되었지만 점심식사를 하며 맥주 한잔까지 하다 보니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다.

오늘 내로 다롄으로 돌아가야 하는 터라 서둘러 디디추싱을 불러 박작장성(호산장성)으로 향하였다. 디디 기사님이 호산장성에 가게 되면 자기한테 입장을 위한 표까지 구입하라고 하신다.

호산 장성.(사진=김현진 교사)
호산 장성.(사진=김현진 교사)

호산장성은 고구려가 세운 천리장성의 요새 박작성으로 추정된다. 분명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하이관(산해관)인데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최근에 성을 다시 쌓고 만리장성의 연장된 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료를 모아 꾸며놓은 박물관을 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과 국가측량국에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종전(6300㎞)보다 더 길어진 8851.8㎞라고 발표했었다. 얼핏 '장성이 더 길어졌구나' 정도로 넘길 수 있는 발표지만 여기엔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띠디를 타고 가다보니 밥을 먹은 후 차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인지 나른하다. 사방으로 펼쳐진 논밭과 가끔씩 보이는 시골집을 보니 한국의 시골 국도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길거리 안내판의 글자만 한자일 뿐이지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20~30분쯤 가다 도착해 내려 보니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에서는 장성에 올라가는 입구까지 셔틀버스 티켓까지 구입할 수 있다.

사진을 찍고 가을 날씨와 함께 장성에 올라본다. 중국 땅에 있어 중국의 역사논리에 맞춰 중국의 산성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우리 민족 고구려의 장성으로서 이곳에서 나라를 지켰을 우리의 젊은이들을 생각해 본다.

높은 산은 아닌데 제법 숨이 차다. 제일 꼭대기 지점에서는 장성 안에 매점이 있어 간단한 음료 등을 사먹을 수도 있다.

호산장성에서 바라본 북한 땅(사진=김현진 교사)
호산장성에서 바라본 북한 땅(사진=김현진 교사)

건너편으로 압록강과 북한 땅이 보인다. 호산장성 일대는 압록강 앞쪽으로 노들섬 같은 것들이 여러 개 있는데 북한 땅이 바로 한 발 건너뛰어도 될 정도로 가깝다고 해서 일보과(一步跨)라고 하는 곳이 위치하고 있다.

조금 아까 보고 왔던 단동 유람선에서의 북한 보다 이곳은 더 가까운 느낌이다. 시골 마을에 논과 논 사이의 모습 같은, 너무 한적한 시골 풍경 같아 보여 현재 현실과는 다른 평화를 생각해본다.

항미원고기념관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항미원고기념관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항미원조기념관(抗美援朝紀念館)


박작산성을 둘러 본 후 시간을 보니 다롄으로 돌아갈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잠깐 이라도 한군데를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 급하게 띠디추싱을 불렀는데 외곽이라 그런지 차가 잡히지가 않는다. 그때 때마침 택시가 와서 급하게 항미원조 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10여년 전에 비해서 중국의 대도시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고급스럽고 깨끗해졌고 질서의식이 높은 반면, 외곽 시골 같은 곳은 의식수준이 10여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택시의 곡예운전에 멀미가 날 정도이다. 차까지 막히는데 추월, 역주행, 신호위반 등... 30~40분이 걸려서야 항미원조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데 내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높은 계단을 정신없이 올라갔더니 이곳은 뒷문이고 앞문은 반대쪽에 있다는 것이다. 택시기사님이 급하게 가까운 곳에 그냥 내려 주고 가신 것이다. 경비 하시는 분이 그리고 지금은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하셔서 사정을 말씀드리니 빨리 가볍게 둘러보고 가라고 하셨다.

흥미원조기념관.(사진=김현진 교사)
항미원조기념관.(사진=김현진 교사)

'항미원조기념관'은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조선을 지원하여 싸운 전쟁기념관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말하면 '6.25' 전쟁기념관'이라는 의미가 된다.

중국 단동에는 단동시와 북한의 신의주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도원가(桃源街) 부근에 항미원조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1958년에 건립되었으며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확장 보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녀와서 인터넷 기사를 보니 우리가 갔던 날이 오랫동안 휴관을 하다가 재개관하는 첫날이었다.

이곳은 처음에는 '단동 역사문물진열관'이라고 했다가 후에 '항미원조기념관'이라고 개명을 하였으며 간판은 중국의 근대 문인으로 유명한 곽말약(郭沫若)이 썼다. 여기에는 모두 12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지금까지 500만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 기념관의 진열관에는 항미원조 전쟁사를 기본으로 주요한 내용이 진열되어 있고, 공군전관, 전경화관, 노천 병기진열장 등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 앞쪽에 높이 서 있는 항미원조 기념탑은 53m나 되고 1953년 조선정전협정 조인, 항미원조전쟁 위대한 승리의 상징으로 고양강(高梁江)화강암을 사용하여 건립되었다.

탑 정면에는 덩샤오핑이 쓴 '항미원조기념탑'이라는 금빛 글씨가 붙어 있고, 뒷면에는 지원군 영웅들의 업적이 기록된 탑문이 붙어 있다.

탑 기층 면적은 3,000평방미터이고 내부에는 중앙에 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의 사진을 전시해 놓고 양 옆에는 시안에서 출토된 진시황 병마용 토용전시관과 요녕성 열사전시관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또 중국인민지원군 총본부인 13병단 유지(遺址)가 있다.

중앙부분의 전시실을 보고는 탑 꼭대기로 오르는 통로가 설치되어 있고 각 층마다 펑더화이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각급 지휘관과 부대장들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다. 현관으로 들어가 정면에는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이라고 쓰여진 글씨와 조각된 군상(群像)을 배경으로 마오쩌둥과 펑더화이가 손을 잡고 있는 거대한 조형물이 서 있다.

양쪽 벽에는 지원군 전가와 중공중앙군 주석 마오쩌둥의 중국인민지원군 명령문이 새겨져 있다.

"현관으로 들어가 문 옆에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바치다."라는 글씨가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한글로 쓰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꽃다운 나이에 자원하여 전쟁에서 죽어간 지원병을 지칭하는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이돌 중 대표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언론과 한국전쟁 관련해서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인터뷰를 하였다.

이 영상이 공개된 뒤 중국 네티즌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바로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다. 이 발언이 정치적이고 중국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중국의 대표적인 SNS인 웨이보에 비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항미원조란 중국군이 북한을 지원해 북한과 중국을 미국으로부터 지켜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기를 한국전쟁을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보며 BTS의 발언을 '미국이 중국까지 침입을 하려고 했고 그래서 중국군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지금 그 미국의 고통에 동조한다는 거야?'라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전쟁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듯 중국이 압록강을 건너 한국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한지 꼭 70년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맞춰 중국 당국은 당시 상황을 담은 영화, 드라마 등을 제작해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미국과의 패권 다툼 속에서 이 '항미' 정신을 더욱 강조하고 있고 이 과열된 분위기가 SNS상의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땅이 폐허로 된 이 전쟁에 대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만 하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열강들의 사이에서 늘 개입이 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물리적 구조와 역사가 조금은 아쉽다.

항미원조기념관을 다녀온 기분 왠지 씁쓸하기만 하지만 중국에서의 논란을 잠재운 BTS의 문화적 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단동 철교에서 바라본 북한 땅.(사진=김현진 교사)
단동 철교에서 바라본 북한 땅.(사진=김현진 교사)

우리 땅이 바라보이는 그곳


동북 3성 지역에는 우리 민족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다롄한국국제학교 이사회에 소속된 이사님 중에 한 분은 개인적인 사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고구려 산성들을 꾸준히 답사하고 지키고 아끼려는 노력을 하는 분이 계시다. 그 결과로 ‘고구려의 핵심 산성을 가다’라는 책을 집필하시기도 하였다.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던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단둥을 방문하면서 중국이라기보다는 우리 땅이라는 느낌으로 다니게 되었고 상점의 곳곳에도 한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친숙함을 느꼈다.

단교나 압록강 유람선을 통해 북한 땅을 바라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박작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논과 작은 강으로 연결된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소박하고 평화로운 시골 같았다.

우리 민족의 이 아픔이 하루 빨리 평화적으로 해결되어 강대국으로서 주위의 물리적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국가가 되기를 조심히 바래본다.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