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장
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장

[에듀인뉴스] 현재 교육부나 교육청 등 교육행정기관마다 2021년 새해 사업 준비로 매우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새해가 되자마자 교육행정기관에서 새해 활동 계획이 발표될 것이다.

교육과정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문서(워딩)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어떤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는가에 따라 사업 방향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책 수립 시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할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책 용어의 개념은 구체적이고 명료화되어야 실천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다. 그런데 용어 개념이 명료화되어 있지 않거나 애매하면 교육정책 운영 시 학교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예전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초창기 수업혁신 정책을 ‘배움의 공동체’(2010) 용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일본 배움의 공동체 운동과 혼동되다보니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정책연구를 통해 학생 참여 수업 방법에 교육과정 재구성의 의미를 강화한 ‘배움중심수업’ 개념이 만들어졌고 이후 경기도 정책 용어를 넘어 전국적인 보편적인 용어로서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민선 3기 새 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창의적인 수업’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기존 ‘배움중심수업’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태에서 ‘창의적인 수업’ 용어는 오히려 현장에서 혼동만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인하여 결국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배움’이라는 단어도 기존 ‘학습(學習)’과 비교해볼 때 의미 축소가 이루어진 것이다.

‘학습(學習)’의 뜻은 잘 알다시피 배움과 익힘이다. 그런데 익힘을 빼고 배움만 강조하면 한계가 있다. 배움의 기쁨을 익힘의 고통과 결합해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학습’ 대신 ‘배움’을 사용하는 이유는 ‘학습’이 전통적인 개념이어서 새로운 수업혁신 운동을 담기에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졌고, 초창기 혁신학교들이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육청의 용어 선택 문제는 실제 교육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수업혁신 정책을 추진하면서 ‘협력학습’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원래 ‘협동학습’‘협력학습’은 동시에 사용되다가 2000년 이후 협동학습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협동학습’으로 주로 사용되어졌다.

2010년 이후 일부 구성주의에 영향을 받은 진보 교육학자들이 ‘협력학습’을 강조하면서 두 가지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면서 혼동이 발생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정책 연구를 통해 ‘협동학습’보다 상위개념으로서 ‘협력학습’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협력학습’의 하위 영역으로서 ‘협동학습’, ‘토의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을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재개념화 과정에서 협력학습을 강조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협동학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게 되면서 협동학습 운동이 타격을 받게 되었다.

서울시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에서 ‘질문이 있는 교실’을 처음 사용했을 때도 용어상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2012년 이후 전개되었던 하브루타 운동과의 연관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다행히 ‘질문이 있는 교실’을 하브루타 운동이나 기존 발문법이 아닌 참여 수업으로 넓게 정의를 하고 홍보했기에 그 혼동을 줄일 수 있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비해 영향력이 크기에 용어 사용 시 신중을 더 기울여야 한다.

MB 정부 시절 교육부에서 사용한 신조어가 ‘컨설팅장학’이었다.

컨설팅은 의뢰인(기관)의 도움 요청에 따라 맞춤형 피드백을 하는 것이고, 장학은 객관적인 외부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피드백하는 것이다.

기존 장학 개념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경영학 용어인 컨설팅을 교육학에서 차용한 개념인데 이 둘을 합성하여 쓰다보니까 문제가 생겼다.

비슷한 단어를 조합하거나 차원이 다른 이질적인 단어를 합성하면 문제가 적을 것이지만 의미가 정반대인 단어를 합성하다보니까 문제가 실천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오랫동안 장학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름만 바꾸어서 컨설팅을 하다보니까 컨설팅을 빙자한 장학 활동으로 진행된 것이다.

행정기관은 장학을 담당하고, 연구 기관이나 민간 기관이 컨설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주체가 동일하다보니까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재 교육부에서 ‘블렌디드 러닝’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넓은 의미로 사용하다보니까 개념적 혼란이 생겨났다.

교육부에서 ‘블렌디드’를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의 혼합을 넘어 원격수업과 원격수업의 혼합까지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넓은 의미로 확대하면 대면수업과 대면수업의 혼합도 ‘블렌디드’로 포함될 수 있다.

예컨대, 강의식 수업과 토의토론 수업을 혼합하면 ‘블렌디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외국에서 만든 개념을 그대로 쓰려고 보니까 외래어가 주는 부담감도 있고, 현재의 한국적 온라인 수업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기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 시도교육청마다 경기형, 충북형, 대전형 블렌디드 등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지역마다 다르게 정의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블렌디드’ 대신 ‘혼합수업’과 ‘온오프연계수업’까지 동시에 사용하는 상황이 되었다.

동일한 교육정책 용어가 지역 방언처럼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사용하게 된 셈이 되었다. 용어 명칭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정책의 정체성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교육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평가 혁신 정책 용어로서 ‘과정 중심 평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정중심 평가’는 평가관점 차원의 용어로서 기존 결과중심 평가의 반대말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평가는 결과를 빼고 과정만 평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학생의 발달과 성장의 관점에서 평가 문화를 혁신하려면 ‘과정 중심 평가’보다 ‘성장중심 평가’가 더 좋은 언어이다.

그래서 일부 교육청에서는 성장중심 평가를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교육청이나 교육부는 과정중심 평가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두 가지 언어가 동시에 사용되다보니 학교 현장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익히는 데 힘들어하기도 한다.

최근 교육부에서 ‘미래형 혁신학교’란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혁신학교와 미래학교를 혼합한 단어인데, 이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정책연구를 통해서 먼저 미래형 혁신학교를 정립하고 나서 이 용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교육정책 용어를 새롭게 만들고 사용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적절한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려면 무엇보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연구와 학습을 통해 충분히 고민하여 정책 용어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핵심 단어는 정책연구 등을 통해 신중한 결정을 하면 좋겠다.

그리고 논란이 있는 용어들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개념을 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