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유튜브 캡처)

[에듀인뉴스] 윤리(倫理)란 무엇인가? 우리말 사전에서 그 정의를 찾아보자. '倫'이란 인간관계에 있어 필요한 길, 도리, 질서를 의미한다. ‘理’는 다스린다, 바르다, 원리, 이치, 가리다, 밝히다, 명백 등의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윤리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자 인간 사회에 필요한 올바른 질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이것이 깨진 경우를 우리는 비윤리적 사회라 칭한다.

만약 이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어떨까? 인간 사회가 야수와 같은 모습이 되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글의 동물 세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바로 작금의 우리 정치의 모습이 그렇다. 

21일 <에듀인뉴스>에서 밝힌 바를 인용해본다. 20일 교수신문에 따르면,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이달 7일부터 14일까지 이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수들이 뽑은 2020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32.4%(복수 응답 허용)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긴 것으로 원전이 따로 없는 신조어다. 

즉, 아시타비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중잣대를 한자어로 옮긴 것으로, 1990년대 정치권에서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관용구로 쓰이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내로남불'이라는 줄임말로 회자한 후 결국 아시타비라는 신조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신조어가 선정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채널A 캡처)

매년 대학교수 단체가 발행하는 주간지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첫해인 2001년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연도별 사자성어는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 ▶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 ▶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 ▶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 ▶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 ▶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 이다. 

온통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다. 이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그랬기에, 그런 사회에 걸맞은 사자성어가 뽑힌 것은 당연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정치권은 눈만 뜨면 네 탓이라는 싸움질로 하루가 지난다. 원래 그들에게 정치에 입문한 동기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직접 마련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 변화는커녕 어찌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는지 그저 한숨을 자아낸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허언(虛言)과 실언(失言)이 난무한다. 이미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 집단으로 전락했다. 

(출처=http://blog.daum.net/kmozzart/12799)

이제 곳곳에서 정치인이 되기 이전에 순수한 인성을 갖춘 민주시민이 되는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를 누가 앞장설 것인가?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이를 선도할 큰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누구보다도 솔선수범을 해야 할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정적인 사회 윤리의 악역을 맡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갈 삶의 제도와 법률을 만들고 긍정적 사회문화를 이끌어야 할 선봉에 서 있다. 

국민을 대변하고 또 국민의 눈이 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는 케케묶은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코로나19로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에게 고통과 시련을 배가시키고 있다. 

국민통합은 사전에나 나오는 고어(古語)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 국민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처절하게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사 아시타비하고, 당동벌이하고, 자기기인하는 정치권 공명지조들이 알기는 할까. 그들은 우리 사회에 아시타비의 새로운 윤리를 창조하여 후대에 전하려는 것인가?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 세원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