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03) 고대 민주주의 : 그리스와 로마는 어떻게 다른가?
[민주주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03) 고대 민주주의 : 그리스와 로마는 어떻게 다른가?
  •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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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체제와 공화체제를 중심으로

[에듀인뉴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한 마디로 설명하고자 하면 선뜻 입이 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체계는 인간의 삶과 사회적 관계에서 완벽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을까. 또 민주주의가 교육 현장에는 어떻게 스며들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에듀인뉴스> 이돈희 발행인은 민주주의의 개념적 내포와 외연의 진화적 과정, 그리고 이에 따른 민주주의의 의미론적 검토, 주요쟁점의 확인, 실천적 문제의 분석 등을 이야기하는 연재를 통해 교육현장적 여건과 문제를 규명하고 실천적 가능성과 한계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의 민주정과 유럽 문화권의 오랜 상징으로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는다.(사진=픽사베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고대 그리스와 아테네의 민주정과 유럽 문화권의 오랜 상징으로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는다.(사진=픽사베이)

“민주주의,” 그리고 영어의 democracy는 문자 그대로 민중에 의환 통치체제를 의미한다. 그리스어의 dēmokratiā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말은 민중이라는 말의 dēmos와 통치를 의미하는 kratos의 합성어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천은 기원전 5세기의 중반까지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Athenai)에서 시행되던 통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민주주의는 통치의 제도적 형식을 의미한 것으로서, 당시 아테네의 통치체체는 그 이후에 민주적 체제를 구축하려는 여러 시도의 본보기가 되었다.

고대의 그리스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단지 서로 아웃하고 있는 수백 개의 도시국가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도시국가들 중에서 아테네의 시민들이, 기원전 507년에 클라이스테네스(Cleisthenes)의 영도 하에 하나의 민중적 통치체제를 구축하였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시원이었으며 그 체제는 거의 2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주의는 “민중”(dēmos)이 통치의 주체가 되어 다스리는 제도를 의미한다.

아테네의 시민권은 세습적인 것이어서 부모가 시민이면 자식들에게도 시민권이 부여되지만, 통치의 주체인 민중은 18세 이상의 남성 시민들만 거기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정치에 참여하는 민중에는 여성과 미성년자를 제외한 시민들로 구성된 것이다.

그 연령은 기원전 403년에 20세로 조정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당시 시민계급의 규모는 10만 여명이었으며, 이들 이외에 1만명 정도의 외국인이 있었고, 15만 명 정도의 노예계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민들 중에 약 3만명이 18세 이상의 남성이었고 전체 인구의 10~13 퍼센트가 정치집단의 민중을 형성하였다.

​그들의 정치활동은 주로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서쪽에 위치한 프닉스(Pnyx)에서 개최되는 민회(Ecclesia)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민주적 체제에서 많은 경우가 참석자 투표의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의회의 권한은 방대하였으나 결코 무한한 것은 아니었으며, 일정은 139개의 자치지역에서 구역별로 추첨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로써 구성된 “5백인위원회”가 정하였다.

이러한 자치구역은 인구비례로 구성되었으며 507년에 클라이스테네스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위원회가 대표를 선거에 의하지 않고 추첨으로 뽑는 방식은 후일에 대표선출의 관행적 규칙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아테네의 경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기구는 민중법정(dikasteria)이다.

민중법정은 민회제도와 함께, 의회, 위원회, 사법기관, 정치 지도층을 통제하는 권한을 거의 무한으로 가진 가장 중요한 국가기관이었다.

민중법정은 30세 이상의 시민들이 참여한 모집단에서 추첨으로 선출한 배심원들로 구성된다. 이 모집단은 해마다 추첨에 의해서 선출된다. 그리고 그 기구는 아테네의 일반시민들이 정치참여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있었던 펠로포네스(Peloponnes)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이용하여, “사백인위원회”로 알려진 기구가 아테네를 장악하고 일종의 과두정치의 체제를 구성한 적도 있으나, 그 기구는 1년도 못가서 폐기되고 민주정치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아테네의 민주정체는 90여년 후인 기원전 321년에 북쪽의 막강한 이웃 국가인 마케도니아(Macedonia)에 의해서 정복당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마케도니아는 엄격한 재산심사를 도입하여 많은 아테네인들을 민중에서 제외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42년에 아테네식 민주정치의 유산은 로마인들의 통치체제에 의해서 소멸되었다.

키케로가 않아 있는 로마 원로원 의원들을 향해 카틸리나를 비판하는 모습.(자료=위키백과)
키케로가 않아 있는 로마 원로원 의원들을 향해 카틸리나를 비판하는 모습.(자료=위키백과)

민중의 정치체제가 그리스에 도입된 시기에 즈음하여, 유사한 로마의 도시국가가 이태리 반도에서 형성되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제도를 공화정체(ēspūblica, or republic)라고 하였다. 라틴어로 사물 혹은 사건을 의미하는 rēs와 공중을 뜻하는 pūblicus or pūblica를 합성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인이 소유한 것(populus romanus)임을 의미한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에, 이태리 반도는 소규모의 정치적 단위조직들이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는 형태를 보이게 되었다.

약 6세기가 지나서 북 이태리에서 이러한 조직들의 몇몇은 다소 독립된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여, 참여의 폭을 더욱 넓히고 한정된 기간의 임기를 두는 지도층을 선출하는 통치구조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정부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후일에 등장한 대의정치적 제도의 선구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베니스(Venice), 플로렌스(Florence), 시에나(Siena), 피사(Pisa) 등의 몇몇 도시들을 포함하여, 이러한 정치형태는 약 2세기 남직한 시기 동안 번성하였다.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로 머물지 않고 팽창하여, 지중해 연안의 전부와 서유럽에 방대한 영토를 조성할 정도로 본래의 국경을 훨씬 넘어 주변을 정복하거나 병합하였다. 단시간에 팽창하였지만, 정치체제는 그 본래의 구조와 적정한 크기를 유지한 도시국가의 형태였다.

실제로 대충 기원전 1세기 말엽까지 지속된 공화정체 시기를 통하여, 로마의 의회들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작은 포럼의 형태를 취하였다.

로마의 시민권은 출생에 의해서 인정되지만, 이민이나 노예해방에 의해서 주어지기도 하였다. 로마 공화국이 팽창하면서 확장된 영토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여러 등급이 있기는 하였지만 시민권이 부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로마식 의회는 계속적으로 포럼에서 개최되는 것이었지만, 로마의 안에나 인근에 살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포럼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실제로는 민중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로마인들은 수세기에 걸쳐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2백여 년이 지난 후에야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그것이 바로 로마의 입법을 위하여 대의원을 두는 방식이었다.

​로마인들은, 급속한 영토의 확장을 포함한 그들 사회의 특성에 맞게, 정치적 구조를 매우 복잡하고 특이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극도로 강력한 원로원(Senate)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네 개의 소위원회(comitia 혹은 concilium)를 설치하였다.

(1) 고대의 3개 부족 지파 중에서 참여하는 입법위원회(Comitia Curiata), (2) 병역조직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Comitia Centuriata), (3) 평민계급을 대표하는 평민위원회(Concilium Plebis), 그리고 (4) 그리스의 의회와 유사하게 정규의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시민위원회(Comitia Tributa) 등이 있었다.

모든 집회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투표는 개인 단위가 아니라 조직 단위로 계산되었다. 즉 다수결을 채택하였지만 그것은 개인들의 다수가 아니라 조직들의 다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집단별로 로마시민을 대표하였지만 각 집회는 충분히 자주적인 결정을 바탕으로 하여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공화국의 전 시기를 통하여, 로마 군주정체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제도인 원로원이 계속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원로위원들은 입법위원회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선출되었다, 군주정체 시대부터 그들은 전적으로 특권층의 귀족들 중에서 선출되었다.

고대 그리스나 이후에 유럽에서 발달한 민주정체에 비추어 보면 이태리식 공화정체는 민주정체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어떤 역사가는 로마식 공화정체는 “입헌 과두정체”(constitutional oligarchy)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 이 글은 이돈희 교수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교육사철정담론'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연재 예정 내용

민주주의의 개념적 진화과정/ 제도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달/ 플라톤은 왜 민주주의를 경멸하였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민주주의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나/ 민주주의와 그 적들/ 민주주의의 내홍: 다원주의와 완전주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절차론적 원리와 문제/ 협의론적 문제해결은 가능한가/ 생활양식으로서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교육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서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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