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교사는 교육 전문가로 교육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배웠지만 그 누구도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교육원정대를 결성해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박석희 선생님과 함께 떠나보실까요?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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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 도덕이 일주일에 1차시라 시간편성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느낌이 있다.

도덕은 아무래도 뻔한 소리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교과라는 인상이 있지만, 가르치기에 따라서는 정말 재밌는 과목이 될 수 있다.

내가 도덕을 가르치는 대상은 5, 6학년인데 이 연령대 학생들은 어느 정도 추상적인 생각과 고민이 가능하고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꽤 크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내 도덕 수업의 도입은 트롤리 딜레마와 함께 시작되며, 착하고 올바른 것이란 평면적이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렵고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일깨우며 시작한다.

그래서 나의 도덕 수업은 수많은 도덕적 갈등 상황이 제공된다. 그 갈등 상황이란 내가 지어낸 내용일 수 있고, 도덕 교과서 지문일 수도 있으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한 장면, 학급에서 ‘온책읽기’로 활동한 책의 한 부분일 수 있고 실제 우리 주변이나 우리나라,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5학년 첫 도덕 단원인 ‘정직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절대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시작하지 않는다.

‘왜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문제를 도입으로 던진다. 그러면 학생들은 여기에 대해 정말 다양한 의견을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의문들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살면서 거짓말 좀 하고 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솔직히 여기에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사람 없잖아’라면서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혼란해하기 시작한다.

물론 도덕 시간이기 때문에 도덕의 해체를 추구하는 발문은 아니다. 학생들의 인지적 혼란을 야기하여 더 나은 사고 도식으로 도덕을 한 차원 발달시키기 위한 피아제적 의도인 것이다.

여기서 ‘그럼 거짓말 하고 살죠, 뭐’라며 질문에 부딪힌 상황 자체를 회피하려는 학생들도 등장하게 되지만, ‘그럼 왜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모든 시대에 걸쳐서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아이들을 가르칠까요?’라고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 나간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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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도덕 교과는 실천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아는 것은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고학년을 상대로 도덕이 쉽다, 착하게 사는 것이 쉽다고만 하는 것은 학생들의 사고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고 입체적 사고가 필요한 것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복잡한 것이고 복잡한 것들을 하나하나 이해해나가는 것의 재미를 알려주는 것도 교사의 보람찬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도덕의 요약은 결국 무엇이 옳은 지 아는 것도 힘들고 실천하는 것도 힘든 것이다. 다만 질문들과 도덕적 갈등을 통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는 것은 힘들어도 대체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를 합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뻔해 보이는 말들에 의문을 던지고 도전함으로써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갈등과 난관에 부딪혀 도전 받고 의문이 생겼을 때 충분한 도덕적 훈련과 사고의 근육을 갖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등도덕이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정 문서에서도 결코 ‘보행자는 신호등 파란불에 횡단보도로 건너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수준의 내용만 담지 않는다.

도덕의 문제는 실천의 문제라는 대중의 통념은 틀린 문제의식이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도전 받지 않고, 충분히 질문 받지 않은 무의미하게 주입된 앎에 제대로 된 실천이 따를 수 있을까?

단순히 체크리스트를 짜고 기계적으로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도덕적 실천이 될 수 없다. 단지 체크리스트의 기한이 되는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에 시늉을 내거나 그도 아니면 필기구로 체크만 할 뿐이다.

초등 도덕의 문제는 앞으로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살아갈 긴 시간 속에서 어떤 게 올바른 것이고 따라야 하는 것인지를 기초공사하고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기초적 형태의 성찰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학생들은 새로 가지게 된 도덕의 시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바라보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들의 도덕적인 성격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도덕 교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충분한 도덕을 전수할 수 없었다는 문제는, 그 도덕이 실천이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성찰이 빠진 채로 자신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도덕 덕목들을 실천하기를 강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도덕에는 내가 수업 시간에 강조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세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어떤 도덕적 고민도 우습게 회피하는, 부도덕한 일탈 행위를 자행하는 악당과 범죄자들의 문제다.

이들의 존재 앞에서 도덕은 때론 굉장히 무력해 보이고, 도덕을 무시하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앞에서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다.

두 번째는 무엇이 옳은지를 내가 알아도 그 옳은 바를 실천하기 위한 능력이 부족할 때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말은 쉽지만, 원칙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를 알아도 그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 자체가 부족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기의 것을 나누어 나라의 배고픈 이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것이 도덕적이지만 그게 과연 옳은 것을 아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세 번째는 여러 가치가 충돌하는데 그 가치가 모두 거의 동등한 수준에서 중요할 때다.

이 사례는 하인츠 딜레마로 설명할 수가 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세 가지 문제는 도덕이 단순한 실천의 문제만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힘없는 머릿속 공상의 문제로 전락한 듯이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도덕 교과는 물론이고 다른 거의 모든 교과에서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생활 지도와 함께 가치지향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교사로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제시한다.

생각하는 힘도 실천하는 힘의 하나이고 무언가를 실천하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생각할 힘을 줘야 한다.

적어도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가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