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서울 마장중 선생님/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사진=지성배 기자)
권재원 서울 마장중 선생님/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사진=지성배 기자)

[에듀인뉴스] 현재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중, 무려 14명이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다. 진보 교육감이라는 말이 등장 한지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이쯤 되면 명색이 ‘진보’를 내걸었으니 무엇인가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의 상을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2021년 들어 약속이라도 한 듯, 진보교육감 입에서 ‘혁신’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코로나 19가 휩쓸고 간 2020년의 상처가 너무 깊은 탓일까?

혁신이 밀려난 자리를 ‘기초학력’이니 ‘학력격차 해소’니 하는 말들이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 교육감은 ‘학력격차 해소’를 2021학년도 중점목표로 선언까지 했다. 그리고 담임교사들을 몹시 번거롭게 만들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목표와 효과는 불분명하고, 대신 언론에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각종 사업과 지침들이 갖가지 수식어로 장식된 이름을 달고 쏟아져 나왔다. 다른 진보교육감들도 뒤질 새라 기초학력과 학력격차 해소를 말하고 있다.

물론 기초학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초학력이라는 이슈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진보’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보수진영이라면 얼마든지 “교육 혁신이니 창의적 수업이니, 협력 학습이니 프로젝트 수업이니 등등 주장하기 전에 먼저 기초 학력부터 챙겨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말해 왔다.

하지만 진보라면 기존의 통념을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동안 진보 교육감은 교육혁신, 혁신학교, 혁신교육 등을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기초학력이나 학력 격차라는 이슈에도 그 관점이 분명히 녹아 있어야 한다.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 분모를 설정하지 못한다면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이거나 둘 다 거짓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니 혁신이니 하는 것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 검토, 재해석하여 이를 새롭게 한 것이다. 따라서 진보는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말조차 세밀하게 따져보고, 배경을 살펴보고, 예상되는 결과를 시뮬레이션 하고, 다른 관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상상해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수십년 간 보수적인 교육 관료들이 떠들어 왔던 “기초학력 보장”이니 “학력 격차 해소”니 하는 말을 그냥 되뇌일 것이 아니라, 여기에 전복적이고 신선한 관점을 불어 넣어야 한다.

(출처=조희연 서울교육감 블로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학력격차 해소’를 2021학년도 중점목표로 선언했다.(출처=조희연 서울교육감 블로그)

기초학력이라는 이슈가 대두된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이슈는 코로나19와 원격 수업 이전에 이미 대두되어 있었다. 보수 언론과 보수 교육계를 통해 “혁신 학교니 자유 학년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가 심각하다”라는 식의 담론이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시험 공부 안 시키고 엉뚱한 거 시키니, 도대체 애들이 뭘 배우는지 알 수 없다는 불평이다.

여기에 대한 ‘진보적’인 대응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적어도 “이제부터 기초학력에도 신경 쓰고, 담당 인력 배치하고, 학교에 전담반 배치하겠습니다” 따위의 뻔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시대가 바뀌면 가장 기초가 되는 학력도 달라집니다. 낯설겠지만 혁신 교육, 혁신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업이야 말로 새로운 기초학력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낡은 학력관을 들이대며 학력 저하를 운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설득하고 그 근거와 청사진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진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주민들의 반발에 밀려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하는 모습과 기초학력을 2021 학년도 핵심 과제로 내세우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모습은 마치 “혁신 교육은 기초학력을 저하시키는 게 맞습니다.” 라며 백기 투항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학력격차 이슈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 원격 수업이 전면화 되면서 평소 자기 관리가 안되던 학생들, 즉 등교 하더라도 지각을 자주하고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을 학생들이 아예 수업에 접속조차 하지 않는 사태가 속출했다.

학교마다 출석부가 온라인 수업 미인정 결과 체크로 얼룩덜룩해졌다. 이런 상황을 보면 누구나 “학력격차가 심해지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학력이 떨어진 학생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독려하여 따라잡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하지만 ‘진보’라면 여기서 생각이 멈춰서는 안된다. 벌어졌다는 격차가 어떤 학력의 격차인지 따져야 한다. 옛 시대의 학력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보가 주장해 왔던 새로운 학력, 혁신 교육의 학력에서의 격차를 말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격차 그 자체 매달리기 보다 이 격차가 학생 가정의 경제력 격차와 동조화 되는지 여부에 보다 민감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학력’ 이른바 21세기 역량이라는 영역에서 빈부격차와 학력격차가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면 이거야 말로 ‘진보’ 교육감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면서 가정의 문화자본 격차를 학교를 통해 따라잡을 기회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무서운 격차는 영어, 수학 점수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집안이 어려운 학생 중에도 자기 관리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영어, 수학 따위는 스스로 관리해 가며 온라인 수업으로도 너끈히 따라잡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 높은 수준의 지적, 문화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제공해 줄 어른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산층 이상 학생들이 가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얻어 듣고 배우면서 형성되는 문화자본의 격차 만큼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다. 교사를 만나 상호작용할 기회를 상실하고, 학교와 공공도서관을 활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가정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자본을 제공해 줄 어른, 즉 교사와의 만남이다.

바로 여기서 진보적인 관점에서의 학력격차 문제를 바라볼 접점, 학력격차 문제와 혁신 교육, 혁신 학교의 교집합이 만들어진다.

영어, 수학 사교육 같은 것은 학생이 스스로 ‘노력’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은연중에 쌓이는 문화적 온축은 학교에서 다양한 활동과 문화적 자극에 노출 됨으로써만 획득할 수 있다. 혁신 교육, 혁신 학교는 바로 이런 활동과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이 내세우는 학력 격차 해소는 영어, 수학 나머지 학습, 보충 학습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저소득층 학생들, 취약지구 학교에 혁신 교육의 신선한 미래형 공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이것만이 해결책이라고 강변하지는 않겠다. 다만 적어도 ‘진보’ 교육감이라 불리는 분들, 그리고 그 교육청들이라면 가장 보수적인 진영에서부터 대두된 ‘기초학력’, ‘학력격차’ 프레임에 쉽게 말려들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 프레임에 진보적인 신선한 관점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한다.

여기서 제시한 것들은 다만 하나의 예일 뿐이다. 부디 더 많은 고민, 성찰,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 주며, 이미 낡고 촌스러운 용어로 전락하고 있는 ‘진보’라는 말에 한 가닥 생명수를 흘려 넣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