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칼럼'을 읽고 교육감을 다시 생각하다

[에듀인뉴스] 교사는 교육 전문가로 교육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배웠지만 그 누구도 교육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교육원정대를 결성해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박석희 선생님과 함께 떠나보실까요?

교육은 항상 기본에서 시작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기본을 생각해야 한다.


<에듀인뉴스>에 기초학력 문제를 진보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칼럼이 올라왔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14명 교육감이 ‘진보’ 진영에서 나왔고, 지역에서 진보 교육이 이루어진지 10년이 되었는데 새로운 교육의 상이 나오지 못해 안타깝다는 논지의 글이다. (관련기사 참조)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특히 소규모 혁신학교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학교의 학생중심 교육과정을 개발하는데 참여하는 교사로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도 그 못지않다. 옛 시대의 학력은 새로운 시대의 학력과 다르기 때문에 옛 시대의 학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 접근 때문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인류의 역사는 항상 새로운 위기에 대한 도전과 대응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살아가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과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발달과 성장은 결국 보편적인 성격을 가진다.

서구의 전통적인 철학은 시간적, 공간적, 원자적 개별자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지 보편과 특수의 관계를 치열하게 다뤄왔다.

인류 고전은 언제나 새로운 변화와 문제들과 부딪히는 인간이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인류 지성의 보편성을 지속·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지성과 문명의 전수와 발전을 다루는 교육 역시 다르지 않다. 교육 역시 바꾸어야 할 것 못지않게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한다.

혁신은 물론 중요하다.

한계 효용 학파의 조지프 슘페터는 한정된 자원과 무한한 욕구가 부딪히는 속에서 인간이 점점 더 발전하는 세상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은 기업가의 혁신에 의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부가가치 창출의 개선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교육에서의 혁신은 이런 의미가 아니다. 경제적 이윤과 기업 논리를 섣불리 내세웠을 때 교육 현장에 어떤 폐단이 나타날 수 있는지 선생님들은 목격했다.

진보 교육감과 진보 진영에서 내세운 ‘혁신 교육’이라는 학습 내용·방법·평가·학교 문화 전체에 걸친 종합 패키지는 그동안의 학교 현장에서 문제라고 느껴 온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이것은 오히려 지나친 경쟁과 정량적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상에 반대한다는 측면에서 슘페터가 이야기하는 혁신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혁신이라는 말로 말장난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보라면 으레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발상과 해석을 창조적으로 해야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진보에게만 귀속되는 미덕도 아닐 뿐더러, 진보 교육감이라면 으레 보수진영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로도 읽혀 불편하기도 하다.

교육감은 진보 진영만을 대표하는 교육감이 아닐 것이며, 진보 진영에서 내세우는 이념에서 비롯된 교육 정책만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작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며 겪은 우리 교육의 위기는 이념적 차이와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교육감으로부터 소환해야 하는 것은 진보진영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교육에서 어떤 위기와 위험을 절박하게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지 지역교육 공동체 모두의 리더로서 공감해주고 유효한 대책을 제시해 위기와 재난을 넘어설 것인지, 책임 있는 대표의 모습을 소환해야 한다.

혁신은 때로 발상의 대담한 전복과 해체만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작은 조정과 변화를 통해서라도 슘페터가 말하는 것처럼 더 좋은 결과와 개선을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미지=한국교육학술정보원)
(자료=https://blog.naver.com/cms_edu/222102665049)

학력 격차가 나타나고 학생의 몇몇 그룹에서는 심각한 결손과 발달 지체가 나타났다.

학력 격차를 옛 시대의 학력에서 나타는 격차는 괜찮고, 새로운 21세기 역량 중심의 학력에서 나타나는 격차는 심각하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책임 있는 리더가 보여야 할 모습이 아니다.

물론 기초 학력 문제는 가뜩이나 바쁘고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는 선생님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던져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업과 학력 외 교육 본질에서 벗어난 것들을 선생님에게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지, 기초학력과 학력 격차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는 것 또한 현명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행정 중심의 섣부른 접근이 아닌 교육 전문가로서 선생님들의 의견과 능력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시험 결과로 나타나는 학력과 미래 역량은 다르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아이가 반드시 창의적이고 미래 사회에 적응할 역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진 아이라도 기초능력인 3R(Reading, Writing, Arithmetic)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고 이후의 진학과 진로에 활용하고 사회에서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줘야 하는 곳이다.

기초적인 어휘도 모르고 모국어 철자도 지키지 못하며 모형화 된 문항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교과서에서 몇 번이고 반복한 회화 표현 하나 비슷하게도 기억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지도에 대한 고민 없이 ‘너는 기초능력이 모두 떨어지지만 엉뚱한 생각을 잘하니까 미래에 잘 적응할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적이지도 않고 무책임할 수도 있다.

무식하게 많은 양을 암기하고 소모적인 경쟁 속에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줄 세워 학생들을 평가하고 그들이 걸을 미래를 제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인지 결손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지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학생들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이분법적인 접근은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지=픽사에비)
(이미지=픽사에비)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학력의 위기와 격차의 위기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이들의 그릇된 개념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위기로서 진지하게 공감하고 접근해야 한다.

학생들의 학력은 단순히 문제풀이 결과로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력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은 간단한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코로나는 자율적인 학습 태도와 메타 인지를 가지지 못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위기였다.

이는 중간층의 상실이라는 자극적 뉴스로도 드러났고, 가정환경과 경제적 환경이 불안정한 학생들일수록 인지적 학습뿐만 아니라 학습 태도와 정서와 같은 요소들에서도 큰 감퇴를 겪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성장과 발달에 반드시 필요한 절실한 것이다.

교사를 만나 상호작용하고 믿을 만한 어른과의 바람직한 소통으로 지적 성장을 하는 곳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결국 학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이들이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채워야 하는 것은 역량과 사회생활의 기반이 되는 3R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옛 시대의 학력이기 때문에 교육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보수진영’ 교육감이나 교육 인력처럼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은 사회를 덮친 심각한 위기에 진영 편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혁신교육이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활동 위주 수업과 미래형(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교육은 분명 대안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에게 더 절박한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학생은 물론 학교 공동체에 애착을 느끼고 선생님을 따르고 안정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하면 나머지 공부도 해야 하고 훈련도 받아야 한다.

미래 사회는 어쨌든 현재와 다를 거니까 현재에 중요한 것은 미래에 중요하지 않다는 접근은 곤란하다.

진보 교육감이니까 진보 본연의 정의로 돌아가라고 하기 전에 모두의 교육감이므로 교육의 기본을 상기하라고 하고 싶다.

교육은 특수한 환경 속에 보편성을 다루는 문제다. 학부모와 국민들이 혁신 교육과 그 결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면 그것이 구태의연하고 보수적이라고 하기 전에 그동안의 교육이 제공해줬던 것을 왜 제공하지 못하게 됐거나 모자라 보이게 됐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발상을 뒤집고 새롭게 보기 이전에, 무너질 수도 있던 위기 아래에서 다시 우리 교육의 미래를 쌓아나가기 위해 우리 교육의 기본을 생각해야 한다.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
박석희 경기 마산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