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오늘날은 그야말로 융합, 통섭(consilience)의 시대다.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만으로는 무탈하게 생계를 유지하는 보장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전문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도 융합적인 사고 내지 통섭의 지적 추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예술의 창조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단순하게 모방하는 것으로 그치면 소위 짝퉁이 되고 몰개성적이며 심지어 법적인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 어찌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안타깝게도 현대는 단지 한 가지 사실에만 몰입하면 결국은 고통스런 후속 조치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과 흉내를 넘어 재차 다른 관점으로 시도해 봄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즉, 다른 수준으로 모방을 하게 되면 그것은 생명력을 발휘하며 창조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모방의 모방은 창조’라 일컫게 되었다. 이는 창조란 이 세상에 없던 것이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다.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창조의 대상이다. 그래서 단지 관점을 달리하여 색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추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혹자는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Simplicity is beautiful)고 찬미한다. 하지만 단순함은 단지 간단하고 가벼운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모습을 갖추어 깔끔하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융합과 통섭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창의적인 단순함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의 초⋅중등 교육과정이 <문, 이과 통합>의 과정으로 개정(2015 개정 교육과정)되었다. 이른바 생각하는 교육의 틀이 과거 정형화된 방식의 교육으로부터 탈피한 것이다.

융합과 통섭의 과정은 교과 간, 지식 간의 영역에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이로 인해 이른바 시를 쓰는 과학자, 노래 부르는 철학자, 발명하는 소설가,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라는 다양성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위 직업과 직업을 넘나드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상의 사례를 들어 보자. 볼리비아 산속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배낭 속에 수학책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모두의 노래」를 소지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혁명가와 수학, 문학이라는 융합이 쉽게 이해가 될까?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어떤가? 의사란 직업과는 별개로 그는 음악가로서 연주회를 열었다. 그가 얼마나 융합적인 삶을 살았는지 단적인 증표가 된다. 

국내적으로는 어떤가? 저명한 경제 전문가이지만 대학교 총장, 그리고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정운찬 교수는 최근에 한국 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맡았을 정도로 야구에 관한 박식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노동법학자인 박홍규 교수가 베토벤이나 고흐, 고야의 평전 쓰기로 유명한 것이나 언론사를 전공한 강준만 교수가 전공 이외에 사회 및 문화 비평 활동 등을 활발하게 하는 것을 보라. 이밖에 불교철학에 빠진 물리학자나 공학자, 역사학에 빠진 법학자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과 통섭의 전문가들이 오늘날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 과거 지하철 슬롯머신을 통과하는 법을 몰라서 전철을 타지 못했다는 노(老) 성직자의 고백은 그야말로 웃픈 ‘바보 전문가’의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인생 고비마다 경험하는 일들이 결코 쉽지 않다. 어느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의 경계 끝은 벼랑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이다. 두려운 경계에서 기어이 예쁜 꽃을 피우겠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큰 보폭으로 경계를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현 시대는 이른바 잡종 강세의 현상이 지배적이다. 경계 밖의 독서를 날마다 꾸준히 해야 하며 단순한 취미의 수준을 넘어서 적극적인 의식과 행동으로 탈바꿈해야 할 때다. 

현대인은 지속적으로 융합과 통섭의 길을 걷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무른다. 아니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 바보’가 아닐까? 자기 영역만을 고수하여 원치 않는 바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교직에 종사하는 모든 교사들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이다.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